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20)
헤라의 질투심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우스가 아시아의 뉘사산의 님프들에게 디오니소스를 맡겨 기르게 하였다. 특히 헤라의 눈에 띠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염소로 변신시킨 채 숲을 어머니의 품처럼 여기며 여장(女裝)을 한 채로 성장해야 했다. 그래서 그를 종종 여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헤라의 질투심은 사그라지지 않아 디오니소스는 방황으로 점철된 삶이 시작된다.
후에 제우스는 세멜레에게 일어난 불행이 모두 헤라의 소행임을 알았다. 헤라가 갓 태어난 디오니소스에게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세멜레의 언니인 이노(Ino)와 그녀의 남편 아타마스(Athamas)에게 맡기면서 헤라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여자아이로 변장하여 키우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후에 기술되지만 이러한 연유로 그를 추종한 신도들은 모두 여자들이다.
그렇지만 헤라는 이러한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를 키운 이노와 아타마스를 미치게 만들어 버렸다. 아타마스는 실성하여 아들 레아르코스(Learchos)를 사슴으로 착각하여 쏘아 죽이게 만들었으며, 또한 미친 이노는 아들 멜리케르테스(Melicertes)를 끓는 물에 넣어 죽이게 하였다. 이노는 제 정신이 들자 절망하여 죽은 아이를 안고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노는 헤라와 자매간이며, 제우스의 누님이지만 헤라의 저주에는 그러한 인연은 사족에 불과하다.
헤라의 복수심이 한 가족을 파멸의 길로 몰아세웠다. 헤라의 이러한 분노와 무서운 복수심에 놀란 제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새끼 염소로 둔갑시켜 헤르메스(Hermès)에게 맡기면서 아이를 멀리 아시아의 ‘뉘사(Nysa)산’에 사는 요정들에게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헤르메스는 버려진 아이들의 보호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는 세멜레가 제우스의 본모습을 보고 죽어 어미 없는 자식이 된 디오니소스를 ‘뉘사’의 요정들에게 데려다 양육을 부탁하였다.
실상은 헤르메스가 뉘사산의 님프들에게 어린 디오니소스를 데려다 주었을 때의 첫 만남에서 포도주 신이 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뉘사의 동굴에는 님프들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에 동굴 안이 여러 식물들과 덩굴들이 덮여 있었고, 그 중에 ‘야생포도’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디오니소스 역시 이 ‘야생포도’를 동굴에서 처음 만졌다고 전하고 있는데, 어린 눈에 껍질이 덮여 있고, 터트리면 뭔가 나오는 이 식물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다보니 이후의 디오니소스 설화에서도 포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상당히 자주 나오는 편이고 특히 포도로 즙을 내었다가 숙성시켜서 포도주를 만들게 됨으로서 이후 포도주 신이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기구하게 태어난 데다가 성장시절에는 헤라의 무서운 눈길을 피해 다니느라 고단한 길을 걷고, 남의 손에 자란 탓에 성격이 온순해질 리가 없어 포도주에 일찍부터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도 추정할 수 없다. 동굴 속에서 혼자 놀면서 어린아이가 마실 수 있는 달콤한 맛의 포도주는 그만의 별세계가 아니였을런지도 모른다. 도망 다니면서 양육될 때부터 그의 주변 환경은 이미 포도주신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헤르메스는 또한 그리스의 달의 여신, 사냥의 여신, 출산의 수호신이기도 한 아르테미스(Artemis)의 화살에 맞아 급살한 제우스와 요정 칼리스토(Callisto)의 뱃속에서 아르코스(arkous)를 꺼내 구해 주기도 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또 아테네의 왕녀이자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Aeneias)의 아내이자 아스카니우스(Ascanius)의 어머니 크레우사(Creusa)가 아폴론의 사랑을 받고 낳은 아들 이온(Ion)을 길에 내버리자 아폴론의 명령을 받은 헤르메스는 이 아이를 델포이로 데려와 여사제들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해산의 신 역할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제우스의 충복이었다.
헤라클레스(Herakles)의 어머니 알크메네(Alkména)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서 그녀의 육체를 빼돌려 제우스와 에우로페(Europe)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현명하고 공정한 왕의 대명사로, 후기 전승에서는 지하세계에서 죽은 사람들의 심판관 라다만튀스(Radamanthus)에게 시집을 보내고, 그녀의 관에는 대신 무거운 돌을 채워 넣은 것도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헤르메스의 짓이다. 이처럼 헤르메스는 ‘버려진 아이들의 집’이었다.
그는 아테나(Athena)와 함께 첫날밤에 남편들을 살해한 다나오스(Danaos)의 딸들을 지옥으로 보내기도 했다. 또 헤르메스는 아테나의 부탁을 받고 페르세우스(Perseus)에게 황금 투구와 날개 달린 신발을 빌려 주어 메두사(Medusa)를 처치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속임수의 달인인 헤르메스가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모험은 헤라를 속여 그녀가 그토록 미워하는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물리게 하는 일이었다. 제우스의 아들은 누구나 헤라의 젖을 먹어야만 진정으로 불사의 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은 헤라클레스를 끔찍이 사랑한 제우스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뉘사산에서 디오니소스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나 헤라의 복수심은 집요했다. 이번에는 드디어 디오니소스를 미치게 만들어 버렸다. 미친 디오니소스는 이집트와 시리아 지방을 돌아다니며 방황했다. 디오니소스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우스의 어머니인 레아(Rhea)가 디오니소스의 미친병을 치유해 주고, 후에 디오니소스의 축제 때 행해질 종교의식을 전수해 주었다.
이 제전에서 디오니소스와 신도들은 새끼 사슴의 가죽을 입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이것도 디오니소스가 성장 과정에서 ‘새끼 사슴의 가죽’을 입은 것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후에 디오니소스 축제 때 행해질 종교의식을 전수해 주었다. 미친병에서 치유된 디오니소스는 프리기아의 옷을 입고 리디아의 마이나데스들과 사튀로스들, 또는 실레노스를 거느리고 인도까지 여행하였다.
미친병에서 치유된 디오니소스는 인도까지 여행을 계속하면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신앙을 전파했다.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하여 이제 그는 더 이상 미치광이 소년이 아니었다. 표범 위에 올라타고 손에는 삿갓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덩굴장식이 화려한 ‘튀르소스(Thyrsos)’라는 막대기를 든 당당한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지팡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막대기로 표현한 것이 적합할 것이다.
초기 그리스 예술에서 디오니소스의 시종들은 포도나무나 담쟁이덩굴의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기원전 530년 이후에는 그 지팡이에 튀르소스(Thyrsos)라는 고유한 이름이 붙으면서 우묵한 끝에 담쟁이 잎이 끼워지고 대나무처럼 층이 진 큰 회양나무 줄기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이 지팡이를 다산의 상징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만큼 타당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디오니소스 신은 양성적이며 문명과 자연의 전이지대에 거주하는 신이기도 하다. 그것태어 날 때는 남성이었지만, 성장할 때는 헤라의 저주로부터 피하기 위해 여자로 키워진 사연 때문 일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상징물로는 덩굴성 식물과 메꽃, 야생동물과 뱀 등이 있다. 염소부족인 사튀르스 부족의 노현자인 실레노스(Silenus)에게서 지혜를 배운 자, 말하자면 디오니소스의 신성과 지혜는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다.
디오니소스를 키운 실레노스(Silenus/Sileni)는 그리스 신화의 목축의 신으로 디오니소스의 스승 또는 조언자로 알려져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친구, 시종인데 여러 신화가 그에게 얽혀 있다.
실레노스는 반인반마의 괴물이다. ‘판’ 또는 헤르메스의 아들로 전해진다. 우라노스의 거세된 남근에서 떨어진 핏방울에서 생겼다는 설도 있다. 켄타우로스였던 폴로스 또는 아폴로 노미오스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사자코에 두꺼운 입술, 커다란 눈으로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으며, 두 다리로 걸었으나 발에는 말굽이 있었다. 어떤 때는 말의 귀를 갖고 있는 때도 있으나 항상 말총을 달고 있었다. 어떤 때는 즐거운 배불뚝이 노인으로 화관(花冠)을 쓰고 나귀를 탄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매우 현명하였다고 하며 아르카디아에서는 목축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신화는 없지만 그리스의 항아리에 자주 그려져 있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사튀로스 종족인 실레노스는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로 생각되었고, 점차 디오니소스 제사의식에 사튀로스와 실레노스를 흡수하는 결과가 되었다. 아테네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는 비극이 끝난 다음에 사튀로스 극(예를 들면, 에우리피데스의 〈퀴클롭스(Cyclops)〉이 공연되었다. 거기에서 합창단은 사티로스의 모습을 모방하여 옷을 입었다. 실레노스는 사튀로스처럼 술을 좋아하는 모습으로 ‘사튀로스 극’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설에서는 일상적인 지혜를 제공하는 자로도 등장한다.
예술작품에서 사튀로스와 실레노스는 요정들이나 그들이 쫓아다니던 마이나스(바코스의 무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는 사튀로스를 동물적인 부분들은 흔적으로만 갖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나타냄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유형을 창조했다.
실레노스는 뉘사에서 님프들과 함께 어린 디오니소스를 양육한 후, 디오니소스가 모험을 떠나는 과정에 일부 동행한다. 실레노스가 디오니소스의 여행길에 동행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보면 디오니소스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닌 모험을 할 때는 타기 위해 동물을 탈 때는 주로 표범을 타거나, 혹은 표범이 끄는 전차에 탄다.
철학자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힘이 그리스 예술정신의 큰 에너지로 생각했다. 원초적 자연으로서의 디오니소스적 힘은 시각적인 가상을 만들어 내는 아폴론적인 힘과 대칭점이며 절제되지 않은 충동 자체, 질서 잡히지 않은 열정들, 열광적인 도취를 불러일으키는 자연적 생명력의 다른 이름으로 인식하였다. 아폴론적인 것은 가상이다. 말하자면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다.
디오니소스는 일종의 문명 해방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신이다. 법과 규율, 질서와 규정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그 바깥으로 질주하게 만드는 위험하고 불온한 신이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자연이며, 고통이자 축복이고 타자를 먹는 게 아니라 자신을 먹는 것이다. 슬픔과 기쁨은 분리되지 않고 공포는 평화와 분리되지 않는다.
나와 세계는 분리된 것으로 알지만 존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씨실과 날실로 짜인 거대한 천과 같다. 술 취한 신 디오니소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문명에 갇힌 자들이 길 들여진 타성적 인생살이를 반성하게 한다. 실존적 영역의 존재론적 전이는 현실 세계에서 설정된 가상의 이미지에 갇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는 지상에서만 핍박을 받고 전투를 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정한 디오니소스는 또한 비극 속에 죽은 어머니 세멜레를 잊지 못하고 지하세계로 내려가 죽음과 싸우기까지 하였다. 그의 생명의 힘은 죽음을 이겼지만, 신의 법도에 따라 어머니 세멜레를 지상으로 다시 데려오지는 못했다. 그 대신 신들의 거처인 올림포스(Olympos)로 모시고 갔다. 그래서 세멜레는 비록 인간이었지만, 신의 어머니의 자격으로 신들의 거처에 함께 살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종종 그를 따르는 광신적인 여성 무리인 ‘마이나데스(Mainades)’들은 산위에서 사냥하여 잡은 염소의 피 흐르는 날고기를 먹으며, 포도주에 취해 춤을 추는 광폭한 향연을 즐기기도 했다. 자유의 황홀한 기쁨과 난폭한 야만이 공존하는 축제가 바로 ‘디오니소스 축제’였다. 이 마이나데스들에 의해 가장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게 되니, 테베의 왕인 펜테우스(Pentheus)가 겪은 참혹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