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17)

(2nd-century Roman statue of Dionysus).(Hermes and the Infant Dionysus by Praxiteles)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17)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신화와 알레고리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일원인 유리피데스(Euripides, ca. 480-406 BC.)가 쓴 <바커스의 여신도들(The Bacchae)> 첫 장을 열면 어느 날 갑자기 평화로운 테베에 신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지닌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아시아인의 풍모를 지닌 미소년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소리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싫더라도

신의 비의를 경멸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베우고

정화를 받아야 한다.

나는 순결했던 내 어머니의 명예를 되찾고

인간들에게 내가 신의 아들이며 바로 신이라는 것을 알리러 왔노라

이는 디오니소스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나타내 준 싯귀이다. 그때부터 소년은 자신의 신성을 부인하는 테베의 왕 펜테우스를 잔인하게 파멸시키고, 결국은 그의 자매들과 어머니 손에 갈가리 찢겨 죽는 참혹한 벌을 내린다. 극 안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을 보면 신들은 인간의 기대나 상식과는 전혀 무관하게 작용한다는 것, 인간의 이성으로는 신의 신비로운 비밀을 이해할 수 없고, 다만 그 비의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에게 합당한 도리라는 것을 강조한다.

 

다양한 풍미의 술 한 잔(혹은 그 이상)과 이를 찬미하는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에 풍부한 이야기를 덧입혀준다. 그중에서도 단 하나의 술, 그리고 단 하나의 소재를 고른다면 포도주와 그리스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Διόνυσος)를 꼽을 수 있다. 로마어로 바쿠스(Bacchos)라 불리는 디오니소스의 성격은 ‘인본주의’라는 말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다른 신들과는 달리 사람보다는 자연 친화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

철학자 니체(F. W. Nietzsche, 1844~1900)는 세계를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눴다. 태양의 신인 아폴론은 법과 질서, 이성의 신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에 아폴론이 있다면, 그 대척점엔 무질서와 본능이 지배하는 비논리적이고 혼란상태의 자연, 현실 세계에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존재한다. 나아가 니체는 현실에서 눈을 돌려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비극적인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며, 훌륭한 예술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적어도 니체에게만큼은 예술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신이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이 신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화가와 조각가들의 손끝에서 숱하게 재생산되어 그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그림 속 남자가 붉어진 볼과 살짝 취기가 도는 듯한 눈빛으로 머리에 포도 넝쿨을 두르거나 포도주를 들고 있다면 디오니소스라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술잔에 그려진 신의 권능을 엿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일명 ‘디오니소스 술잔’이다. 기원전 6세기 중엽,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술잔(Kylix)’ 한 점을 보자. 독일의 뮌헨 고대박물관에 소장 중인 이 작품은 붉은 바탕에 검은 그림이 새겨진 흑회색 도자기로, ‘엑세키아스(Exekias)’라는 서명이 남아있어 누가 만들고 장식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넓은 술잔 안쪽에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일화가 보인다.

그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줄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돛이 부풀었고 신의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음에도 배 주변엔 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대신 바다에는 돌고래 떼가 헤엄치고 있고, 돛대 뒤로는 커다란 포도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미동조차 없는 배 위에서 이 광경을 태연하게 지켜보는 신의 모습, 바다 한가운데 있는 술의 신이라니 어떤 장면을 그린 것일까?

이 그림은 사실적이고 정밀한 묘사에서 인간과 세계를 농밀하게 관찰하려던 고대 그리스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① 기원전 520~500년경 만들어진 ‘젖가슴 형태의 술잔’ ② 서기 150~200년경 제작된 ‘디오니소스와 의인화된 포도나무의 대리석상’ ③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2400여 년 전 ‘금제 귀걸이’ ④ 기원전 330~300년경 그리스 소녀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두 소녀의 테라코타상’ ⑤ 기원전 200년~서기 100년 제작된 ‘소크라테스 대리석상’

한국 코미디계의 별 고 서영춘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설을 넘어서서 일상처럼 친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 없으면 못 마셔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지기지기잔짠 쿵잔짠. 영변의 약산 진달래 마구마구 밟지 말고 돌아가세요.”도 그의 ‘랩’(?)이었다.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갈……” 하던 모습도 그렇다.

원래 술‧담배를 전혀 못했는데 두 살 위였던 구봉서가 그만 방탕한 삶으로 인도(?)하여 엄청난 애주가가 됐다고 한다. 되레 구봉서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술‧담배를 끊고는 서영춘에게 금연 금주를 권했는데 “형님이 권해 놓고 이게 무슨 소리요?”라고 왈칵했다는 전설이 있다. 공연 전에도 긴장을 풀기 위해 한 잔 술을 홀짝거리고 마시던 애주가 서영춘은 1987년 11월 1일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이것이 그의 ‘고뿌’ 론이다.

젊은 디오니소스와 마주친 해적들은 고귀해 보이는 이 청년에게 몸값을 뜯어내거나 최소한 이집트에 노예로 넘길 요량으로 원하는 곳까지 태워준다고 속여 선상 납치극을 벌인다.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해적들은 본심을 드러냈고, 디오니소스는 신의 권능으로 배를 멈추게 했다. 달콤한 포도주 냄새가 진동함과 동시에 포도 넝쿨이 자라나 배를 뒤덮었고, 신의 주변에서 맹수들이 나타나 해적들을 위협했다. 놀라 도망치던 이들은 바다로 뛰어들었고 신은 이들을 돌고래로 만들어버렸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그려진 이 화면은 이러한 서사를 담고 있다. 적절한 여백과 구도는 조형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간결한 선과 도형이 장식미를 뽐낸다. 아테네 도기 화공 엑세키아스(Exekias)의 능숙한 솜씨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이 술잔의 주인은 술을 마실 때마다 보이는 신의 권능을 되새기며 취기가 불러일으키는 흥에 젖어들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신도들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한 음주(飮酒)가 아닌 신과 소통하는 의식이 된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선상의 디오니소스>라는 바로 위의 작품처럼 이렇게 물고기와 사람은 검정색으로 묘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후반에는 또 다른 유행이 생기면서 이와 정반대로 적색상 기법이 등장하면서 과거와는 정반대로 작품을 그리게 된다. 이렇게 검정색 배경에 주황색으로 사람을 그리는 방법이었다. 당시 정말 최고의 화가나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스킬이 필요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다양한 의식이 곳곳에서 행해졌다. 그 중에서도 심포지움은 저녁 향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저녁식사가 끝난 후, 에게해의 온화한 밤기운에 싸여 성인 남녀가 거나하게 와인을 마시면서, 토론하고, 광란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와인이 주는 취감에 젖어 그들은 노래했다.

나와 함께 마셔라,

나와 함께 사랑하라

나와 함께 왕관을 쓰라

나와 함께,

내가 미치면 같이 미쳐라, 그리고 내가 현명해지면 나와 함께 현명해져라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의 화신(化神)’이며, 그 와인을 마시고 느끼는 ‘환희의 화신’이다. 황홀경에서 벌어지는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은 거친 춤과 소란스런 음악, 마음껏 마시고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포도송이가 달린 포도나무가 디오니소스를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그리스인에게 그는 나무 전체의 신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그리스인들이 ‘나무의 디오니소스’에게 희생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의 신상(神像)은 종종 반듯한 몸뚱이에 불과한 경우가 있는데, 팔도 없이 망토를 걸치고서 머리를 나타내는 턱수염 달린 가면을 쓰고 머리나 몸통에서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뻗어 나온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디오니소스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디오니소스의 상징성)

바커스(Bacchus)는 영어의 발음이고 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Bacchus)’, 그리스어로는 ‘바코스(Bakchos)’라고 하지만, 이것은 모두 별명이고 정식 이름은 디오니소스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스(Ilias)>에 나오는 로마 이름이 ‘바쿠스(Bacchos)’인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Olympus) 12신 중 하나이다. 한편 로마에서는 그를 ‘리베르(Liber)’라고도 하였는데 ‘리베르’의 뜻이 말하듯이 술을 먹으면 모든 세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자유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만, 확실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Dionysos→ Bacchus→ Liber’로 변신한다. 여기에서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측면 모두를 해부하고자 하였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