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의 우리 술 바로보기
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보기 153
전통주를 마시기에 좋은 잔은 무엇일까?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결혼, 취업 등 아주 큰 선택이 있는가하면 오늘 저녁 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사소한 것도 있다. 사소한 선택은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즐거움과 아쉬움을 만들 수는 있다. 술자리에서의 선택도 그럴 것이다. 오늘은 어떤 술집을 갈까? 어떤 술을 마실까? 어떠한 안주를 먹을 것인가? 이 선택으로 즐거움도 실망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선택 중에 하나로 잔에 대한 고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술과 잔의 매칭은 고정 되어 있다. 잔이 없지 않는 한 소주는 작은 소주 잔에 맥주는 맥주 잔, 와인은 와인 잔에 마신다. 이건 특별히 학습을 하지 않아도 술집이나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되어진 결과이다.
그럼 “왜 술 종류마다 술잔의 모양은 다를까?”
잔은 술을 마실 때 쓰이는 필수도구이다. 그러기에 잔의 디자인과 형태에 따른 이야기 들은 과거부터 많았다. 각 주종에는 그 술을 맛있게 마실 수 있게 하는 과학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술의 종류와 잔의 크기가 알코올 도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각각의 술마다 한 잔을 마실 경우에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이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가득 채운 위스키 한 잔(35㎖, 도수 40%)에 알코올이 14㎖,소주잔(60㎖, 도수 20%)과 맥주잔(225㎖, 도수 4.5%)은 각기 12㎖,10㎖이 담긴다. 크든 작든 한 잔에 10~14 ㎖의 알코올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알코올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다. 술을 마시는 이유 중에는 맛과 향을 즐기는 것이 더 크다.
<향기로운 한식, 우리술 산책> 책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적혀 있다. “소믈리에를 대상으로 진행한 관능 평가로, 맥주를 양주잔에, 막걸리를 와인 잔과 소주 잔에, 와인을 막걸리 잔과 소주 잔에, 희석식 소주를 와인 잔에 각각 다르게 마시고 맛을 평가해보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막걸리를 소주 잔에 마시면 산미가 더 강해지고 밍밍하게 느껴졌으며, 막걸리를 와인 잔으로 마시면 향이 더욱 많이 피어오르고, 와인을 소주 잔에 마시면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처럼 같은 술이라도 잔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와인 잔을 살펴보자. 현재와 같은 와인 잔의 모습은 19세기 중반 이후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긴 다리와 얇고 섬세한 글라스가 점차적으로 확산되었다. 와인은 산도, 당도, 탄닌, 알코올 등 향과 맛에 변화를 줄 요소들이 많다. 와인 잔의 모양에 따라 맛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과 아로 마의 집중도가 다르게 전달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많이 보는 와인 잔은 보르도 레드 와인 잔이다. 크기는 조금 큰 편으로, 탄닌의 텁텁함을 줄이고 과일 향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글라스의 경사각이 완만하다. 와인이 혀끝부터 안쪽으로 넓게 퍼질 수 있도록 입구 경사각은 작으며 볼은 넓다. 부르고뉴 스타일의 레드 와인 잔은 보르도 스타일의 잔에 비해 보울 부분이 더 넓기 때문에 은은한 향을 많이 퍼지게 했다가 모아주는 효과가 있다. 볼이 넓고 입구가 좁아 향을 잘 모아주기 때문에 바디감이 가볍고 섬세한 레드 와인이나 향이 진한 화이트 와인을 담아 마시기에 좋다.
맥주잔도 와인과 비슷하다. 플루트 형태의 가늘고 긴 모양은 탄산이 빨리 날아가지 않고 거품과 색깔을 잘 보여준다. 또한, 긴 모양의 형태는 향을 위로 올리는 작용을 하여 마시는 사람이 향을 잘 느낄 수 있다. 람빅이나 필스너 같이 향이 좋은 맥주에 적합하며, 라이트 라거 맥주에도 잘 어울린다. 튤립 잔은 잔으로 잔 입구가 오목하고 몸통이 넓어 맥주가 잔 안에서 소용돌이 쳐 두터운 거품이 생기며, 몸통이 넓어 맥아의 맛을 잘 느끼게 하고 향을 한데 모아준다.
와인과 맥주뿐만 아니라 위스키나 사케 모두 각각의 전용 잔이 있다. 특히, 술과 전용 잔에 대한 설명들이 인터넷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것을 술을 마시는 방법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된다.
그럼 전통주를 마시는 전용 잔은 무엇일까? 과거 막걸리는 ‘벌컥 벌컥 들이켜야 된다’는 통념을 감안해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는 잔을 선호했다. 가볍고 깨지지 않는 노란색의 양은 잔(330㎖)을 업소에서 많이 사용했다. 이후에는 조금 크기는 작아졌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잔(130㎖)도 사용을 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막걸리 술이 많아지면서 작게 만든 도자기 잔(70㎖)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잔이 프리미엄 막걸리의 맛과 향을 잘 느끼게 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약주 잔도 그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작은 용량의 낮고 입구가 넓은 유리로 만들어진 잔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나오는 프리미엄 약주들은 이런 잔에 마시면 향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와인 잔에 마셔야지 약주에서 만들어진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증류식 소주도 과거 희석식 소주처럼 한 입에 마시는 작은 잔이 아닌 향기와 맛을 즐길 수 있는 잔의 보급이 필요하다. 증류주인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경우도 와인 잔과 비슷하게 향을 느끼면서 마실 수 있는 위스키용 전용 잔이 있다.
이제 우리 술들도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고급화 된 술들이 많이 있다. 프리미엄 전통주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전용 잔이 필요해 졌다. 잔의 형태와 역할을 다시금 고민해야 할 때다. 잔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술의 향과 맛이 바뀌고 그로인해 술을 마시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전통주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전용 잔에 대한 토의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이대형 박사의 우리 술 바로보기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직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 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