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그대 천사의 얼굴에 숨은 뜻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2020년 한 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 중순으로 치닫는다. 흐르는 세월의 강물 속에 문득 시간의 본질을 되새겨 본다. 시간(time, 時間)이란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그 단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길이, 질량과 같이 다른 물리량을 정하는 기본단위이다.
국제단위계에서 시간의 단위는 초(second, 기호 s)이며, 물리학에서의 시간은 초의 표준과 비교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정의된다. 시간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정의된다. 철학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시간,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시간, 생명체에 있는 생태 시간 등이 그 예이다.
물리학에서의 시간은 시간을 측정하여 숫자 값을 얻어내는 절차를 합의함으로써 정의된다. 측정은 표준과의 비교이므로, 시간의 측정은 시간의 기본 단위인 초를 어떻게 정의하는 가로 귀결된다. 시간의 표준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자연 현상인데, 반복되는 횟수를 세어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초의 정의는 보다 더 규칙적이고 변하지 않는 자연 현상을 찾아 평균태양초, 역표초를 거쳐 원자시계를 사용한 초로 여러 번 바뀌었다.

현재의 통용되는 1 초는 1967년의 제13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세슘-133 원자의 바닥상태에 있는 두 초미세 준위 사이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선의 9,192,631,770 주기의 지속 시간’으로 정의되었고, 1997년에 국제도량형위원회(CIPM)에서는 ‘이 원자가 온도가 0 K인 바닥상태에 있는 원자를 가리킨다’라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시간의 단위는 초 외에 분(minute, min)과 시간(hour, hr)이 있는데, 60진법을 따라 1 min = 60 s, 1 hr = 60 min = 3,600 s이다. 더 긴 시간으로는 일(day)과 년(year, yr)이 있는데, 1 day = 24 hr = 86,400 s, 1 yr = 365 day = 31,536,000 s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전물리학에서 시간은 공간과는 독립적이며, 모든 관찰자에게 시간은 똑같이 측정된다고 가정된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서로 섞이게 되어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동일한 두 사건(event) 사이의 시간이 서로 다르게 측정된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움직이는 시계가 자기가 들고 있는 시계보다 천천히 가는 것으로 관측되는 시간 지연 현상이 생긴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계가 더 천천히 가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듯 “시간도 하나의 차원이다 혹은 아니다” 논란이 많다. 시간에 대한 개념도 본질적으로 있다기 보다는 인간이 정해놓은 하나의 규칙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동물들은 시간이 지나가는지를 인식할지 궁금하다. 단세포생물들은 당연히 인식할지 더 의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2차원인 평면에서 어떠한 존재가 있다. 이 존재는 평면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평면 안에서 죽는다. 그러던 어느 날 3차원의 존재인 정육면체가 다가왔다.
2차원의 존재는 그저 사각형으로 인식한다. 정육면체가 점프해서 잠깐 평면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내려오는 날에는 2차원의 존재는 옆에 있던 친구가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연결해보면, 내 옆에 있는 친구, 가족, 동료들이 갑자기 한순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꼴이다.

그러나 정육면체가 점프했다는 것을 2차원의 존재는 이해를 못해도 3차원의 존재는 이해를 할 수 있고, 설명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2차원의 존재에게 설명하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리적 시간과 생리적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달라서 개인의 생리조건이나 경험의 질과 양에 좌우되는 주관적 시간이다. 예를 들면, 같은 길이의 물리적 시간일지라도 유년기의 생리적 변화는 장년기 ·노년기의 변화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
또 장년기를 지나면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고, 강렬한 경험이 많이 쌓이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등 심리적·생리적 시간은 보편적·물리적 시간에 대하여 주관성이 강한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한 우주 속의 아름다운 별 지구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적 본질은 어떨까? 어떤 차원에서든 보는 시각과 인식이 같고 참일까? 같은 차원에서도 당연히 같은 인식과 시각일 수도 있고, 다른 인식과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다른 차원의 경우에는 같은 인식과 시각이 전혀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한계를 도외시한 채, 우리는 동시대 속 동일 시간의 한 흐름에서는 서로 다른 이들 간에도 모두 인식이 같고, 보는 시각에 차이가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같은 인식과 같은 시각이므로 보이는 현상도 참이라고 믿으며, 한 시대의 집단 흐름 속에서 우리는 시대를 이끌 리더를 찾아 의지한다.
심지어 우리의 인식과 시각에서는 리더가 참이 아니라며 과감하게 집단위력으로 내몰고, 시간 속의 주류(主流)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주의 근본인 우주심(宇宙心) 안에서 편안하게 존재하려면 참인척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고, 처음부터 본심(本心)을 드러내고 당당해야만 한다. 단지 시대의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욕심에 본심을 숨기고 참인척하며 자신들의 세계만을 증폭하는 데 혈안이 된다면, 그대 천사의 얼굴에 숨은 뜻도 결국 드러나고 허망하게 무너질 뿐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왜? 애써 외면하려 하는가?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