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여행과 삶은 어떻게 되어질까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여행과 삶은 어떻게 되어질까

임재철 칼럼니스트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떠도는 여행만큼 즐거운 게 있을까. 생활의 굴레에서 해방된 자유로움, 모처럼 내숭이 없는 마음으로 풍경과 풍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관대함, 도취할 수밖에 없는 우연한 이벤트들과의 만남, 다채로운 비일상적 낭만의 향유와 감성충전이 가능한 게 여행이다. 그러기에 흔히들 지친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여행을 즐긴다.

필자 또한 여행을 준비하던 설렘의 기억이 많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까운 중국의 칭하이 성, 간쑤 성, 쓰촨 성, 윈난 성의 자연이 청정하고 아름다운 지역, 대초원, 호수, 고성 등의 여행을 떠올리거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나 피렌체, 아니면 북유럽의 노르웨이 등지를 손꼽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가령 중국 윈난 성 다리(大理)의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향촌마을의 고성이나 베네치의 수로를 이동하는 곤돌라의 특별함과 수상 버스, 수많은 다리가 만들어 내는 이국적인 정취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시아나항공이 한때 직항노선을 운항했던 베네치아는 여행과 미식,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도시이다. 미술과 건축을 비롯한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예술의 축제 장소로 도시는 골목과 골목, 바다 위와 땅 위를 넘나들며 무대를 제공한다. 말하자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니스가 또 다른 문화 요소를 불과 100여 년 전 만들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1895년 베니스 공국은 움베르토 1세 왕과 마르게리타 여왕의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미술 전시를 기획했다.

당초 이탈리아 예술을 위한 자리로 구성되었지만 초청에 의해 외국 작가들 또한 참여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어 심사 제도를 만들며 1895년 4월 역사상 최초의 베니스 비엔날레가 등장했다. 백년 간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예술 전시회로서 자리했고 이후 건축 비엔날레를 본격적으로 개최하면서 오늘날 축제의 도시 베니스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즉 유서 깊은 이벤트가 하나의 실내 공간이 아닌 도시를 무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팬데믹은 이 엄청난 축제, 그러니까 2000년부터 홀수 연도에는 미술 비엔날레, 짝수 연도에는 건축 비엔날레를 개최해 온 전통마저 변화시켰고, 작년에 개최되었어야 할 건축 비엔날레가 지난 5월말 팬데믹 상황 속에서 힘겹게 문을 열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이번 건축 비엔날레의 주제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How will we live together?)’였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에 대한 도시 건축적 대안을 모색하는 비엔날레가 팬데믹의 상황과 맞물려 우리에게지구촌 공통의 질문에 대한 연대의 힘을 일깨워주는 기회로 변화를 주었다는 지적이다. 그 이야기는 도시와 건축을 하는 사람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나눈 셈이다.

문제는 2년째를 위중하게 걸어가고 있는 팬데믹 족쇄의 불안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획기적으로 일상을 바꾸기 위한 반전, 반역이 있어야 하는데 눈물을 콸콸 흘려도 쪼그라드는 자아며, 자신과의 불화구조를 깨기 힘든 현실이다. 필자 역시 글을 써도 슬퍼지고 이렇게 무심하고 차가운 세상의 이면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에 고민이 크다.

사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사태를 당하여 세계의 모든 국민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있다. 누구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더욱이 앞서 언급했던 여행의 삶과 기억 스위치는 꺼져버린 지 상당한 달력이 넘겨졌다. 여행관련 산업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국내외 문화·공연계도 큰 타격은 마찬가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소상공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다.

또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를 헤쳐 오면서 국민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위드 코로나 시대 일상을 지켜나가기 위한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 세계적으로 한창일 때 독일의 한 햄버거 브랜드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왕관(Social-distance crowns)이라는 흥미로운 캠페인을 전개했다. 햄버거를 구매한 고객이 6피트의 종이 왕관을 직접 만들어 쓰고 햄버거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었다. 매장 내에서 고객 간 가까이 앉아있지 말라는 경고성 안내가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햄버거를 먹는 즐거움은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물론 코로나 선별검사에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적용한 한국은 코로나 대응 정책에 전 세계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후 드라이브 스루의 인기는 매우 다양한 사회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지역자치단체의 지역특산품 판매를 위해, 공공기관에서는 대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서나 아이들 장난감 대여 또한 드라이브 스루로 운영하고 있다.

연예인들은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제하는 것보다 자동차를 통해 거리를 유지하며 코로나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팬 미팅의 대안을 제시했다.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말 그대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 과정을 통해 시위와 축제를 즐기는 현장도 등장했다. 예컨대 서울 도심에서 사람들이 모여 행진을 하는 시위는 카퍼레이드의 형태가 됐다.

이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낯선 이들과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함께하며 어울리는 삶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만남과 세계가 중중(重重)하고 무진(無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여행을 되도록 자제하시고 밀폐, 밀집한 다중이용시설에 가지 마시고 모임을 피하시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진 세상에서 우리의 여가 문화 또한 새로운 지평을 맞이했다.

이러한 가운데 실내의 여가 문화와 야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이 특수를 맞이했다. 낮에는 일반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공간이 밤이 되면 자동차 극장으로 전환해 사람들을 맞이한다. 차를 멈추는 주차, 정차의 행위가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한 접속의 순간으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에 승차한 채로 이용할 수 있는 이러한 드라이브 인(Drive-in) 방식이 위드 코로나 시대 모임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의 호평을 받으며 시작된 선별진료소의 드라이브 스루및 드라이브 인서비스가 자동차극장, 편의점, 음식점, 콘서트, 카페, 민원서류 등 비상시 우리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새로운 서비스 문화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날로 변하고 바뀌어만 간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에는 교통과 통신의 어려움 때문에 삶의 다양성은 아주 작아 대체로 지역단위로 생활의 근거지가 되어 한 지역 안에서 생활이 영위되기 십상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군현(郡縣)의 범위 안에서 혼인도 하고, 스승과 제자 관계도 대체로 그 지역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상상을 벗어날 정도로 사정은 급속히 달라져 나라 전체가 하루의 생활권으로 바뀌고, 가까운 나라나 먼 외국 또한 이웃처럼 여길 수 있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여행을 말하면 의당 외국여행으로 바뀌고 관광이라면 해외로 나가야만 관광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던 때도 있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 코로나팬데믹의 터널을 걸어가면서 세계는 거대한 전환을 위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대적 현실에서 여행과 삶에 대한 개념의 변화가 어떻게 오고 그 역사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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