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 있어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일 때가 많다.
그래서 빠지면 어딘가 손해 보는 것 같고, 계속 참석하자니 상사의 잔소리나 동료의 주사 때문에 기분을 잡칠 때가 많은 것이 직장 내 술자리다.
70년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 누가 술사겠다고 하면 불원천리 마다 않고 달려 나갔지만 요즘은 직원들과 술 한 잔 하려 해도 직원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선뜻 참석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 직장 상사들의 불평(?)이다.
모처럼 직원 회식이라도 하고 나서 2,3차를 가자고 하면 후배직원들로부터 기피당하기 일쑤고 야만인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는 하소연도 한다.
젊은 직원들이 술을 싫어해서가 아니고, 나이 먹은 상사와 술자리가 어딘가 거북하고 마시는 방식이 다르다는데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의 눈빛은 넉넉히 계산이나 하시든지 아니면 카드 던져주고 일직 귀가하시길 바란다. 이런 것을 눈치껏 파악해야 인기 있는 상사소리를 듣는다.
“참으로 세월이 많이도 변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런 푸념 해봤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나이 자랑할 것도 아니다. 세월 따라 변해야 산다는 이치만이라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다.
옛날 선비들의 술자리에서는 어느 정도 주도가 있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천박한 사람으로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그 때도 과음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도 있었고, 주정부리는 사람들도 있어 벼슬아치들이 지나친 음주로 민폐를 끼치는 일도 많았던 것을 보면 옛날이고 오늘이고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음주문화에서 2,3차 술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가 아닐까 여겨진다. 1991년 12월 9일자 동아일보는 ‘직장인 술자리 1차로 만족’이란 기사에서 신입사원들은 폭음을 기피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로 가족 건강에 관심이 높고, 자가용을 운전해야 하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때부터 음주운전 사고가 눈에 띠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현상 중 하나다.
10여 년 전 한 맥주회사가 1313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잔 할 때 절대 같이 가기 싫은 유형’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이 조사 결과 응답자의 17.6%가 취기를 빌미로 난폭한 행동을 하는 ‘난폭한 주사형’을 꼽았다고 한다. 다음은 앞사람 말에는 관심이 없고 계속 안주만 먹는 ‘안주 킬러형’(16.6%), 한번 마시면 ‘폭주가형’(13.4%) 술값 계산하지 않고 이리저리 빠지는 ‘빈대형’(11.5%) 몇 시간 째 술잔만 만지작거리는 ‘술잔만 키스형’(4.8%)으로 나타났는데 기타 의견으로 취하면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 남을 험담하는 사람, 신세타령 형, 나 홀로 독주형, 반복화법형, 술만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 전화기만 붙잡고 있는 사람, 이성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등등이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개인적인 술자리 기피대상’에 대해서도 떠돌고 있다.◂비싼 안주 막 시키더니 계산할 때는 시치미 떼는 ×.◂비싸고 양 적은 안주를 식사 개념으로 마구 퍼 먹는 ×.◂일인당 몇 개씩 돌아가겠다는 계산이 나오는 안주를 자기 몫 보다 더 먹는 ×.◂술자리에서 일찍 뜬다는 이유로 안주를 싸가겠다고 덤비는 ×.◂돈 없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자리 다 끝내고 하는 ×. 이쯤 되면 기피정도가 아니고 상종을 말아야 한다.
쪼잔 하게 뭐 이런 걸로 그러냐면 할 말은 없지만, 술자리 매너와 인생 매너는 대게 비슷하다는 것이 주당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평소엔 착한데 술만 마시면 ‘개’야 하는 사람은 술 안마셨을 때도 개처럼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평소엔 잘 숨겼을 뿐 술에 취하면 즉, 취중진담으로 본색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가식은 벗겨질 때 요란한 법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나이 들면 정리 대상 일 순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술친구가 자꾸 떨어져 나갈 때는 혹 내가 술자리에서 기피대상은 아닌지 한번 쯤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