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우리말, 우리얘기 ❸

우리술, 우리말, 우리얘기 ❸

 

1970~80년대 한국경제를 이끌던 대기업의 부장들은 간이 간장·된장이 되도록 곤드레만드레 술을 마셨다. 밤새 술을 마셔도 출근은 칼같이 지켰다. 분위기 파악 안 된 신입사원이 지각이라도 하면 “야! 나는 밤새워 술 마셔도 아침 일찍 출근하는데, 넌 뭔데 출근시간이 늦어?” 하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들이 밤새워 술 마신 것은 회사를 위한 것이라 했다. “난 이렇게 열심히 술 마시며 회사에 목숨 바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찬 상사 밑에서 살아남고 승진이라도 하려면 술을 잘 마시는 것은 기본이다. 이를 두고 이른바 ‘생계형(?) 음주’라고 표현해도 될까?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나도 남들처럼 소주 한 병 마셔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이들은 소주 반잔도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소연이다. 선천적으로 못 마시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30여 년 전 술 실력이 중요한 미덕이요 경쟁력이었던 시절, 상사가 주는 술을 죽기 살기로 마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계형 음주’가 시작된 것이다.

이젠 이 정도의 생계형 음주 형태는 벗어난 것 같다. 술을 강권하면 인기 없는 상사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양껏 술 마시기’다. 넘치게 마시자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알맞은 양만 마시게 배려하자는 것이다. 못 마시는 사람이나 잘 마시는 사람이나 똑같이 마시자고 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도 어긋난다.

중앙대 남태우 교수(문학박사)는《홀수배 飮酒法의 의식과 허식》에서 “옛 사람들은 술을 경계한 것이 아주 심했다”며, 술은 예를 갖추고 마셔야 한다고 했다.

남태우 교수가 소개하는 ‘군자(君子)의 주도(酒道)’는 어떤 것일까. 이 정도의 예만 알고 술자리에 참석하면 상사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군자의 주도]

 

1. 술은 남편에 비유되고술잔은 부인에 해당되므로, 술잔은 남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부의 자리에서 한 번 잔을 돌리는 것은 소중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뜻이 있으므로 비난할 순 없다. 단지 그 일을 자주 한다는 것은, 정(情)이 과(過)하여 음절(陰節)이 요동(搖動)하는 것이라 군자(君子)는 이를 삼가야 한다.

 

2.술을 마실 때에는 남의 빈 잔을 먼저 채우는 것이 인(仁)이고, 내가 먼저 잔을 받아 상대가 따른 후 병을 상에 놓기 전 바로잡아서 상대에게 따르는 것은 인을 행함이 민첩한 것으로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다.

 

3.잔을 한 번에 비우는 것을 명(明)이라 하고 두 번에 비우는 것은 주(周), 세 번 이후는 지(遲)라 하고, 아홉 번이 지나도 잔을 비우지 못하면 술을 마신다고 하지 않는다.

 

4.술을 마심에 있어 갖추어야 할 4가지가 있다. 첫째,몸이 건강하지 않은 즉, 술의 독을 이기기 어렵다. 둘째,기분이 평정하지 않은 즉, 술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셋째,시끄러운 곳,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 좌석이 불안한 곳, 햇빛이 직접 닿는 곳, 변화가 많은 곳, 이런 곳에서는 많이 마실 수 없다. 넷째,새벽에는 만물이 일어나는 때다. 이 때 많이 마신 즉, 잘 깨지 않는다.

 

5.천하에 인간이 하는 일이 많건만 술 마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 다음은 여색을 접하는 일이요, 그 다음은 벗을 사귀는 일이요, 그 다음이 학문을 하는 일이다.

 

6.말 안 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일이요, 말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술 또한 이와 같다. 술을 권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해야 할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술을 권함에 있어 먼저 그 사람됨을 살피는 것이다.

 

7.술에 취해 평상심을 잃는 자는 신용이 없는 자이고 우는 자는 인이 없는 자이며, 화내는 자는 의롭지 않는 자이고 소란한 자는 예의가 없는 자이며, 따지는 자는 지혜가 없는 자이다. 도인이 술을 마시면 천하가 평화롭다. 속인은 술을 취하게 마시며, 군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마신다.

 

8.술자리에서의 음악이란 안주와 같은 뜻이 있고, 술 따르는 여자는 그릇의 뜻이 있다. 어떤 사람과 술을 마시느냐 하는 것은 때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술자리는 아무런 뜻 없이 한가롭게 술만을 즐길 때이다.

 

9.술자리에는 먼저 귀인이 상석에 앉는데, 우선 편안한 자리를 상석이라 하고, 장소가 평등할 때는 서쪽을 상석으로 한다. 귀인이 동면(東面)하고 자리에 앉으면 작인은 좌우와 정면에 앉는다. 모두 앉으면 즉시, 상석에 술잔을 먼저 채우고 차례로 나머지 잔을 채운다. 이때 안주가 아직 차려지지 않았어도 술을 마실 수 있으며, 술잔이 비었을 때는 누구라도 즉시 잔을 채운다. 술을 따를 땐 안주를 먹고 있어서는 안 되며, 술잔을 받는 사람은 말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10.술을 받을 때나 따를 때는 술잔을 잡고 있어야 한다. 술잔을 부딪치는 것은 친근함의 표시이나 군자는 이 일을 자주 하지 않는다. 술잔을 상에서 떼지 않고 술을 받아서는 안 되고, 마실 때는 일단 잔을 상에서 들어 올리고 멈춰서 사람을 향한 후에 마신다.

술을 마실 때는 잔을 입술에 대고,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 마신 후 잔은 상에 내려놓지 않고 일단 멈춘 뒤 약간 밖으로 기울여 술잔 속을 보이도록 한 후 내려놓는다. 마실 때 손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술잔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술을 두 손으로 따르고 두 손으로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술을 귀히 여긴다는 의미이며, 두 손으로 마시는 것은 술을 따라준 사람을 귀히 여긴다는 뜻과 술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잔이 넘어져 술이 조금 쏟아졌을 때는 그대로 두고, 모두 쏟아졌으면 즉시 그것을 다시 채운 후 채워준 사람에게 미안함을 표시한다.

술이 안주에 쏟아졌을 때는 그 안주를 먹어도 좋고, 안주가 술에 빠졌을 때는 그 술을 버린다. 그 이유는 술은 천(天)이므로 안주에 쏟아진 것은 허물이 되지 않지만, 안주는 지(地)이므로 술에 빠진 것은 지가 요동하여 천을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남에게 술을 따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술을 따르면, 자기 잔을 쳐다보지 않고 따르던 술을 마저 다 따른 후 자기 잔을 약간 들어 따라 준 사람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한다.

술의 법도는 그 엄하기가 궁중의 법도와 같으며 그 속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뜻이 있고 힘을 합한다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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