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도 꽃이요 꽃도 꽃이니, 꽃 앞에선 함께 취하리”

봄볕이 따스한 봄날, 지시울 유소영 대표(우)와 엄기창 전무(좌)가 지시울에서 생산하는 ‘화전일취’를 들고 나왔다.

‘化前一醉’ 빚는 지시울 양조장 劉素英 대표

친정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술을 빚기 위해 술에 입문

지시울은 국내 최고의 경관과 입지조건을 갖춘 명소

化前一醉

“님도 꽃이요 꽃도 꽃이니, 꽃 앞에선 함께 취하리”

적지 않은 연륜을 살아 왔건만 봄이 오는 길목에선 항상 맘이 설렌다. 잎을 떨구어 벌거벗은 나목(裸木)들이 새 단장 하느라 분주한 봄날이 좋아서다.

응달진 산기슭에는 잔설이 남아 있건만 코끝에 와 닿는 바람결은 분명 봄을 알리는 전령(傳令)이 아니겠는가.

오세영 시인도 3월이란 시에서 “흐르는 계곡 물에/ 귀 기울이면/ 3월은/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봄의 고향’으로 불리는 ‘춘천(春川)’은 어떨까. 남녘에서 화신(花信)이 전해져도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춘천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좀체 봄을 느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누군가 염원적 의미를 함축해서 춘천(春川)이라고 이름을 지은 모양이다.

도로의 발달로 호반의 도시 춘천은 이제 서울의 위성 도시처럼 지척의 거리다. 서울 서부지역에서도 2시간 남짓이면 닿는다. 산과 호수를 끼고 달리는 경춘가도는 자연 환경이 좋아서운전의 피로도 없다. 물과 산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는 환경에서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가 경관이 빼어난 춘천시 서면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박사마을이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다. 지시울 양조장은 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그저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는데 1963년 송병덕 의학박사를 시작으로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경제학 박사, 박흥수 강원정보문화원장 등 끊이지 않고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배출되어 현재 16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모두 서면 사람들이다.

박사마을로 불리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단위 인구당 ‘박사가 가장 많이 나와서’라는 이유 때문이란다.

1999년에 서면이 박사마을로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춘천의 새로운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는 이곳에 또 하나 새로운 가볼만한 곳으로 싹을 틔우고 있는 곳이 지시울 양조장(대표 劉素英 54)이다.

유소영 대표가 숙성되고 있는 술독을 점검한다. 술 익는 향기에 마시지 않아도 취기가 올라올 정도다.

아버님이 “네가 담근 술이 최고다”고 맛있게 술을 드셨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가. 경춘가도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차를 몰수가 있다. 코로나19로 더욱 답답하던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인데 양조장을 찾는 기쁨까지 더하니 마음은 룰루랄라다.

지난 해 춘천시 서면에 새롭게 문을 연 지시울 양조장은 모르긴 해도 전국양조장 가운데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양조장 가운데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지난 해 중양절(重陽節)에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가 주관한 제25회 가을계절주 세미나 ‘無雙의 향기’가 지시울 정원에서 개최되었을 때 와본 경험이 있다. 이날 참석한 모두가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30여 년 전 지은 건물을 엄기창(嚴基昌, 57), 유소영 부부가 전원생활을 위해 8년 전에 매입했다. 애초에 양조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저 경치가 아름다워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이사를 왔단다. 지시울 양조장은 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유 대표에게 술을 시작한 동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님(친정) 생일상에 내가 빚은 술을 올리고 싶어서 였다”는 대답이다.

지시울이 생산하고 있는 화전일취다. 좌로부터 52도 소주, 15도 약주, 12도 탁주, 38도 소주다.

유 대표의 둘째가 스케이트 선수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한국체대)에 들어갈 때까지 서울로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다. 뒷바라지는 물론 유 대표가 도맡았다.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어느 정도 이루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더라는 것이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쏟아 붇던 시간이 여유시간으로 남게 되자 아버님이 즐겨 마시는 술을 담가드리고 싶었다. 유 대표의 친정은 대농 집안 이었다. 그래서 농주도 많이 담갔는데 이 때 어머님이 담그는 술을 어깨너머로 배워둔 것이 술 담그는 기술(?)의 전부였다.

그런데도 아버님이 “네가 담근 술이 최고다”고 맛있게 술을 드셨다.

소줏고리에서 방울져 나오는 소주는 초유는 80도 이상이다가 점점 도수가 떨어진다.

유 대표에게 박록담은 “술 빚는 진경(眞境)을 아는 것 같다”

유 대표의 아버님은 자식들 교육에 남달랐다. 자식들을 초등학교부터 춘천시내 학교에 다니도록 했다. 주말에 집에 오면 아버님은 어린 아이를 앉혀놓고 유 대표와 10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하며 소통을 하셨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도 유대표의 말에 절대 no라는 말씀 한번 없이 아버님의 의견을 설하셨다고 한다.

유 대표의 특별한 멘토가 바로 아버님이셨기에 아버님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유 대표는 아버님 살아생전에 손수 빚은 술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제대로 술을 배워 아버님 생신날(동짓날) 상에 올리고 싶어서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에 등록하여 술을 배웠다.

“처음부터 양조장을 차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님을 비롯해서 친구 분들에게 좋은 술을 빚어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었죠.” 유 대표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술을 배울 때 박록담 소장이 유 대표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박 소장은 집안을 둘러보고 나서 “양조장을 차려 본격적으로 술을 빚어 보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하셨다”고 한다. 유 대표가 양조장을 차린 동기다.

박록담 소장은 유 대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주인(酒人)은 이제껏 묵묵히 자신을 이끌어 준 아버님의 즐거움을 위해 서울까지 먼 길을 다니면서 수년 동안 술을 공부했는데, 이제 술 빚는 진경(眞境)을 아는 것 같아 보였다. 이른바 양주삼미(釀酒三味)에 빠진 것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술 빚는 일의 즐거움과 결과물인 술에 대한 만족감을 얻은 것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또 “그의 작업은 오로지 맛과 향, 색의 삼절(三絶)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술 빚는 일을 얼마나 성실하고 일관되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문과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 삼고자 한 결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니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고 유 대표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박 소장은 전통주 빚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백세, 침지, 방랭인데 유 대표가 술 빚는 것을 보면 정말로 백번이상 백세 하여 놀라웠다고 했다. 유 대표는 정말로 혼신을 다해 정성으로 술을 빚고 있으니 술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한 이유다.

지시울에서 생산 하는 주품들

‘花前一醉’는 지시울 양조장 술이름이다

양조장 이름 ‘지시울’은 이곳의 옛 이름이다. 지시울 양조장이 본격적으로 술을 빚자 박록담 소장은 주명을 ‘화전일취(花前一醉)’라고 지어주었다. “꽃 앞에서 함께 취하자”는 뜻이다.

선비들과 시인묵객들의 음주풍속과 관련하여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꽃이 피는 산야를 찾아 자연풍광을 즐기면서 술을 마시고 흥취가 오르면 시를 짓고 서화를 곁들이는 등 음주를 예술로 승화시켰던 풍류정신이 담겨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주명이다.

문학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화전일취’는 춘천지방에서 생산되는 멥쌀과 누룩, 그리고 물 이외에는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양조장이 위치하고 있는 지하는 일 년 평균 16-17도를 유지하고 있어 자연적으로 저온 발효를 한다.

범벅으로 밑술을 담근 지 4일 후에 덧술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철원에서 생산되는 찹쌀로 고두밥지어 사용 한다. 덧술을 하고 나서 80일의 발효과정을 거치면 순하고 맛있는 술이 완성된다. 증류식 소주는 약주로 내린다.

지시울 양조장을 둘러보면서 특이하게 느낀 점은 그 흔한 스테인리스 탱크가 없다. 술을 담글 때도 숙성시킬 때도 모두 옹기를 사용한다. 하물며 소주를 내릴 때도 옛 방식 그대로의 소주 고리를 사용한다. 현대식이 가미된 것은 장작 대신에 가스를 사용하는 정도다.

현재 지시울에서는 12%인 탁주와 15%인 약주를 빚고 있다. 탁주 375㎖는 12,000원 500㎖는 15,000원이며 약주는 375㎖는 26,000원, 500㎖는 30,000원에 출하한다.

장기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쳐 탁주나 약주 모두 풍부한 방향과 목넘김이 참으로 부드럽다. 감미로운 여운이 술잔을 재촉하게 만든다.

특히 화전일취 약주는 지난 2월 26일에 개최된 2021대한민국주류대상 우리 술 약주술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소주는 375㎖주병에 38%와 52%로 출고한다. 38%짜리가 4만원, 52%짜리가 6만원에 출고한다. 장기간의 발효와 숙성과정을 고려하면 저렴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52% 소주는 확끈하다. 도수가 높아 겁을 먹는 이도 있지만 한번 마셔본이들은 자주 찾게 되는 소주다.

재미있는 현상은 증류식 소주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데 의외로 젊은 세대들이 더 찾는다. 술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증류된 소주는 옹기에 담아 저온으로 최소 6개월 이상 숙성시킨다. 숙성 기간이 길수록 소주 맛은 좋아진다.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이 술로 환원한다면

현재 지시울의 전무 직책인 엄기창 씨와 유소영 대표는 대학 CC. 모두 춘천이 고향이다. 그래서인지 참으로 오순도순 지내는 것 같다. 유 대표가 양조장을 차려서 술을 빚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도 엄기창 전무의 공이 컸다고 했다. 현재 엄 전무는 건축일을 하느라 지방에서 보내다가 주말에만 귀가한다.

부부에게 물었다. 새로운 술을 개발할 생각이 있느냐고 했더니 한참 뜸을 들여서 김유정 동백꽃에 나오는 그 동백으로 술을 빚어 보겠다고 했다.

<동백꽃>은 김유정의 단편집으로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출간했다.

“…나무를 다하고 산을 내려오다가 점순이가 바윗돌 틈에 동백꽃을 소복하게 깔아놓고 앉아서 청승맞게 호드기를 불고, 그 옆에서는 푸드득 푸드득 닭의 횃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춘천은 김유정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춘천 사람들은 김유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김유정의 동백’이 술로 환생한다면 춘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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