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언제 밥 한번 먹자”
누가 통계를 내 봤는지 모르지만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1위라고 한다.
왜 우리는 친구끼리 또는 적당한 지인끼리 헤어지면서 습관적으로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하는 것일까. ‘밥’을 ‘술’로 바꿔 “언제 술 한잔 하자”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왜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일까?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은 한국인들이라면 거의 빈말로 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죽했으면 연세대 어학당에서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뜻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강의를 들어 보지 못해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하는지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강의에서 한국인들이 당신들에게 “언제 밥 한번 먹자” 또는 “언제 술 한잔 하자”는 말은 뻔 한 거짓말이니 새겨듣지 말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다려 보라고 해야 할까.
<언제 밥 한번 먹자>의 저자인 정영욱 작가는 “밥 한번 먹자.”는 것을 인사말로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고맥락’ 문화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헤어지기 아쉬워서 또 보고 싶을 때 흔히 우회적으로 밥 먹자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과 같은 ‘저맥락’ 사회에선 자신의 의사를 문자로 분명히 밝히며 소통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미국사람들도 “Let′s hang out sometime”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로 “See You Again”이라는 말이 “언제 밥 한번 먹자”와 유사하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문화를 고맥락문화와 저맥락문화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은 대부분 고맥락문화권에 속해있다고 했다.
고맥락 문화의 특징은 우회적이며 애매함, 함축적 이다. 이는 역사, 습관 등을 공유하고 있는 비율이 높아 집단주의 가치관이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반면 저맥락문화는 메시지 자체에 정보들이 정확하게 담겨 있다. 집단 내에서 서로 공유하고 있는 맥락의 비율이 낮아 개인주의와 다양성이 발달해 있다. (네이버 블로그 홈스테이어학원 자료 참조)
코로나19 창궐로 나다니지 못하고 집콕만 하고 있다 보니 설사 빈말이라도 말이라도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소리가 그리워진다.
코로나는 소상공인들은 물론이고, 관광업계, 운수업계, 주류업계에도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홈술, 혼술이 유행한다고 하지만 대폿집에서 마시는 술보다는 적게 마시기 마련이어서 주류도매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청년층에게는 삶의 기쁨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앗아갔다. 코로나 펜더믹이 장기화 될 경우 사회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벌써 그런 징후가 보인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화로 전환되고 있다. 대면이 아니라 비대면으로 전환은 직장인들의 재택근무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적용되어 학교친구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동창이라든가 학우애 같은 말은 사전에서나 존재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가 2만여 명 줄어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출생자 수가 27만여 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데 비해 사망자 수는 30만 명을 넘으면서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 때문에 지난 해 3~9월 혼인 건수가 12% 감소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이승만 대통령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각인되었다. 해방 직후 우리 사회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분열하고 있을 때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며 하신 말씀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 말은 1754년 벤저민 프랭클린이 자신이 운영하던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라는 신문에 실은 ‘가담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는 제목의 만평에서 비롯한다.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부모님 찾아뵙고 세배도 드리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나 이런 걱정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을까. 많은 나라들은 백신을 들여다가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는데 K방역을 자랑하던 사람들은 엉뚱한 변명을 하기에 바쁘다. 참으로 무능하고 한심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밥 한 번 먹자는 말조차 하기 싫다.
<교통정보신문·삶과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