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끝나고, 이 술

사랑하는 나의 지혜 9기 학생들 단체사진. 곧 있을 졸업을 축하한다.

音酒동행

졸업식이 끝나고, 이 술

문 경 훈 교사(지혜학교)

 

특별한 날엔 특별한 노래가 있다. 가령 비오는 월요일엔 carpenters의 ‘rainy days and Mondays’가, 마찬가지로 비오는 수요일에는 다섯 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 제격이다.

벚꽃 필 무렵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도처에서 울려 퍼지고, 10월 31일이 되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빼놓을 수 없다. 12월의 캐럴과 1월의 눈과 시작의 노래가 지나고 나면 어느새 3월이 되고 봄노래가 귓전에 맴돈다.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는 기본에 충실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배혜정도가의 우곡생주, 걸쭉하다 싶을 만큼 진하고 달다. 한 번 마셔보면 막걸리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깰 수 있다.

그리고 이맘때면 아무래도 졸업에 관한 노래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경우는 직업 특성상 매년마다 졸업식을 바라보는 입장이라 더욱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 졸업식에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식의 노래는 세대를 아우르는 클래식으로 남았고, 015B의 ‘이젠 안녕’은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눈물 훔치게 만드는 명곡이 되었다. 교생 실습을 했던 그 해, 비록 졸업은 아니었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아이들에게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을 들려주었다. 일반적인 졸업 노래들이 이별의 아쉬움과 새로운 시작의 응원을 이야기 한다면, 브로콜리 너마저는 거기에 시대에 대한 비판과 자조,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살아가려는 개인의 다짐을 더했다.


오산 양조장의 오매백주. 묵직하지만 목넘김이 부드럽고 달디 달다. 도수가 생각보다 높으니 맛있다고 막 먹으면 금세 취할 수도 있으니 조심.
말이 필요 없는 마니아의 술, 송명섭 막걸리. 백문이 불여일음일테니 꼭 마셔보길.

‘이 미친 세상을…믿지 않을게.’ 이 카타르시스란! 역시 노래 가사도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가 쓰면 다른 건가 싶기도 하다. 졸업에서 약간 벗어났지만 양희은 씨의 ‘내 어린 날의 학교’도 이맘때 듣기 딱 좋은 노래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OST로 사용되었던 이 곡은 ‘미루나무 따라 큰길 따라 한참을 걸어가던’ 오래전 시골 학교 풍경과 여름날 시골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듯 느린 듯 여유로운 멜로디, 무엇보다 따스하고 푸근한 양희은 씨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명곡이다.

전람회의 3집 앨범 명이자 수록곡이기도 한 ‘졸업’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가사 자체야 사실 조금 평범하지만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친구이던 김동률과 서동욱이 함께한 마지막 정규앨범이라는 의미를 곱씹으면서 들으면 아무래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노래는 이후에 2AM이 리메이크 하여 한 번 더 유명해졌으니 역시 명곡은 영원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노래들이 모두 졸업을 하거나(혹은 했거나) 떠나보내는 학생들의 마음에서 쓰인 곡이라면, 브로콜리 너마저의 2019년 작 ‘졸업식이 끝나고’는 화자가 학생들을 떠나보내는 선생님이다.

내가 아는 한 선생의 시점에서 졸업을 노래한 최초의 노래인데, 역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했을 서울대 졸업생의 마음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농담이고,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불러줄 수 있는 노래가 생겼다는 사실이 그만큼 반가웠고 기뻤다.

나는 특히 마지막 가사를 제일 좋아한다. ‘언젠가 살다가 돌아보렴, 참나무처럼 서 있을게.’ 나 역시 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고 늘 다짐하곤 한다. 아직까진 결심이 잘 지켜지고는 있는데 나쁜 점도 나무처럼 안 고쳐진다는 것은 좀 문제긴 하다.

2월 호를 준비할 때 사랑과 졸업이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를 놓고 고민했다. 밸런타인데이가 있으니까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좋을 것 같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졸업으로 낙점했다. 윤덕원은 노래로 이야기했지만 난 그런 재주는 없기에 이제 정말 몇 주 뒤면 졸업하는 내 어린 친구들에게 글을 쓰고 싶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지면을 빌어 설교하는 꼰대(?)짓을 하고 싶었다.

비록 부담임이지만 그래도 한솥밥 먹은 사이니 고깝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일 테니 내 제자가 아니더라도 잘 봐주길 바란다. 물론 다짜고짜 인생에 관한 설교를 하면 쳐다도 안 볼 테고, 스무 살 됐다고 한창 집에서든 밖에서든 술을 마시고 있을 테니 술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려 한다. 이름하야 ‘제자들아, 졸업식이 끝나고, 이 술을 마셔라!’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만 당부하자면 세상 모든 것에는 기호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남들이 다 좋다 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인 게 기호다. 영화도, 음식도, 음악도, 술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 다만 잘 만들어진 술과 덜 그런 술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흔히 평론가들)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는 이유는 단지 잘난 척하고 싶어서거나, 계몽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단지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것들이 있고 각기 매력이 있으며 그 안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이른바 지평을 넓혀주고 싶어서이다. 쉽게 얘기해서 평생 치킨만 먹던 친구에게 백숙이나 찜닭을 추천해주는 것이랑 비슷한 이치란 뜻이다. 물론 경험 이후의 선택은 본인의 몫 인계 당연하고. 섣부른 조언과 추천을 아니꼽게 보는 요즘이라 노파심에 적어보았다.

서설이 길었으니 이제 진짜 추천해본다. 첫째, 식당에서 소주를 마실 때 ‘한라산’이 있으면 한라산을 마셔라. 가격이 500~1000원 정도 더 비싸지만 도수가 좀 더 높고 부드러우며 맛있다.

이유는? 그냥 내 기호에 가까우니 일단 한 번 마셔보고 평가해라. 둘째, 막걸리는 숙취가 심해서 싫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 모든 술은 숙취가 있다. 와인을 비롯한 발효주가 증류주에 비해 조금 더 심할 수는 있으나 위스키나 와인도 막걸리처럼 마시면 상상도 하기 싫은 숙취가 찾아올 것이다. 애초에 숙취가 찾아올 만큼 술을 많이 마시지 마라.

두술도가의 희양산 막걸리.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막걸리이기도 하다. 9도를 추천.
여주 홍천이포주조장의 휴동막걸리. 명사들이 사랑한 술이다. 일단 접하면 막걸리의 깊은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셋째, 다양한 술을 마셔 봐라. 요즘은 대형 마트에만 가도 최소 5종 이상의 막걸리가 있다. 굳이 조언해주자면 ‘지평 막걸리’와 ‘느린마을’을 추천한다. 느린마을이 청량감이 좀 덜하고 부드럽지만 둘 다 자극적이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맛이 뛰어나다. ‘지평 막걸리’ 같은 경우 최근 인기프로그램인 윤스테이에서 제공되는 막걸리이며, ‘느린마을’은 얼마 전 ‘대동여주도’에서 실시한 마트 대상 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을 만큼 맛난 술이다.

이 둘을 제일 먼저 추천한 이유는 구하기 쉽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극강의 단맛을 원한다면 ‘우곡 생주’나 ‘오매 백주’를, 단 맛은 싫고 본인이 주당이라 자부한다면 ‘송명섭 막걸리’를, 적당한 드라이함과 산미를 원한다면 ‘희양산 막걸리’를, 좀 더 산미를 원한다면 ‘아리랑 생 막걸리’를, 프리미엄을 원한다면 ‘휴동 막걸리’를 추천한다. 어디 술이 이뿐이랴, 날이 새도록 추천해 줄 수 있지만 접근성과 가성비 위주로 말해본 것이다.

넷째, 절대로 술이 독이 되게 마시지마라.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건강을 생각한다면 결국 술은 독이다. 풍류가 쾌락이 되지 않게 절제해라. 다섯째, 졸업하면 저 중에 한 병이라도 사들고 찾아와라.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것이다.

전람회의 마지막 앨범 ‘졸업’. 전람회의 음악은 언제나 친구와의 추억을 자극한다.

어디에서든 사랑받고 행복한 너희가 되길 바라며, 짧은 편지로 마무리 하겠다.

공부는 못 해도 되지만 지식을 우습게 여기거나 거부하지 말고, 운동을 못 해도 되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선 규칙적으로, 가볍게 즐기며 살고, 글을 많이 안 읽어도 되지만 가슴에 기억될 시 한편, 소설 한편 정도는 가져두고, 노래를 못 불러도 되지만 흥겨움에 당당히 몸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덤으로 다룰 수 있는 악기 한 가지가 있다면 더욱 좋고, 냉철한 두뇌보단 따듯한 가슴을 지니고 살고, 그래서 남은 물론 자기도 사랑하며 지내고, 남에게 피해 입히지 말되 자신에게도 그러하고, 돈, 명예, 사랑 그 무엇이든 좋으니 어디에 있더라도 꼭 행복해야 한다. 나 역시 꼭 그렇게 살게. 사랑해.

-사랑하는 내 제자들과, 모든 졸업생들을 위하여-

문경훈

◇ 필자 문경훈

▴1990년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한국전통주연구소 가양주반 수료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소믈리에 자격 취득 ▴한국가양주연구소 명인반 수료▴(현) 지혜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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