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칼럼
송강 정철의 〈한잔 마시게〉의 실존적 의미
박정근(문학박사, 소설가, 시인, 대진대 교수 역임)
정철(한국 한자:鄭澈)은 1536년 12월 18일에 종로 장의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 정치인, 학자, 작가로 존경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도 출세하여 좌의정을 지낸 성공적인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1593년에 강화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세상의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무상했던 것이다.
정철은 술을 좋아해서 평소에 과하게 마신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선조의 사랑을 받았던 정철이었지만 그의 과음 습관은 왕에게 까지 걱정거리였다. 선조는 그에게 은배를 하사하며 세 잔 이상 마시지 말라는 어명을 내렸다.
술이라면 두주불사하는 정철은 세 잔의 술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술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정철은 은잔을 최대한 얇게 늘려 부피를 늘렸다. 이 일화는 정철이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말해준다.
정철의 권주가는 이백의〈장진주사〉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시이다. 이백이 친구와 술을 마시기 위해 삼백 잔을 마시자고 제안하는 시행은 인생이 짧다는 깨달음에서 기인했다.
아침에 검었던 머리가 저녁에 세어버렸다면 어떤 감정을 가질까. 이백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 아예 술항아리를 들여놓고 한없이 술을 마시자고 노래했다. 정철도 죽은 후의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그의 권주가의 시적 발상을 시작했다.
술을 마시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살아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은 정철에게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실존주의적 각성이 아닐 수 없다.
천한 사람들은 죽으면 거적에 덮여 지게에 실려 쓸쓸하게 무덤으로 간다.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은 꽃상여를 타고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만장을 들고 따라간다. 그들은 구슬픈 상여가를 들으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한다. 정철은 천한 사람의 죽음과 권력자의 죽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냉소적으로 지적한다.
우리가 무덤이 있는 억새, 속새, 떡갈나무와 백양나무 숲속에 누워있다고 상상해보자. 숲이 우거져 햇빛이나 달빛도 희미하게 비치리라. 게다가 가랑비가 내리고 함박눈이 오면 숲속은 얼마나 스산해지겠는가. 게다가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면 살아있는 어떤 생물도 존재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가까웠던 친구나 가족도 무덤에 찾아올 리가 만무하다. 우리가 무덤에 묻힌 채 쓸쓸한 시체로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처참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이런 상황을 상상하는 시인 정철은 어느 누구도 무덤에 찾아와 술을 나누자고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물리칠 수 없었다. 이런 절망에 빠져있는 망자의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나타난다. 원숭이는 망자를 비웃기나 하듯이 휘파람을 불어댄다. 생시에 인간의 구경거리로 여겨졌던 원숭이가 망자를 비웃는 모습은 가히 희극적이다 못해 비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생각해보라. 정철은 살아있는 순간이 너무 귀중하기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다. 한잔을 마시면 또 한잔 그리고 또 한잔 한 없이 함께 마시자고 독자 여러분들에게 잔을 내민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아마 모두 술잔을 드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자, 정철의〈권주가〉를 읽어보시라.
한잔 마시게. 또 한잔 마시게.
꽃을 꺾어 세면서 한없이 마시게.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매어 실려 가든가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이 울며 따라가든가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속에 들어가면
누르스름한 해와 하얀 달이 뜨자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고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불면
누구 한 사람 한잔 마시자고 하겠는가.
게다가 무덤 위에 원숭이들이 놀러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