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⑨

Leda and the Swan(1505-10)/ Cesare da Sesto(1477–1523) (좌) Leda and the Swan(1508-1515)/ Francesco Melzi(c.1491-1568/1570) (우)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⑨

제우스 이름의 어원과 애정행각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Zeus’, 로마 신화에서는 ‘Jupiter’로 칭한다. ‘Zeus’의 어원은 ‘빛나는’이라는 뜻의 인도유럽어 ‘deieu’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신들 중 유일하게 인도유럽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이다. 그래서 그는 기원전 20세기경 그리스 반도로 이주한 인도유럽어족이 신봉하던, ‘빛나는 창공의 빛’을 상징하는 하늘의 신으로 추정된다.

흔히 불리어지는 ‘Zeuspater(아버지 제우스)’라는 명칭은 고대 인도어 ‘dyauspita’와 라틴어 ‘Diespiter’, 혹은 ‘Iuppiter’ 등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며, 그가 신과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또한 제우스는 속죄를 받아들이고 기도를 들어주는 ‘온유한 자’라는 뜻의 ‘메일리키오스(Meilichios)’, ‘구원자’라는 뜻의 ‘소테르(Soter)’, ‘자유의 수호자’라는 뜻의 ‘엘레우테리오스(Eleutherios)’, ‘관습과 국가의 보증인’이라는 뜻의 ‘폴리에우스(Polieus)’ 등으로 불리어 지는 최고 지위의 신이다.

그런가 하면 ‘크로노스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또 다른 별명 ‘크로니온(Kronion)’, 혹은 ‘크로니데스(Kronides)’는 그가 아버지 크로노스의 지배권을 대표한 자손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올림포스 최고의 신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 ‘Jupiter’는 태양계 최대의 행성인 ‘목성’의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어원에서 나타나듯이 제우스는 하늘의 신이다. 티탄 신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제우스는 형제인 포세이돈, 하데스와 제비를 뽑아 천하를 삼등분한다. 그 결과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각각 바다와 지하 세계를, 제우스는 하늘을 맡게 되고 땅은 공동 통치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그는 “하늘 높이 천둥 치는 위대한 제우스”, “번개의 주인 올림피오스(Olimpius)”, “구름을 몰아오는 제우스” 등으로 묘사된다.

하늘의 지배자로서 제우스는 저 높은 천상에 버티고 앉아 천둥과 번개 그리고 구름을 주관하며 세상과 인간을 다스린다. 과학적 식견이 없는 원초적인 눈과 가슴으로 대자연 속에 던져진 고대인에게 하늘의 세계는 그 어떤 자연의 모습보다 경이롭고 두려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어두움을 가르고 갑자기 커다란 불덩어리(태양)가 치솟는가 하면 새파랗게 둘러쳐 있던 주위가 서서히 시커멓게 변하면서 주변의 물체들을 삼켜버린다.

그런가 하면 셀 수 없이 많은 괴물의 눈들(별)이 나타나 째려보기도 한다. 어느 때는 시커먼 덩어리들(구름)이 몰려와 불덩어리를 삼키더니 불 막대기(번개)를 던지면서 고함(천둥)을 지르고 물(비)을 쏟아 붓기도 한다.

하늘은 인간에게 가장 경이롭고 두려운 존재다. 따라서 하늘을 지배하는 제우스는 최고의 신이며, 올림포스의 제1인자다. 그는 퀴클로페스(Cyclops)가 만들어 주는 천둥과 번개로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신과 인간들을 위협하고 처단한다. 또한 구름을 조작하여 인간 세상에 단비를 선사하기도 하고, 가뭄과 홍수의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그는 생명이요 죽음이다.

하늘을 지배하는 자는 땅도 지배한다. 땅은 인간과 동식물 등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제우스는 ‘천둥, 번개, 구름’으로 기후를 관장하면서 땅의 생명력을 통제한다. 땅의 생명력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는 생명의 근원인 땅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올림포스 신족 초기에 포세이돈, 하데스와 더불어 천하를 3등분 하고 땅을 공동 통치하던 제우스가 점차 세력을 키워가면서 경쟁자들의 관할 영역을 바다와 지하세계로 국한시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초기 올림포스의 삼두체제가 제우스를 정점으로 하는 1인 지배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하늘의 신 제우스의 상징은 ‘번개와 독수리’다. 제우스는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신과 인간을 번개로 처단한다. ‘번개’는 제왕 제우스의 통치와 권위의 상징이다. 또한 생명체 중 하늘의 지배자인 조류의 제왕 독수리도 제우스를 상징한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의 상징인 독수리는 최고를 열망하는 인간 족속들의 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스 문화의 전통을 잇는 서양의 제 세력들이 힘과 권위의 상징으로 제우스의 독수리를 차용하고 있다. 독수리는 로마제국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을 시작으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열강의 문양으로 사용되는데, 이어 대서양을 건너 미합중국의 연방 문양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늘의 신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1인자이며 신들의 제왕이다. 그 어떤 신도 제우스와 맞서지 못하고 복종한다. <일리아스>에서 모든 신들 위에 군림하는 제우스의 막강한 권위가 잘 드러나고 있다. 트로이 전쟁 중에 인간들의 싸움에 관여하지 말라는 제우스의 엄명에 여왕 헤라도, 경쟁자인 포세이돈도 심한 모욕을 느끼면서도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Leda and the Swan, 1530/ Michelangelo(1475–1564)

그러나 비록 그가 최고의 신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그리스 신들 중 전지전능한 신은 없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12명의 신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월한 1인자일 뿐,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영역이 점차 축소되기는 했지만, 제우스는 형제인 포세이돈, 하데스와 함께 지배 권력을 철저히 분할한다. 특히 포세이돈의 바다와 하데스의 지하 세계는 제우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또한 인간사회의 여느 지도자처럼 제우스도 경쟁자들의 도전을 극복해야 하는 운명의 소유자다. 제우스의 바람기에 화가 난 헤라가 포세이돈, 아폴론, 아테나와 손을 잡고 그를 권좌에서 쫓아내려 한 사건도 있었다. 비록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의 도움으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제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올림포스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제우스도 지하 세계를 흐르는 스틱스 강을 걸고 한 맹세는 결코 어길 수 없다. 그는 헤라의 간계에 빠져 스틱스 강을 걸고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겠노라고 섣불리 맹세하다가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인 사랑하는 세멜레(Semele)를 재로 만들어버린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제우스는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제한된 상대적 최고 권력의 소유자일 뿐이다. 따라서 경쟁자들의 도전에 맞서 권좌를 지키려면 뛰어난 리더십이 필요하다. 더구나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로 이어지는 신들의 전쟁에서 보듯이 그리스 신들의 세계는 끊임없는 권력 다툼과 찬탈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올림포스의 1인자 제우스는 탁월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제왕이다. 그의 리더십을 분석해 보자.

첫째, 제우스는 결단력의 소유자다. 그는 결코 우유부단하지 않다. 제우스의 결단력은 번개와 독수리의 속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는 결심이 서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번개처럼 전격적으로 결행한다. 또한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 허공을 맴돌다가 목표를 발견하는 순간 쏜살같이 먹이를 낚아채듯 행동은 단호하다.

둘째, 제우스는 훌륭한 조직을 관리 운영한다. 그는 똑똑한 아들과 딸인 아폴론과 아테나를 핵심 참모로 거느리며 자신의 지배 체제를 보좌하는 쌍두마차로 활용한다. 올림포스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좌 아폴론’, ‘우 아테나’라는 굳건한 삼각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탁월한 협상력과 술책의 소유자인 헤르메스를 측근에 두고, 드러내놓고 추진할 수 없는 궂은 심부름을 맡긴다. 아폴론과 아테나가 제우스의 공적 과업을 보필하는 유능한 참모들이라면, 헤르메스는 제왕의 속내를 간파하여 막후에서 은밀하게 해결해 가는 수행 비서인 셈이다.

제우스는 자식이자 참모인 아폴론과 아테나의 힘과 위상을 강화해 주면서 이들을 통하여 경쟁자인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견제하고 약화시킨다. 아폴론에게는 하늘의 대표자 태양의 신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자신의 뜻을 읽을 수 있는 신탁의 권위까지 위탁함으로써 올림포스의 실질적인 2인자로 승격시킨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무기인 번개와 방패를 도맡아 관리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는 제왕의 분신이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대표적 정적 포세이돈과 아테네 수호신 자리를 놓고 겨루어 당당히 승리한다. 제우스의 딸에게 패한 포세이돈은 제우스와 공동 통치하기로 한 땅에서 점차 밀려나 지배권이 바다로 제한되는 추락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제우스는 자신의 참모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정적들을 견제하는 데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들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방치하지 않는다. 2인자 아폴론이 제우스의 번개 제작자인 퀴클로페스를 활로 쏘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폴론의 아들인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다가 하데스의 탄원을 받고 제우스의 번개에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아들 아폴론에게 인간인 아드메토스(Admetos) 왕 밑에서 1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도록 하는 처벌을 내린다. 또한 아폴론이 헤라, 포세이돈과 손잡고 자신을 거세하려고 하자 포세이돈과 함께 트로이로 유배시켜 성을 쌓는 노역에 처하기도 한다. 제우스의 이 같은 조치는 참모에게 권한을 주되 일정한 선은 넘지 못하게 하는 조직 관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셋째, 제우스는 정보력의 소유자다. 그는 예언의 신이다. 앞날을 읽어내는 예언은 풍부한 정보력에서 나온다. 델포이 신탁의 주인 아폴론이 예언의 신이기는 하지만 제우스의 대리인일 뿐이다. 그리스의 도도나 지방은 제우스와 디오네(Dione)의 성지로서 델포이 이전의 신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제우스의 성스러운 떡갈나무가 있었는데, 무녀들은 떡갈나무의 살랑거리는 소리에서 제우스의 예언인 신탁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넷째, 제우스는 고도의 정치 감각을 지닌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이는 정치적 리더로서 숙명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인지도 모른다. 이는 또한 최대 정적인 포세이돈과 뚜렷이 대비되는 점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 간, 형제간에도 피비린내 나는 패권 다툼을 벌이는 권력의 세계에서 격랑의 바다처럼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리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순진한 감상파는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심성은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제우스는 소름 끼칠 정도로 냉철하다. 그는 권력 앞에서 혈연도, 사랑도, 우정도 단호히 저버린다. 경쟁자인 하데스가 자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유린하지만 제우스는 이를 못 본 척 묵인한다. 하데스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딸의 운명과 명예보다도 정치적 라이벌과의 관계가 더 소중하다.

제우스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테티스가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아들을 낳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그녀를 보잘것없는 인간 펠레우스(Peleus)와 인연을 맺어준다. 제우스에게는 사랑을 위하여 권좌를 포기하는 순애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티탄 신족과의 전쟁에서 자신을 도와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절친한 친구 프로메테우스와의 우정도 그가 자신의 앞길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하는 순간 헌신짝처럼 저버린다.

제우스의 탁월한 정치 감각과 계산력은 여신 선발대회의 심판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황금사과를 차지하기 위하여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경합을 벌인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포스의 강력한 여신들 간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에서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심판권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제우스는 영광스러운 권한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에게 양도한다.

제우스의 판단으로는 그것이 제왕의 권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의 싹을 우둔한 인간에게 슬쩍 미루는 것이다. 한 명의 승자와 두 명의 패자로 갈라지는 시합에서 심판은 필연적으로 한 명은 친구로, 두 명은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아무리 달콤해도 밑지는 거래는 하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결국 재앙의 심판권을 행사한 파리스는 헤라와 아테나의 집요한 보복을 받고 트로이 전쟁에서 자신과 조국을 파멸에 빠뜨리고 만다. 아프로디테의 열렬한 후원도 두 여신의 질투심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제우스는 이처럼 탁월한 리더십으로 신들의 제왕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결단력, 정보력, 조직 관리 능력, 냉철한 정치 감각 등은 모두 집단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제우스가 발휘하는 것은 제왕의 리더십일 뿐이다. 독재자의 리더십이지 민주적인 리더십은 아니다. 자신만을 떠받드는 심복들에 둘러싸여 우둔한 백성들 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하던 제왕의 리더십은 자의식에 눈뜬 현명한 국민들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제우스’에게는 섬기는 마음, 포용력, 소통하는 자세 등과 같은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되지 않을까.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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