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삶 소박한 바램
임재철 칼럼니스트
무더위가 어느새 꺾이고 시원해졌지만 코로나 일상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고통이 훗날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거나, 무엇보다 그것을 느끼고 감당해 낸 대상이자, 함께 고민하고 싸워야 했던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를 바라지만 지금으로선 그 사실이 우울할 뿐이다.
요즘 세간에 가능하다면 올해는 특히 유난스러웠던 여름을 지우고 싶다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끔찍하고 어려운 시간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친척들 간에 왕래마저도 못 한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정상적인 삶의 본질과는 괴리가 크다. 다만 우리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지구촌 전체가 몸살을 앓는 팬데믹이라는 점에서 누구 탓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고진감래라든가 새옹지마라는 말로 현재의 고난이 단지 일시적이며, 그것을 통과하면 언젠가는 행복이 온다는 것을 삶의 이치로 받아들여 왔다. 이러한 고통의 내러티브는 고소설부터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한국문화사의 자료로서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영업자나 소소한 서민 등 힘든 사람들에게 그 말은 그저 무책임한 위로에 불과하며, 아픈 증상을 가려 덮는 진통제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사회가 고통을 다루는 현실적 방법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노하우가 절실하게 부족하다는 거다.
역병을 비롯한 고통의 원인은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고통으로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심성이 나약해서라거나 성격이 모나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은 언제나 ‘사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행복,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공감하고 이해하려 하며, 배려를 준비하고 있을까.
이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할 차례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해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법적, 제도적 차원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상처받은 이가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소소한 배려가 필요하다. 가령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친절, 위로, 배려가 한 사람의 생을 움직여 나가는 동력이라는 것을 필자 역시 잘 체험한 바 있다. 위로는 언제나 소소하게, 일상 속에 무심히 스쳐 지나는 흐름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
누구나 고민을 안고 산다.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다. 고민 중에는 조금 힘들다가도 지나가는 것도 있지만, 아주 오래도록 고통스런 것도 있다. 부모, 친구, 자녀문제 등 정말 남에게 말 못할 고민을 비롯, 자존심이 상해 겪는 고민 등 알게 모르게 삶 전체에 영향을 주고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땅을 뚫고 새로 돋는 새싹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려면, 연한 새순이 굳은 흙을 뚫는 고통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듯이, 우리의 평범하고도 존귀한 삶을 지탱해 주는,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 슬픔 가득한 시간에 대해서 헤아려야 하는 것은, 온 사회가,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의무의 감정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여행업계의 이 같은 고민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지구촌의 팬데믹 현상으로 각국의 생활이 올 스톱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행업계의 정상화 대책은 어쩌면 배려 차원을 넘어 선지 오래지만, 이면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내 여행’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요즘이다. 포털을 중심으로 그동안 떠나지 못한 국내의 명소를 찾는가 하면 차에서 캠핑을 하는 차박이나 호텔·리조트에서 휴식을 즐기는 호캉스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유럽의 모관광청에서 보내온 메일 하나를 소개하면, “뜨거운 여름, 오스트리아는 특히 더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시선이 집중하는 이곳,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감성 도시 잘츠부르크에 들른다면 꼭 해야 할 버킷 리스트 다섯 가지를…”
이렇듯 업계에 보내는 짧은 이메일을 통해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이야기를 짓는 참여자가 되어 ‘간접 여행’ 경험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여행을 가보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즉, 재미있는 추억과 기억, 경험 안에서 새로운 세계관과 가보고 싶은 곳을 상상하고 그려 보며 추후 여가를 즐기는 진짜 소소한 여행을 기대하며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직 집단면역 시기도 불분명하고 정확하게 언제 끝날지도 모른 상황에서 말이다. 나아가 그동안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로 인해 단순히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보고 읽고 있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땅에 발을 딛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물리적 환경에 놓여있는 문화와 역사, 풍경과 감성적 소통이 있는, 즉 실제로 살아있는 실존 현실 여행의 문제를 소박하게 이렇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소한일상의 상상하는 일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정사(政事)와 같은 일은 어쩌겠는가. 말하자면 그 일은 그 일을 수행하는 자의 행위가 불특정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공(公)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공자는『논어(論語)』에서 “일을 할 때는 공경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 또는 “일을 집행할 때는 공경하라”[執事敬]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경’은 두려움이 수반된 긴장감과 실수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이 어우러진 태도이다. 말하자면 ‘얇은 얼음을 밟듯, 깊은 못에 다가서듯’하는 태도이다.
내년이면 한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과 지역 행정을 담당할 각 단위의 단체장들을 함께 뽑는 선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벌써부터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선거에서 선택받기 위해 뛰는 후보들에게 ‘사양지심’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선거철이 되면서 세상에는 온갖 찬란한 용어들이 등장하여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 하고 있다. 어떤 후보는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제지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향해 가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강자의 부당한 욕망을 제지시키는 ‘억강’, 약자의 삶을 보듬는 ‘부약’, 특권과 반칙까지 없애자는 공평, 이 얼마나 우리가 바라던 요순정치가 아닌가. 그 후보 아니고도 다른 후보들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야말로 요순시대나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언어들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일장춘몽 아니겠는가. 문제는 공약으로 내건 말들이 실제 행동으로 실천될 때에만 말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인데,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제아무리 좋은 벼슬이라도 언젠가는 그만둘 수밖에 없고, 세계적인 직장의 높은 자리에 영전해도 내려오게 돼 있다. 비록 죽는 날까지 벼슬살이하는 행운을 누릴지라도 죽음에 이르러서는 역시 벼슬을 놓아야 한다. 이처럼 벼슬이나 어떤 자리도 언젠가는 그만두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사이고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팬데믹 역시 물리적 거리두기를 넘어 심리적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듯 한 요즘이지만, 우리가 잘 계수하여 대처하고 우리의 소소한 배려와 노력이 존재할 때 물러나게 될 것이다. 즉 우리의 작고 사소한 움직임과 방역수칙, 그리고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보고 싸워 나가는 일상 속에 이미 치유라는 구원을 건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