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뚜껑 어금니로 따던 시절

김원하의 취중진담

소주병 뚜껑 어금니로 따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한 짓 이었다. 술자리에서 경쟁하듯 소주병 뚜껑을 어금니로 땄다. 젊어서 이 관리를 잘해야 늙어서 고생하지 않는다는 어른신들 충고는 귓전으로 흘렸다.

필자가 젊었을 때는 병따개인 오프너가 귀했고, 깡통따개인 깡그리(캔 오프너의 속어)도 귀했다. 웬만한 큰 식당이라야 카운터에 오프너가 매달려 있을 정도였다. 요즘처럼 테이블 마다 놓여 있지 않았다. 오프너를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재가 없어서 그랬을까. 어쨌거나 당시엔 오프너가 귀했다. 병뚜껑 잘 따는 친구들은 이동식 깡그리라고 부르며 인기가 많았을 정도였다.

또 지금처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숟갈이나 젓가락 라이터 등으로 소주나 맥주병 뚜껑을 따는 방법도 몰랐었다. 요즘은 오프너가 흔한데도 굳이 이런 비오프너로 뚜껑을 따는 사람도 많다. 힘자랑이겠지만….

비단 필자만 이빨로 소주병을 따지는 않았을 성 싶다.

이정록 시인의 <병따개가 없는 술집>이란 시를 보자.

소주병을/이빨로 따던 때가 있었다./밑반찬이 나오기도 전에/족히 반병은 나발 불던/병따개가 필요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술값은 하며 살 때였다./하지만 이제 어금니 없이도/소주병은 잘도 돌아간다/소리도 경쾌한 그린그린/부드럽게 살라고 풀잎 가슴을 내민다/소주병 만해진 맥주병들은/눈만 흘겨도 열린다.

정작 뚜껑이 열리고/돌아버릴 것 같을 때에는/병뚜껑이라도/속 썩여야 될 것 아닌가/병 모가지라도/욕설바지가 되어야 할 것 아닌가/뚜껑이 너무 잘 열린다/저만 기분 좋게 잘도 돌아간다.

이정록 시인이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소주병을 이빨로 따는 것을 보았거나 본인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며칠 전 소주병 뚜껑 따던 어금니가 탈이 났다. 젊은 날 객기가 결국 발치(拔齒)를 하게 만들었다. 빠진 어금니가 비웃는 듯했다. “그것 보세요, 젊었을 때 그렇게 혹사 시키더니 꼴좋네요 ㅎㅎㅎ ”

요즘 젊은이들은 이 글을 읽으며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지만 풋노인들 가운데 주당들은 “그래 그 때는 이빨로 소주병 뚜껑을 많이 땄지…”하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소주병은 돌려 따면 돼지 왜 오프너가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70년대 초만 해도 소주병 뚜껑은 지금의 맥주병이나 음료수병 뚜껑처럼 21개의 톱니 갯수로된 왕관 모형의 병뚜껑이다.

이 왕관형 뚜껑은 1892년 2월 2일 윌리엄 페인터(William Painter)이라는 농부가 상한 탄산수를 마시고 배탈이 났다. 문제가 뚜껑 때문인 것을 알고 개발한 것이 왕관 모양의 뚜껑이라고 한다.

왕관 병뚜껑에 21개의 톱니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병 크기와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사용된다. 이 톱니 수는 수학적 계산의 결과물로 탄생했다고 한다. 수백 번의 실험결과 톱니 수가 21개보다 적으면 뚜껑이 병 내부에 있는 탄산 압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열렸고, 그보다 톱니 수가 많으면 뚜껑을 억지로 열게 되는 과정에서 병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왕관형 뚜껑은 우리나라에서는 ‘삼화왕관’이라는 회사에서 1965년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뚜껑 개수로 주세를 물리기도 했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뚜껑이 나오기 전인 1950년대에는 우리나라 소주도 병뚜껑으로 나무 마개를 사용했다. 그런데 마개를 딸 때 나무 가루가 소주 안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주병을 따기 전에 바닥을 팔꿈치로 퉁퉁 치거나, 술 윗부분을 일부 버리는 습관은 나무 마개 때문에 나온 것이다.

지금은 일부 소주를 제외하곤 소주병 뚜껑은 돌려서 따는 즉, 스크류캡을 이용하고 있어 구태여 어금니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스크류캡도 발전하여 뚜껑 하단부의 철사가 양 갈래로 나눠진다. 이는 환경문제를 고려해 분리배출을 쉽게 만들기 위한 시도다. 종전 뚜껑은 뚜껑을 딸 때 떨어지지 않는 나머지 부분 때문에 분리수거를 하기가 어려워 뚜껑을 따면서 자동적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개선된 것이다.

공병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병목에 남아있는 잔류 링 제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소주병 뚜껑이 개선되면서 분류하는 인력의 투입을 줄이고, 추가적인 선별과정을 줄이게 되어 공병의 재사용 효율성을 높이게 되었다.

스크류캡이 진작 개발되었다면 어금니를 뽑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래도 그 때가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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