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문화, 전통주는 품격이 있는 술입니다”

전통주갤러리를 이끌어 가는 주역들 사진 좌 김민현 팀장 가운데 남선희 관장 우 이성국 팀장

새로 부임한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

“술은 문화, 전통주는 품격이 있는 술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1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宗正)에 추대된 성철(性澈, 93년 入寂)스님이 해인사에서 사부중(四部衆)에게 내린 종정 취임 법어(法語)이다.

이 법어가 대중에게 알려져 한 때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했었다. 주당들도 이를 따라 “술은 술이요 술도 물이로다.”를 외치며 원샷을 외쳤다. 술을 물처럼 마셨던 시절이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요즘, 주당들도 세월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많이 마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술을 술답게 마시는 것이 잘 마시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이른바 ‘술은 문화’라는 인식의 변화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음주문화의 진화 현장을 가장 가까운데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전통주갤러리가 아닌가 여겨진다.

전통주갤러리는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통주, 이를테면 ▴주류부문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한 술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 ▴농어업경영체 또는 생산자단체가 지역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지역특산주)이나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오는 양조법으로 만든 술, 전통적인 양조법을 계승 및 보존하여 빚는 술 등을 홍보하기 위해 2016년 설립하여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공사가 운영하는 전통주 소통·문화공간이다.

전통주갤러리를 총괄운영하고 있는 전통주 교육전문가 남선희 관장

이번에 전통주갤러리 운영을 총괄하는 관장에 전통주 전문가 남선희(54) 씨가 관장으로 부임했다. 남선희 관장은 지난 2018년에도 1년간 관장을 맡아 갤러리를 운영한바 있는 경력자다. 이번에 다시 관장을 맡아 앞으로 1년 간 갤러리를 운영하게 되어 전통주 발전에 기대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 관장으로부터 요즘 음주문화의 변화라든가 갤러리가 새롭게 펼쳐나갈 사업계획을 들어 봤다.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 부임

-관장 부임을 축하합니다. 새로운 사업 계획도 많으시겠네요.

“이번 관장 취임이 두 번 째라 지난번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챙겨서 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한국 전통주의 맛과 멋,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과,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맛을 내는 다양한 우리술들을 발굴하여 홍보하고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지속되는 비대면상황에서도 다양한 비즈니스미팅과 온라인홍보활동을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갤러리가 설립된 지 6년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주류 업계에서조차 갤러리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이다.

따라서 남 관장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갤러리의 존재 가치를 알리는 동시에 생산자와 소비자간 가교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현재 갤러리에는 1500여 양조장에서 빚은 200여종의 전통주가 상시 전시되어 있다. 전통주 마니아들은 전통주갤러리를 전통주의 성지처럼 여긴다. 한번 다녀간 사람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갤러리에 상주하고 있는 전통주 소믈리에들을 통해 최근 핫한 전통주를 소개 받기도 하고 맛을 본 후 선택한 술을 구입하기도 한다.

남 관장은 “갤러리에서는 술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홍보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좋은 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편리한 이점도 있다”면서 “최근에는 신생 양조장들이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술을 빚고 있어 이 같은 술들을 집중 홍보하고 있으니 양조장에서 새로운 술을 생산하면 갤러리에도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전통주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는 이음회관, 11월에는 북촌으로 이사한다.

전통주갤러리 강남시대 접고 북촌시대 개막한다

전통주갤러리는 2015년 2월에 인사동에서 문을 열었다. 이후 강남역 CGV 뒤편 ‘식품명인체험홍보관’ 1층으로 옮겨 강남시대를 열었는데 오는 11월 헌법재판소 앞으로 한국식품명인협회, 전통주갤러리가 함께 이사를 한다.

남 관장이 부임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 사항으로 북촌시대를 어떻게 열어갈지 생각이 많다고 했다.

남 관장은 “북촌 시대는 강남 시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부각 될 수 있어 이에 걸 맞는 옷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 관장은 2003년 북촌에서 ‘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후배 양성에 힘쓴바 있어 낯설지는 않을 듯싶기도 하다.

특히나 정부가 전통문화 확장이라는 뜻을 안고 북촌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남 관장이 갤러리를 책임지게 된 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싶다. 북촌은 강남과 달리 옛것에 대한 향수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전통주와는 잘 어울리는 지역이 아니겠는가.

남선희 관장이 전시되어 있는 술들을 정리하고 있다.

남선희 관장은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한테 술 교육을 받았다. 2003년부터 북촌문화센터에서 술 강의를 진행해왔고, 2007년 설립한 ‘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을 사단법인화(2015년)하고,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붙터 ‘우리술 교육 훈련 기관으로 지정 받아 본격적으로 강의와 전통주 연구를 해왔다. 술 교육 경력만 무려 20년이 넘는다.

그동안 활발한 강의와 주류관련 행사에 참가 하는 동시 2018년에는 체코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전통주 홍보 행사 등을 주관하기도 했다.

그동안 경험과 강의를 통해 쌓은 것들을 <일가일주 우리집 술이야기(디자인소리)>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또 요리와 걸 맞는 전통주 이야기인 <다시 찾은 전통명주 &우리술 103가지(오상출판사)>도 펴낸바 있다.

소믈리에 이성국 팀장에게 자신 있게 권한만한 전통주 추천을 했더니 화양의 풍전사계 가운데 ‘春’을 권했다. 춘은 2021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술이다.
김민현 팀장은 한산소곡주를 추천했다.

스토리가 있는 전통주를 마시는 문화 확산

남선희 관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단순히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문화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갤러리가 앞장서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회가 된다면 시음회를 통해 새로운 음주문화 확산을 갤러리에서 해보겠다고도 했다.

전통주를 빚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보다 좋은 술을 빚기 위한 이야기들을 나누면, 우리 술문화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남 관장의 생각이다.

요즘은 거리두기로 홈술, 혼술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알코올중독자를 양성할 수 있어 올바른 음주문화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때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젊은 친구들이 다소 값비싼 전통주를 여럿이 돈을 모아서 구입한 후 나눠마시는 문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술 몇 잔 마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술을 탐구하면서 마신다. 내가 마신 술은 누가 빚었을까. 어떻게 빚었을까. 이 술 맛은 왜 이럴까 등등, 마치 술에 대한 스터디 (study)를 하는 것처럼 술을 마신다.

이런 현상을 보고 남 관장은 앞으로 우리나라 전통주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술은 이렇게 따릅니다. 이성국 팀장이 시음회 체험에서 술을 따라 권한다.

전통주 주병, 라벨 디자인으로 승부하라

냉장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냉장고를 거실에다가 설치했다. 과시욕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우리집에 냉장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데 부엌에 있으면 보이겠는가.

전통주갤러리를 찾은 내방객들이 전통주를 선택하는 양상을 보면 술병이 아름답고, 주명과 라벨이 예쁘면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고 갤러리에 상주하고 있는 소믈리에 이성국, 김민현 팀장은 말한다. 왜냐하면 술병속의 술을 일일이 마셔볼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인들에게 전통주를 자랑하고 싶은 속마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명품 백을 자랑하고 싶은 심리라고나 할까. 냉장고를 거실에 둘 때의 심리와 비슷할 거 같다.

또 최근의 전통주 유통은 상당수 온라인 판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예쁜 술병과 라벨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9월 시음주. 9월에는 ‘2021 우리술 품평회 수상작 최우수상편’이다. 사진 좌로부터 백년향, 천비향, 시나브로 청수 화이트, 려40, 허니문 등이다.

전통주 갤러리 9월 시음 주는 최우수상편

전통주갤러리에서는 매달 주제에 맞게 시음 주를 선정하여 방문객들에게 시음행사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식품 명인의 전통주, 우리술 품평회 수상작, 찾아가는 양조장 해당 주품, 지역별 전통주 등이다. 남 관장은 시음 주를 깐깐하게 선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오는 9월 30일까지 실시하고 있는 ‘전통주 갤러리 09월 시음 주’는 ‘2021 우리술 품평회 수상작 최우수상편’이다.

◇ 탁주:백년향 10%(㈜농업회사법인 추연당, 이숙) ▴백년향은 40일 동안 발효하고 60일 동안 저온숙성한 정성이 등뿍 담긴 백일주 막걸리다.

◇약주:천비향 약주 16%(농업회사법인 (주)좋은술, 이예령) ▴첨가물을 넣지 않은 고유의 부드러운 맛과 향이 특징인 오양주 기법으로 빚어진 약주다.

◇과실주:시나브로 청수 화이트11%(불휘농장, 이근용)▴농진청에서 개발한 국내 청포도 품종인 청수를 사용하여 만들어졌으며 한국의 소비뇽 블랑 이라고도 불린다.

◇ 증류주:려40 40%((농)국순당 여주명주(주), 박용구)▴여주산 쌀과 고구마를 재료로 증류한 뒤 최적의 비율로 브랜딩을 거친 뒤 옹기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기타주류:허니문 10%(아이비영농조합법인, 양경열)▴양평의 청정지역에서 채봉한 꿀을 사용하여 만들어지며 입 안 가득 차는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전통주.

‘전통주는 품격이 있는 술이다’

남 관장에게 물었다. “그동안 전통주를 연구하고 후학들을 위해서 강의도 많이 했는데 어느 때 가장 보람을 느꼈냐”고 묻자 “전통주를 사랑하는 업계의 다양한 선후배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술을 빚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아요. 그들과 함께 하면서 전통주, 나아가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세대를 이어가는 작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남 관장은 “전통주는 품격이 있는 술입니다. MZ세대들이 전통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위스키나 외국 유명 맥주나 와인은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반해 전통주는 자기의 노력을 들여서 찾아내는 술이기 때문에 애착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전통주가 좋다는 것은 인식되고 있지만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술은 아직은 아니다. 이를 위해 남 관장은 “젊은 세대가 전통주와 친숙해지도록 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며, “전통주도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곳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추석 같은 명절 때 가족, 친구들과 소박한 식탁에 둘러앉아 전통주 한 잔으로 웃음꽃을 피는 정경이 보기 좋지 않은가.

남선희 관장이 그간 전통주에 몸담아온 오랜 시간과 관록,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새로운 전통주갤러리를 만들어내는데 밑거름이 될 거라 믿으며 새로운 전통주갤러리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전통주갤러리 기본정보

▴운영시간:오전 10시~오후 8시(월요일 휴관)▴문의: 02-555-2283▴전통주갤러리 네이버예약창에서 예약.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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