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100세 시대 세계의 중심은 신 중년이다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누가 뭐래도 한민족의 새해는 설날로부터 시작된다. 희망찬 신축년 새해도 그렇다. 설날엔 전통적으로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세배를 받으며, 세뱃돈과 덕담을 건네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이어졌다. 그러나 금년에는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아 5인 이상 가족모임까지 금지되어 세배까지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지만, 우선 저 출산 고령화 시대의 핵심적 흐름을 짚어보며 모두에게 희망의 덕담을 전하고자 한다.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우리도 ‘정해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이 만 65세로 법적 ‘노인’이 됐다. 앞으로 8년간 매년 80~90여 만 명이 이 대오에 합류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저 출산과 고령화, 인구 감소가 맞물려 조만간 우리 사회가 겪어보지 못한 재앙에 빠져들 것이라는 경고가 가득하다.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몰고 온 팬데믹도 세상의 변화를 더욱 재촉하고 있다. 늘어나는 노인은 정말 사회의 골칫거리일까. 정말 그럴까? 그렇지만은 않다.
“10년 내 세계의 중심은 노인과 여성으로 이동한다”그런데, 한국의 베이비부머(1955~1963년까지 700만여 명, 1974년생까지 1,700만 명)는 미국(1946~1964년까지 근 20년간 태어난 세대)이나 일본(1947~1949년까지 800만여 명)보다 젊다. 앞서나간 나라들을 참고하기 좋은 여건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을 살펴보면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 가령 요즘 마케팅과 산업, 미디어 등에서는 청년 세대를 떠받들고 탐구하느라 애쓰는 분위기지만, 팬데믹 이후를 예측하는 글로벌 석학들은 이 같은 논의가 잘못된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 와튼 스쿨 마우로 F. 기옌 교수는 저서 「2030 축의 전환 :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 거대한 물결(2020)」에서 세계의 부와 힘의 중심은 향후 10년 내에 대서양에서 아시아 아프리카로, 밀레니 얼 세대에서 실버 세대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요즘 기업들이 떠받드는 밀레니 얼 세대보다 실버 세대의 경제력이 몇 배 크고 소비도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60대 이상이 전 세계 자산의 최소한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80% 이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아가 10년 내에 남성보다 더 부유해진 여성이 늘고 이들의 기호와 선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업가나 정치인은 설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령사회를 위한 기술과 디자인을 연구하는 미국 MIT 에이지랩 창립자 조지프 F 코글린도 저서「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2019)」에서 “기업들이 전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거머쥔 노년층을 무시하고 있다”며 “그런 기업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자 집단은 이제 실버 세대이다 ‘젊음’과 ‘나이 듦’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사라지면서 세대 간의 역학 관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은 차고 넘친다. 노인을 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제 저널리스트가 석학 8명과 한 인터뷰를 엮은 책 「초예측(2020)」에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미래 사회에서의 관건은 ‘쓸모없는(無用) 계급이 되느냐 아니냐’이지 나이가 아니라고 갈파했다.
같은 책에 소개된「라이프 시프트(100세 시대)」의 저자 린다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100세 시대에는 60, 65세 은퇴란 있을 수 없다”며 일하는 방식의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취업 뒤에도 새로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 생애를 통해 배우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는 먹었지만 건강하고, 능력 있고, 부유한 베이비부머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사회의 틀도 이에 맞춰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로봇과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시장도 노년층이 가장 큰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본다.
국내 고령화친화사업의 시장 규모 추이(2020년 기준)를 살펴볼 때도 우리가 아는 ‘노인’이 아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도 윗세대보다 학력이 높고 연금이나 자산 등 경제적 여유가 있으며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 이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정보화에 대한 이해가 깊으며 삶의 질과 행복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까지 OECD 국가 중 최고 빈곤율(49.6%)을 기록한 기존 노인 세대와는 다르다. 스스로 노인이라 생각지 않는 이들은 ‘신 중년’ ‘신연장자’ 등 다른 용어로 불려야 마땅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들이 펼치는 인생 제2막 풍경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라진다.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현실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때 암담한 미래가 찾아오게 된다.
가령 저 출산으로 생산 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에, 이들이 가급적 오래 부양 ‘받는’ 쪽이 아니라 부양 ‘하는’ 쪽에 서게 해야 사회 전체의 부담이 줄어든다. 풀이 죽고 움츠린, ‘죽지 못해’ 사는 노년이 우리 청년들의 미래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 후반,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즐겁게 맞기 위해 반드시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은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이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덕담이자 화두이다. 올 설날 아침엔 따끈한 떡국 한 그릇을 모일 수 있는 가족들과 나무며, 진달래꽃 향기 달콤한 내 고향 두견주 한잔을 조상님께 올리고, 자식들과 정겹게 음복(飮福)하고 싶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