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28)
우리에게 술 정책이 있는가?
정책우선순위와 방향성이 없는 정책은 지지받지 못한다(1)
조 성기(趙 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아우르연구소, 대표
술은 인류사, 민족사와 함께 해 왔다. 산출하는 부가가치가 줄었지만 생활과 관계 속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술 없이 사회관계를 가지는 이가 적지 않다. 술 정책의 정통적 주제인 “주류정책과 알코올 정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숙제를 풀어보자.
둘은 다르다. 술과 알코올의 차이다. 술의 주성분은 에탄올(ethanol)이나 에틸알코올이다. 화학식은 C2H5OH다. 에탄올 성분을 알게 된 때는 15세기다. 그 전엔 마시면 취하는 신비로운 물질이었다. 발효를 통한 에탄올제조가 가장 오래된 제조법이다. 술은 알코올과 물의 결합이다. 그러므로 주류정책은 외관상 알코올 정책을 포괄한다. 그러나 사회와 음주상황에 따라 둘 중 어느 정책을 앞에 두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가 생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인도는 베다 시대에 소마(soma)주를 빚어 신에게 바쳤다. 그리스의 바커스는 포도주를 제조한다. 농경시대 곡물 술이 탄생하면서 동서양의 술은 농경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중국은 하나라 우왕 때 의적이 술을 빚었다. 의적이 중국의 주신이다. 8,000년 전 황하문명 때부터 술을 만든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과실주가 성행했고, 유목시대에는 짐승의 젖으로 술을 만들었다. 농경시대에 곡주(穀酒)가 빚어진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술 제조는 잘 빚기로 모두 유명하다. 특히 백제는 수수보리가 일본으로 술을 전했다. 고려시대에 소주가 전래되어 우리나라 술의 3대 분류인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이 완성된다. 맥주가 뒤늦게 들어왔다. 이때까지 술은 그저 적당히 잘 마시면 되는 주류(alcoholic beverage)였다.
1849년에 스웨덴에서 알코올 중독의 개념이 탄생했다. 알코올정책의 탄생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술 생산량이 그즈음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생산품질이 안정되고, 용기의 발전으로 보관도 가능해 졌다. 마실 인간의 수명도 그때 쯤 대폭 늘어나 중독자가 양산되었다.
우리나라는 그 시기가 일제가 전비조달을 위해 소주를 다량 생산하던 강점기이거나 쌀로 막걸리 생산을 금지하던 경제성장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코올중독 등 술 문제를 정책적으로 인지한 시기는 1990년대 말이다. 국세청이 그때 건강사업재원을 주류산업에서 갹출케 권유했다. 병당 2원이었다. 알코올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정부 일각에서 생긴 것이다. 보건당국의 알코올정책 파랑새플랜이 2006년이니 10년은 앞섰다.
알코올정책은 술 문제를 둘러싼 정책이고 주류정책은 술과 관련된 모든 과제를 정책대상으로 한다. 과연 둘 중에 정부는 어디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
문제는 그러한 질문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가 없었다는 데 있다. 정책부처들은 본질적 과제로는 잘 만나지 않는 것 같다. 관료주의의 폐해다. 부처 간 벽이 높다. 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관료, 의사, 학자, 제조와 유통업체, 알코올의존자, 청소년의 부모, 학교, 지역사회, 언론 등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낸다. 문제는 의견과 주장이 다 다른 것이다.
의료진 중에도 뇌를 다루는 정신과 의사는 중독을 위험시 하고 장기를 다루는 내과의사는 상당량 이상의 음주만 문제시 한다. 같은 직종 속에서도 다르다. 보건복지부 내에서까지 정신보건과와 건강증진과가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과연 누구의 의견이 옳을까?”의 문제라기보다 정책의 큰 방침을 잡고 하부 정책의사결정 시스템이 일관성 있게 작동하도록 하는 메커니즘 부재가 문제다. 정책이 정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술 정책을 광범위한 주류정책으로 보고 대략 대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는 주세정책이 중심이었고, 한때는 환경정책이, 또 어떨 때는 식품정책이 관심이었다. 잠시 알코올정책이 대세였던 때도 있었다. 전통문화가 안 그랬던가. 칼자루를 쥔 자의 목소리에 좌지우지 되었다. 자주 바뀌었다. 민생과제가 문제가 될 때는 모든 이슈가 사라졌던 경험도 있다. 선거철이었다. 정책의 구심점이 없었던 것이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일부부처에서 알코올통제정책의 중요성을 표방하지만 공적회의 자리에서는 그다지 입김이 세지 못하다. 부처의 힘이 약하면 중요한 정책도 뒷전이 되었던 것일까? 술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 같았었기 때문일까? 국민건강증진법이 꾸준히 개정해 것만 법 따로 실천과 행동 따로가 많았다. <삶과술>의 한 지면에 알코올의존증 기사가 늘 보이는 것은 술전문지이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건이 터져야 문제를 일시적으로 다룰 뿐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나 법적 문제, 술의 원료, 생산, 유통, 소비, 공병 문제들과 관련된 정책적 이슈를 두고 문제가 생기면 정부부처들이 각각 정책적으로 연관성 없이 개입한다. 그래서 부처 간 정책상충이 문제가 발생하면 조정이 쉽지 않다. 각자 따로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하고 복잡해도 주장도 방향도 다르니 부처단위가 아니라 국무총리실에서 총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지만 의사결정이 일정한 계통 속에서 주도면밀하게 내려진 적은 아직 없다. “그 때 그 때 다를 수밖에 없어요.”가 대답일 것이다.
현재로는 정책기획 전반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가 책임부처로 활동한다. 그런데 정책 전반을 전문성을 가지고 다룬 다기 보다 과거 주류행정의 책임을 지던 국세청의 상위관청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요즈음 국가 주류정책비전은 생산성, 부가가치, 소비자효용 등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분위기다. 어려우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국가적 공감대를 가진 비전과 기준들을 가지고 부·처·청을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어 아쉽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경기가 나쁠 때 선거 때 등 특정시기 마다 이슈에 대한 대처가 정책일관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정책에 치중해요.” “편파적이에요.” 라는 평을 ‘알코올정책 지지자’들이 하게 된다. 정책론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 술 정책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러니 이제 시작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주류정책의 전문성은 국세청의 주세담당 관료들이 보유했었다. 2010년 경 국세청의 주류업무가 농식품부와 환경부로 분할이관 된 이후에 기획재정부가 전체 주류행정을 아우르는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전문성이 함께 이관되었어야 했다. 물론 술 문제를 연구하는 관료가 있기는 힘들다. 하지만 술 정책을 단순히 한 재화를 대상으로 한 정책으로 본 것 같다. 술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평가한 것은 아닌 듯하다. 청와대의 정책기조가 바뀔 때 정책의 중점이 바뀌는 것도 당연지사가 되었다. 술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보수건 진보건 국민의 삶과 직결되어 중심선이 분명해야 했다.
기획재정부의 주류관련 정책회의에 가보자. 기획재정부 관료들 이외에 국세청, 보건복지부, 농식품부 등의 부처에서 참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사안마다 달라 여성가족부나 법무부, 경찰청, 노동부 등이 참여할 수도 있다. 다양한 부처가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가지고 모여 정책 조율과 의사결정을 하려면 그 시대적 상황에 맞는 술 정책 방향이 있어야 하고 부·처·청에서 공감대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그 사실을 정책고수들이 모를 리 없다.
불행히도 “그러한 중점 정책방향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답변이 궁색하다는 것이다. 사안별 내용만 대개 검토한다. 외부전문가의 의견도 청취하지만 구색인 경우가 많다. 산업의 부가가치, 일자리, 해외와의 형평성 해소 등이 일시에 중요해지면 그 목표대로 정책이 결정된다. 그때 만약에 알코올 문제든 전통문화든 정책목표가 또렷이 있었다면 방향이 변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국민건강이라는 술 문제해소가 상층목표였다면 다루는 정책이 술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 가를 논의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술 정책은 없어요.”라고 말해도 틀린 일이 아니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술정책 과제를 정할 때 국민건강중심의 위기대응책을 찾은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최근 정책목표들을 살펴보면 수제맥주 활성화, 맥주 막걸리 종량세 실시, 맥주 제조시설기준 완화, 경기부양을 향한 유통채널 확대, 주세 경감, 유통리베이트 쌍벌죄 등이 돋보인다. 대부분 즉시적인 경제이슈다.
코로나 19가 판을 치는 펜데믹 상황 하에서는 더했다. 살기 힘들어지자 주류정책을 우선시하자는 방향으로 갔다. 재난 보조금으로 와인을 마신 보도를 들은 전통주업체는 우울해 진다. 종량세제를 국민건강이 아니라 형평성 조정용이었다는 말을 들은 보건학자들은 가슴이 답답해진다. 펜데믹 이후 자영업자, 중소기업, 사회적 경제 전반의 경영상황이 어려워지자 경제이슈가 가장 위로 위치했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