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고 싶은 어릴 적 꿈, 우리술 때문에 이뤄
호서대학교 호텔외식조리학과 김선희 전임강사
김선희(34)씨는 행복하다. 어렸을 적 꿈을 성인(成人)이 돼서 이뤘기 때문이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모두가 그걸 이루지는 못한다. 그녀는 다섯 살 때부터 가르치는 직업이 꿈이었다. 어렸을 적 꿈이었지만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은 돌고 돌기를 여러 번 한 끝에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수학과(科) 선생(혹은 교수)이 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때 유독 수학과목만 못했으며, 교육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뜻하지 않은 여러 대학의 입학과 자퇴를 반복하며 빛이 바랬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했다. 먼 길을 돌아오는 중 만난 우리술 덕분에 김선희씨는 그토록 꿈꾸던 길을 걷게 됐다. 15년여를 치열하게 살아온 까닭인지, 그녀에게선 벌써 인생의 3분의 2쯤은 산 것 같은 연륜이 느껴졌다.
앞으로의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강원도 주문진 출신의 김선희씨는 고교 졸업 후 첫 대학의 전공학과로 전자계산과를 지원했다. 그러나 2개월 후 중도 포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그리곤 다음 해 다시 다른 대학으로 재입학했다. 이번엔 기초과학부였다. 역시 1년 다니다 스스로 나왔다. ‘간만 보고’ 나오길 두 차례. 이번엔 천안외국어대(지금의 백석문화대)를 선택했다. 외식산업과. 조리실습을 할 수 있었고 한식이나 양식·일식 등과 관련된 자격증을 하나둘 취득하고 나니 그제야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았다. 너무 재밌었던지 요리학원까지 다녔다. 거기서 만난 학원장이 그녀에겐 구원투수와 같았다. 당시 그 원장은 학원을 운영하면서 강의도 하고, 대학에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김씨는 그때부터 학원장을 그녀의 롤모델로 삼았다.
하루는 원장이 그녀에게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보라는 제의를 했다. 그렇게 학원 강사를 하며 꿈을 더 키웠다. 이후 한 외식업체에선 양식조리사 업무도 맡아 했다. 나이 서른이 되기도 전, 그녀는 한․양․일․중식 자격증은 물론, 복어요리와 제과․제빵, 케이크 디자이너 자격증에 한식·양식 산업기사 자격증까지 모두 따냈다.
김선희씨는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냈다. 그토록 꿈꾸던 교수가 되려면 대학원을 마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렵사리 4년 만에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에 들어갔다. 전공은 한국전통음식.
“그때까지만 해도 제 주(主)전공은 양식(洋食)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 전통음식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많은 걸 배워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쉽진 않았어요. 장(醬)류, 김치류, 떡 등 우리 음식이 세분화 돼 있잖아요.”
김씨 본인은 몰랐지만 그녀는 점점 술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학원 수업 가운데 허시명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이 있었어요. 물론 술과 관련된 수업이었죠. 제 기억에 굉장히 유익했어요. 어느 날 허 선생님이 한 교육기관을 알려주셨어요. 술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였던 거죠. 그곳에선 실무와 이론을 모두 겸비할 수 있다는 얘기에 서둘러 서울까지 올라와 수강신청을 했죠.”
그때가 2007년. 그녀가 간 곳은 북촌문화센터였다. 음식을 공부하며 느꼈던 치열함과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한정된 공간에서 초(秒)를 다투고, 재촉해대고, 종류도 무한한 음식분야와 달리, 도심 속의 한옥에서 여유롭게 얘기하며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양조(釀造)법을 익히는 게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느낌이 그렇다면 술이 나에게 딱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즈음이다. 기초반 수강이 끝났지만 그는 최종 연구반까지 마친 후, 결국 술을 자신의 전공으로 선택하기로 맘먹었다.
그러고 나니 김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백석대의 한 교수가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다. 요지는 “우선 김선희씨는 우리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과, “더불어 외식산업과 1회 졸업생인데다, 실무경험도 있고”, “석사까지 마쳤으니 자격도 되기 때문”에 강의를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다. 주저 없이 응했고, 꿈은 현실이 됐다. 그뿐이 아니다. 한 지인(知人)의 소개로 호서대 호텔외식조리학과 학점은행제 주임교수를 만나 “마침 빈자리가 있으니 강의를 맡아보라”는 제의도 받게 됐다. 두 곳 모두 지난해 3월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김선희씨는 현재 백석대(외식산업학부)에선 식품위생법규와 공중보건학을, 호서대(호텔조리외식학과)에선 영양학과 전통음식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가르치기만 하진 않는다. 여전히 또 배운다. 명지대에서 식품영양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의미 있는 수상(受賞) 경험도 있다. 2008년 서울세계음식박람회 한국음식전시 전통주부문에선 금상을, 2009년 경주 술과 떡 축제 전통주개발 전시부문에선 은상을 탔다.
“그 좋은 이력(履歷)들을 다 어디에 쓸 거냐?” 하고 묻자, 때 되면 천안지역에 작더라도 술 교육기관 하나쯤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소박하다고 말했지만, 서울 외에 변변한 술 교육기관 하나 없는 현실임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일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