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전통주스토리텔링/ 79번째 이야기
탁주(濁酒) 스토리텔링 및 술 빚는 법
‘탁주(濁酒)’는 ‘농주(農酒)’, ‘탁배기’, ‘가주(家酒)’, ‘백주(白酒)’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우리나라 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의 하나이자 70년대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대중주의 하나였다. 삼국시대 이래 술 빚는 기술이 발달되어, 언제부턴가 ‘청주(淸酒)’와 ‘탁주’의 구별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탁주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탁주’가 먼저인지 청주가 먼저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술이 빚어지는 과정과 방법으로 미루어, ‘탁주’가 ‘청주’보다 먼저 빚어졌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탁주’와 ‘단술(감주, 甘酒)’을 가리키는 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탁주’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좋은 술’이란 뜻의 ‘미온(美醞)’, ‘요례(醪醴)’라는 술이름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이란 본시 곡물을 익힌 것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것으로, 몇 가지 원시 형태의 술을 빚는 예를 보면, 확실히 ‘탁주’가 먼저 빚어졌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케 되기 때문이다.
실례로 죽이나 백설기 형태의 술 빚는 방법이 가장 오래 된 술 빚는 방법으로 전해오고 있는데, 그 중 ‘일일주’, ‘삼일주’, ‘지주’와 같이 덧술을 하지 않는 단양주법(單釀酒法)의 술 가운데는, 죽이나 백설기를 지어 누룩과 섞어 빚는 방법의 주방문이 많고, 이들 술은 숙성이 끝나 뜰 때가 되어도 걸쭉하고나 희멀건 죽 형태의 ‘탁주’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술은 원시시대의 술처럼 알코올도수도 낮고 맛과 향도 떨어진다. 그러던 것이 술에 대한 기호가 점점 바뀌고, 더불어 술 빚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알코올도수도 높고, 맛과 향기가 좋은 술을 빚게 되면서 ‘청주’와 ‘탁주’를 구별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추론(推論)이다.
탁주류는 일반 탁주류와 고급 탁주류로 나누는데, 일반 탁주류는 ‘탁주’, ‘막걸리’, ‘재주(滓酒)’, ‘회주(灰酒)’, ‘탁배기’ 등으로 불러 왔다. 반면, 고급 탁주류에는 ‘이화주(梨花酒)’를 비롯하여 ‘추모주’, ‘혼돈주’, ‘예주’ 등 고유한 이름으로 불러왔으며, 체에 거르지 않아도 희고 뿌연 상태의 ‘이화주’, ‘사절주’ 등이 있는데, 이런 고급 탁주류들은 별도로 누룩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고, 재료도 쌀이나 찹쌀을 사용하여 여러 차례 덧술을 하여 주질을 높이기도 하였다. 탁주류는 본시 빈부의 차이나 신분의 상하를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빚어 즐김으로써, 우리 민족의 고유한 술로 자리매김 되었는데, ‘탁주’가 지금과 같이 신맛이 세고, 희멀건 상태의 박주(薄酒)로 변질된 것은 80여 년 전 부터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전란을 겪으면서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정부는 1965년 ‘양곡관리법’을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쌀을 대신하여 밀가루와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술을 빚게 하였던 것이 그 발단이다. 그러다가 1977년부터 쌀 생산량이 늘어나자 쌀 막걸리 생산이 권장되었지만, 술 빚는 법의 규제로 획일화된 ‘막걸리’가 상품화되면서 옛 맛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지금도 밀가루나 옥수수가루를 이용해 만든 ‘막걸리’는, 물을 많이 타서 희석시킨 탓에 금세 앙금이 있게 마련이라서,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손가락이나 젓가락으로 휘저어 마시는 웃지 못 할 습관도 생겨났다.
그러나 가양주로서 ‘막걸리’는 금세 앙금이 앉지도 싱겁지도 않거니와,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건강에 좋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특히 좋은 쌀과 직접 만든 누룩, 솜씨를 내어 직접 손으로 빚기 때문이다.
아무튼 ‘탁주’는 어떤 방법으로 빚었든지, 술을 오지그릇에 쳇다리를 걸치고 체에 밭쳐 내는데, 이때 손으로 밥알을 짓뭉개서 비벼대면 뿌옇고 텁텁한 형태의 술을 가리킨다. ‘탁주’의 제조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어떠한 술이든 다 같이 ‘탁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탁주’는 주원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원료 이름을 앞에 붙이기도 하는데, 흔히 일반 탁주와 고급 탁주로 분류하지만, 어떠한 원료나 방법으로 빚던지, ‘탁주’는 얻을 수 있는 까닭에 특별히 ‘탁주’를 빚기 위한 주방문(酒方文)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탁주’를 빚고자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좋은 술을 빚어 놓고, 그 술이 다 익으면 맑고 깨끗한 ‘청주’를 떠서 다 마시고, 남은 술찌꺼기를 술체나 술자루를 이용하여 비벼 거르거나 압착하여 걸러내면 ‘탁주’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탁주’를 빚기 위한 별도의 방문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농가에서는 <주세법>과 ‘밀주단속’을 피해 농사일과 같이 가용(家用) 목적으로 한꺼번에 많은 양의 술이 필요할 때 쉽게 빚어 마시기 위한 ‘탁주’ 제조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대개가 소위 ‘동동주’라고 불리는 ‘부의주’와 같은 단양주법의 ‘탁주’ 제조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지방의 한 예를 보면, 멥쌀 3말과 누룩 2장, 물 3동이를 재료로 하고 쌀은 백설기(무리떡)를 지어 술밑을 만들어 2~5일간 발효시켜 ‘탁주’를 얻는데 비해, 중부지방에서는 멥쌀 1말로 고두밥을 지어 누룩가루 5되와 물 1말을 한데 섞어 빚은 후, 10~20일간 발효·숙성시키는 등 같은 중부지방에서도 각각 다른 방법으로 술빚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탁주’라는 주종에 따른 분류명칭이 주품명으로 등장하는 문헌은 근대의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1936년에 출판된 한글 활자본으로, 그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1936년경은 일제의 수탈과 함께 민족문화말살정책이 극에 달하는 시기였고, 특히 밀주단속과 함께 주세정책이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때여서 그간 우리나라 술 문화를 주도해왔던 가양주(家釀酒)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며, ‘자가양주면허’를 받아 상품화되었던 ‘조선주(朝鮮酒)’는 이때부터 ‘약주(藥酒)’와 ‘탁주’로 국한되고, ‘정종(正宗)’을 비롯한 일본식 주류가 범람하던 시기라는 사실에서,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수록된 ‘탁주’ 주방문은 되새겨 볼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수천 가지의 가양주가 자취를 감추게 되는 시점이자,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술 가운데 ‘청주(淸酒)’라는 주종의 생산은 일본식 술인 ‘정종’ 등에 국한되었고, ‘조선 청주’는 ‘약주(藥酒)’로 그 명칭을 달리하게 되었으며, 특히 ‘탁주’는 일본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입국(粒麴)’ 방식으로 바뀌면서 본디 맛을 잃어버렸다.
처음부터 물을 많이 섞어서 빚는 도수를 낮춘, 그야말로 맛이 싱거운 ‘탁주’가 ‘막걸리’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주류시장의 주류(主流)를 이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양주장에서 일률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탁주’는 ‘막걸리’로 불리게 되는데, 그 맛에 실망한 사람들은 비밀리에 술을 빚어 마시곤 했다. 자가양주가 금지되고, 일제의 수탈에 의한 절대적인 식량 부족으로 좋은 술을 빚기가 어렵게 되다 보니, 적은 양의 쌀로 양을 늘리는 방법의 술빚기로서 ‘탁주’ 또는 ‘막걸리’를 빚는 방법들을 강구하게 된 것이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수록된 ‘탁주’ 주방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탁주’ 주방문을 살펴보면, “하등 멥쌀(싸라기도 좋음) 1말을 절구에 찧어 굵은 체에 쳐 낸다. 쌀가루를 시루에 쪄(설기) 떡을 만든 다음, 차게 식기를 기다려 물 (1~2말)과 누룩 4장(여름은 4장 반)을 가루 내어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이불로 덮어 겨울 10일, 여름 7일간 발효시킨다.”고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주방문은 ‘삼일주’ 등의 속성주(速成酒) 주방문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탁주’ 주방문 말미에 “이렇게 빚는 술이라도 5되만 밑을 하고, 닷 되는 지에처럼 쪄서 위 덮으면 매우 좋으리라.”고 하여 단양주법(單釀酒法)의 ‘탁주’를 이양주법(二釀酒法)으로 빚는 방법을 함께 수록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술 빚는 방법을 달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우 탁주(又 濁酒)’ 주방문에는 “이것을 이르기를 ‘찹쌀지에빚이(찹쌀 동동주)’라 하는 것이며, 식전 해장에는 약주술보다 매우 나으며, 소주 해장은 단명할 장본이니라.”고 하였다.
또 “물을 적게 하면 독하니, 짐작할 것이요, 제일 물이 좋아야 술맛이 극품 되나니라. 또 명주(明紬) 전대(戰帶)에 짜서 내면 더욱이 맑게 되나니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탁주’ 주방문이라고 하였으나, 그 뿌리가 ‘청주’의 한 가지이자 흔히 ‘동동주’라고 불렸던 ‘부의주(浮蟻酒)’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탁주’ 주방문에는 “이전에 맑은 술보다 독기가 적고 해가 과히 없다 하나, 취하기 전에 배부르고, 정신이 띵하고, 눈구석에 비지가 끼고, 오래 먹으면 해소나기 쉽고, 음성이 탁하여지나니, 그런 고로 눈동자가 맑은 음성이 적으니라. 단지, 값이 흔하고 파는 데가 많아서 잘들 마시나 술 단은 천품이니라.”고 하였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이전, 다시 말하여 자가양주가 생활화되었던 조선후기까지는 ‘탁주’ 빚는 법이 없었고, 맑은 술을 빚고자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일제 강점기 들어 자가양주의 금지와 밀주단속으로 술빚기가 자유롭지 못하자, 편법과 속성법의 ‘탁주’들이 등장하면서 ‘탁주’가 “천품(賤品)의 술”로 취급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배경에는 ‘탁주’ 중심의 양조면허와 입국방식의 획일적인 ‘막걸리’들이 등장하는데, 이때 조선의 ‘탁주’는 급수비율을 250%까지 늘림으로써, 지금의 ‘막걸리’ 알코올도수와 같은 술만을 생산하도록 유도함에 따라 ‘탁주’는 그 맛이 싱겁고 풍미가 떨어지게 되어 점차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기에 이른다.
이에 양주업자들은 술에 당(糖)이 남아 있는 ‘미숙주(未熟酒)’를 출고함으로써, 어느 정도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지만, ‘미숙주’로부터 초래되는 숙취와 트림, 설사 등의 부작용을 낳게 되면서, ‘막걸리’는 소위 ‘서민의 술’ ‘농민의 술’ ‘싸구려술’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탁주’는 어떠한 술 빚기에서도 얻을 수 있는 까닭에 특별히 탁주를 빚기 위한 주방문(酒方文)은 없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탁주를 빚고자 할 이유가 없다.”고 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덧붙여 1400년대 초 <活人心方>을 비롯하여 <山家要錄>, <需雲雜方>, <음식디미방>, 그리고 1925년에 저술된 <주방문조과법>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양주(釀酒) 관련 문헌 76종 가운데,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에 간행된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이전의 어떠한 문헌에서도 ‘탁주’라는 주품명의 주방문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해준다.
물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쓴 <朝鮮固有色辭典>에 수록된 ‘탁주’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朝鮮固有色辭典>이 저술되었던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의 ‘탁주’가 입국(粒麴)이 아닌, ‘조국(粗麯, 粗麴)’인 전통누룩으로 빚어졌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환언하면, 시대에 따라 문화는 바뀐다. 양주문화(釀酒文化)도 음주문화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소곡주’를 비롯하여 ‘삼해주’ ‘호산춘’, ‘방문주’, ‘백화주’ ‘백일주’ 등 숱한 전통 명주들보다 ‘탁주’인 ‘막걸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막걸리’ 등 ‘탁주’ 빚는 법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탁주’나 ‘막걸리’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서 술이름(酒名)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탁주’나 ‘막걸리’는 술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상품명이 될 수 없거니와, 언제까지 주종분류 기준인 ‘탁주’ 또는 ‘막걸리’라는 명칭으로 수천 년에 이르는 우리의 양주문화를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것인가.
이제 ‘탁주’와 ‘막걸리’의 대중화, 나아가 세계화의 출발은 우리 술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알려고 하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 탁주(濁酒) <朝鮮固有色辭典>
다쿠슈. 탁주. 막걸리. 밀가루 및 조국(粗麴)과 찌거나 끓인 찹쌀·멥쌀 및 물을 넣어 양조한 것을 주물러 으깨어 여과한 백탁액이다. 가격은 가장 저렴하고, 일반 하층사회의 기호에 적합하다는 면에서 수요가 많기로는 주류중 제일이다. 부패하기 쉽고, 사계절을 통해 양주된다.
◈ 濁酒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주 원료:멥쌀(찹쌀) 1말, 누룩 4장(여름은 4장 반), 물
◇술 빚는 법:①하등 멥쌀(싸라기도 좋음)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절구에 찧어 굵은 체에 쳐 낸다. ②쌀가루를 시루에 쪄(설기) 떡을 만든 다음, 고루 펼쳐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백설기에 물과 누룩 4장(여름 4장 반)을 가루 내어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이불로 덮어 겨울 10일, 여름 7일간 발효시킨다.
<탁주 濁酒> 탁주라 하는 것은 ‘막걸리’라 하기도 하고 ‘탁백이’라 하기도 하고 ‘막자’라 하기도 하고 ‘큰술’이라 하기도 하나니 ‘상(常)막걸리’는 하등 쌀이나 쌀래기나 한말 가량을 절구에 여 굵은체에 처서 싸내여 식흰 후에 항용 누룩 넉장 가량을 여 석그되 여름에는 반장 더 늣나니 물은 맑은술 보담 더 붓고 덥허두면 겨울에는 열흘동안이요, 여름에는 니레동안이면 걸으되, 술맛을 보아가며 물을 치나니라. 이러케 빗은 술이라도 닷되만 밋츨하고, 닷되는 지여처럼 젓서 우를 덥흐면 매우 조흐니라.
*주방문 머리에 “탁주라 하는 것은 ‘막걸리’라 하기도 하고, ‘탁백이’라고도 하고 ‘막자’라 하기도 하고 ‘큰 술’이라 하기도 하나니”라고 하여 ‘탁주’의 성격에 대해 소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막자’나 ‘큰 술’이라는 표현은 이 기록에서 처음 목격된다.
◈ 濁酒(別法)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주 원료▴밑술:멥쌀(찹쌀) 5되, 누룩 4장(여름 4장반), 물 (1~2말)
▴덧술:멥쌀(찹쌀) 5되
◇술 빚는 법▴밑술:①멥쌀(찹쌀도 좋음) 5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절구에 찧어 굵은 체에 쳐 낸다. ②쌀가루를 시루에 쪄(설기) 떡을 만든 다음, 고루 펼쳐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백설기에 물 (1~2말)과 누룩 4장(여름 4장 반)을 가루 내어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이불로 덮어 겨울 5일, 여름 3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멥쌀(찹쌀) 5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에 밑술을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이불로 덮어 7일간 발효시킨 후, 굵은 체에 거르고 다시 고운체에 거르면 빛깔도 좋고 훌훌하고 맛이 좋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