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칼럼
금주를 고심했던 도연명
박정근(문학박사, 윌더니스 문학 발행인, 소설가, 시인)
천하의 최고 애주가로 손꼽히는 도연명도 술을 끊고 싶었을까.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술
을 좋아하는 남자치고 집에서 잔소리를 듣지 않는 경우가 없으리라. 대개 술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가족들의 걱정이 만들어내는 풍속도일 것이다.
농촌에서 한가하게 살고 있던 도연명이 삶에서 무언가 재미를 느낄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삶의 목표를 향해서 시간을 다투어가며 살고 있는 현대인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금주를 해야 하나>라는 시에서 무료한 삶에 대해서 “성읍에 머물러 살아도/ 이리저리 거닐어보니 저절로 한가하구나/ 앉아도 큰 나무 밑에 머물 뿐이고/ 걸어도 사립문 안에 머무노라”라고 노래한다.
도연명은 농촌의 삶이 너무 단순하여 특별한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텃밭을 가꾸고 아이를 기르는 것 이외에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토로한다. <금주를 해야 하나>에서 “좋은 맛은 텃밭의 푸성귀에 그치고/ 대단한 기쁨은 아이들뿐이구나”라고 노래한다. 문제는 이러한 무료한 상태에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작정 술을 끊을 수 있느냐이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술을 마다한 적이 없는 도연명이지 않은가. 자연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루함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도연명은 삶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 술을 마신다. 무위적 삶이란 평화롭지만 삶의 기쁨은 느끼기 쉽지 않다. 즐거움의 유일한 원천은 술이다. 그래서 시인은 평생 술을 마셔왔다. 그런데 건강이 문제가 되자 술을 끊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술을 끊자고 생각하니 그가 겪어온 삶의 무료함이 끔찍하게 다가온다. 결국 그는 <금주를 해야 하나>에서 “평생 지금까지 술을 마시기를 멈추지 못했으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마음에 즐거움이 없노라”라고 한탄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건강을 잃으면 궁극적인 목표인 삶의 재미는 사라지고 만다. 도연명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술을 끊어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하지만 술을 끊어보니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른다. 우선 지금까지 술을 마시며 영위해왔던 일상생활이 엉클어지기 시작한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저녁에 제대로 잘 수 없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아침에 기침하지 못하네”라고 호소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태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징조가 나타나 어쩔 수 없이 음주를 그만두어야겠다는 판단을 한다. 술은 사실 필요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약간의 술은 혈액순환에 매우 효과가 있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식사를 하며 조금씩 반주를 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권장을 한다.
그는 시에서 “하루하루 음주를 하지 않으려 해도/ 혈액순환이 멈추고 움직이지 않으리”라고 예단하는 것이다.
역시 술꾼인 시인이 금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필자도 술꾼에 속하는 사람이다. 삶이 삭막하니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속성이 이기주의에 가깝기 때문이다. 서로가 자기 이익에 집착하면 인간관계가 마치 사막과 같다.
개개인의 이익이라는 경계선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 이렇게 껄끄러운 상황에서 술을 한잔 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몸이란 마음이 편해야 건강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건강을 해치는 술을 마음껏 마셔야 하는 것인가. 이런 인식은 필자를 매우 곤혹스러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사실 지나친 음주는 몸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연명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술을 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노래하고 있다.
금주가 즐겁지 않고
금주가 몸에 이롭다는 것도 믿을 수 없네
비로소 끊는 게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 아침에는 정말로 끊어보리라
금주에 대한 도연명의 복잡한 심사가 드러나는 <금주를 해야 하나>라는 시를 읽으며 술과 인간의 관계의 미묘함을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는 술을 가까이 한다. 현대인들은 더욱 복잡한 삶을 살아가기에 술은 우리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아이러닉하게도 술은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건강을 해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술을 즐기면서도 건강을 위해 금주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현대인은 도연명이 처했던 상황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