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담의 복원전통주스토리텔링 98번 째 이야기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 스토리텔링 및 술 빚는 법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라는 다소 어려운 이름의 주품이 이규경의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수록되어 있다.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는 두 가지 의미의 합성어로 생각된다. ‘구작양주(口嚼釀酒)’는 술을 빚는 방법을 뜻하고, ‘잡주(咂酒)’는 주품명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따라서 ‘구작양주(口嚼釀酒)’는 입으로 씹어서 빚는다는 것으로 술빚는 방법을 가리키고, ‘잡주(咂酒)’는 ‘빨아먹는 술’이라는 뜻의 마시는 방법을 지칭하는 술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주품명에 대한 풀이를 통해 떠오르는 술이름이 ‘입으로 씹어서 빚는 술’이라는 뜻을 가진 ‘구작주((口嚼酒)’이다. 그런 의미에서 ‘잡주(咂酒)’라는 주품명 보다는 ‘구작주’라는 주품명이 한결 편하게 다가온다.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에 대하여는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저자 이규경이 자세하게 언급하였고, 그 연원이나 관련 문헌을 상고하여 제시하고 있는바, “<물리소지>에 섭음생이 말하기를, ‘하북 잡주’는 오두(부자의 별칭, 천옹, 샘부, 염부, 오두, 식자 등으로 불림)로 누룩을 만든다. ‘잡주’의 뜻은, 입으로 씹어서 빚는 술과 같다.”고 하였고, “장상 임경광이 지은 <지미 대만기>에 대략 기록하였는데, ‘대만인이 이 술을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이 술은 쌀을 입안에 넣고 삭아지도록 씹어서 대나무 통에 넣으면, 수일이 지나지 않아 술이 익는다.’고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던 술이 아닌, ‘유구국(류쿠제도)’와 ‘대만(타이완)’ 등지에서 빚어 마셨던 술이 한때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나 ‘구작주(口嚼酒)’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五洲衍文長箋散稿>의 ‘구작양주 잡주 변증설(口嚼釀酒 咂酒 辨證說)’에서 “우리나라 역사책에 기록한 바에 의하면, 성종조 8년 정유에 제주인 김비의 등이 유구국과 규이땅에 표류해 간 곳이 마도라는 곳인데, 이 <마도방>에 의하면, ‘이 술은 유탁무청(탁주만 있고 청주는 없다)하니 쌀을 물에 담가서 여자들로 하여금 씹어서 된죽처럼 만들어서 나무통에 넣고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다. 많이 마셔야 조금 취한다. 술잔은 표주박을 썼으며, 서로 잔을 주고받는 ‘주작지례(酒酌之禮)’는 없었다. 그 술이 매우 담담해서(심심해서) 빚은 후 3~4일이 되면 문득 익고, 오래되면 쉬게 된다.’고 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 때에 물길국(고구려의 북쪽에 있었던 옛날의 숙신국)에서도 입으로 쌀을 씹어서 술을 빚어 마시는데, 이 술을 ‘미인주(美人酒)’라고 했다고 한다. 물길국은 땅이 몹시 습하기 때문에 성을 쌓고 그 안에서 굴을 파고 산다. 이 굴의 모양은 집이 마치 무덤과 같은데 위에다가 문을 뚫어놓고 사다리를 타고 출입한다. 물길국 사람들의 풍습에 “쌀로 빚어 술을 만들어 마시는데, 이것을 마실 때는 취하도록 마신다.”고 하였는데, 이 술이 입으로 씹어서 빚은 ‘미인주(美人酒)’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중국의 풍습 가운데,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어 두었다가, 시집가는 날 ‘교합주’로 사용하는데 이를 ‘여아주’라 하며, 신부가 입으로 ‘구작주’를 빚어 땅에 묻어 두었다가, 남편이 죽으면 저승길에 가져가게 한다는 습속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구작주’는 도수가 낮아 오래지 않아 쉬게 되기 때문에 땅에 묻어두고 몇 십년을 묵힐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근대까지도 류쿠제도의 유구(琉球)에서는 처녀들이 모여 사탕수수로 입을 닦고 바닷물로 입을 헹군 다음, 쌀을 씹어 빚은 술을 ‘미인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역시 이상하다. 사탕수수를 짓찧어서 그냥 방치해 두거나, 입으로 씹어서 그릇에 뱉어 두어도 쌀로 빚은 술 못지않은 술이 되었을 것인데, 굳이 ‘구작주’를 빚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기 때문이다. 사실여부야 어떻든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는 원시형태의 양조방법으로 생각된다.
동양문화권의 ‘죽유의 새에 관한 전설’에서 새가 볍씨를 먹고 배설한 것이 대나무 그루터기에 떨어지고, 거기에 빗물이 고여서 발효된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곡물을 사용하여 술을 빚게 되었다는 설이 있고 보면, ‘구작주’나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는 같은 원리에 의해 발효가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는 ‘미인주’로 불리면서 여러 나라에서 양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후일에 이르러서는 한 단계 진척을 보였던 것 같다. 즉, “쌀을 반만 익혀서 동정(童貞)을 간직한 어린 처녀들로 하여금 대나무통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서 반쯤 익힌 쌀을 입에 한모금씩 물고 단맛이 날 때까지 씹어서 침으로 삭히는 인위적인 당화작용를 거친 후에 대나무통에 뱉어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입으로 씹어서 뱉어낸 쌀당화액이 발효되고, 사람이 마셔서 취하는 술이 ‘잡주(咂酒)’이고 보면, 원시시대부터 곡물을 사용한 발효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호기심과 심심파적으로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를 빚어 보았는데, 그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한 시간에 1되 분량의 불린 쌀을 씹을 수 있을 뿐, 입이 굳어지고 턱이 아파서 견딜 수 없기도 하거니와, 침이 말라서 계속 진행할 수가 없었다. 부득이 제자들과 함께 ‘구작(口嚼)을 열심히 했는데, 3되 정도 분량의 쌀을 술밑으로 빚을 수 있었다.
자그마한 밑술용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실내온도 25℃ 정도 되는 실내에 술독을 앉혀놓고 술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자 거품이 하나 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2일째는 기포가 주면을 가득 채웠다. 술밑이 기포로 인하여 흐리멍덩해져 있었고, 식혜와 같은 냄새와 함께 약간의 단맛도 있었다. 술밑이 끓는 현상이 여느 술과 같지 않고, 술독이 따뜻해진다는 느낌도 없었다. 3일째는 말갛게 가라앉은 술밑을 볼 수 있었다.
대략 3~4% 정도의 싱거운 막걸리 맛의 술을 맛볼 수 있었는데, 약간의 산미가 있었다. 4일째가 되자 술은 탁주처럼 뿌옇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저녁때가 되어 신맛이 점점 더 강해져서 발효를 중지하고 체에 걸러 탁주를 만들었다.
술이 다 되었으므로 함께 실습에 동행했던 제자들을 불러 모았는데, 아무도 마시려들지 않았다. 한결같이 “더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부득이 혼자 시음해볼 수밖에 없었는데, 술독 밑에는 삭지 않은 쌀가루와 함께 쓰고 떫은맛이 나는 찌꺼기를 맛볼 수 있었다. 거푸 서너 잔을 마셨는데, 약간 취기가 오르는 듯 하더니, 이내 술기운이 사라지고 말았다.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를 맛보면서 가졌던 느낌은, 생쌀을 씹어 침 속의 소화효소를 통한 당화작용을 도왔던 원시형태의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가, 후일에 이르러 반쯤 익힌 쌀을 사용하고, 동정(童貞)을 간직한 처녀들로 하여금 빚게 하였던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먹게 되면 침샘의 분비활동도 씹는 작업도 여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생각해보면, 나이 든 남자와 동정을 간직한 처녀의 구작활동이 어찌 다를 건가 마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침샘 속에서 분비되는 효소와 공기 중의 효모에 의한 발효에서 훨씬 다양한 맛과 향기의 술을 얻고자 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 口嚼釀酒 咂酒 <五洲衍文長箋散稿> -(지미 대만기), (마도방) 수록-
◇ 술 재료:쌀, 나무통
◇ 술 빚는 법 ①쌀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서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다) 건진다.②한 가운데에 항아리처럼 파서 만든 나무통을 놓고 여자들을 빙 둘러 앉힌다.③여자들로 하여금 불린 쌀을 한주먹씩 입에 넣고, 씹어서 된죽처럼 만들어 나무통에 뱉도록 한다.④입으로 씹어 뱉어서 쌀죽처럼 다 만들어졌으면, 밀봉하여 따뜻한 아랫목에 놓아두고 3~4일간 발효시킨다.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다.
▴구작주 곧 미인주는 여인들의 구작활동에 의해 당화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원시적인 양주법으로 전해진다. 이 방법은 ‘16세 미만의 동정(童貞)을 간직한 여성들을 뽑아서 참여케 하고, 청결을 위해 목욕을 하고 깨끗한 물로 입안을 여러 차례 헹구게 하는 등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방문 말미에 “빚은 후, 3~4일이 되면 문득 익고, 오래되면 쉬게 된다. 그 술이 매우 담담해서(심심해서) 많이 마셔야 조금 취한다. 술잔은 표주박을 썼으며, 서로 잔을 주고받는 ‘주작지례(酒酌之禮)’는 없었다.”고 하였다.
<구작양주 잡주(口嚼釀酒 咂酒) 변증설(辯證說)> <물리소지(물리에 대한 기록을 한 책)>에 하북에 ‘잡주’가 있고, 임경광이 <대만기>에 대략 기록하였고, 우리나라 역사책에 ‘구작주’를 빚는 법이 있는데 잘 알 수 없다. <물리소지>에 섭음생이 말하기를, “하북 ‘잡주’는 오두(부자의 별칭 : 감자 같은 구근식물로 약효가 제대로 된 것은 까마귀대가리모양으로 생겼음. 천옹, 샘부, 염부, 오두, 식자 등으로 불림)로 누룩을 만든다. ‘잡주’의 뜻은, 입으로 씹어서 빚는 술과 같다.”고 하였고, 장상 임경광은 <지미 대만기>에 대략 기록하였는데, “대만인이 이 술을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이 술은 쌀을 입안에 넣고 삭아지도록 씹어서 대나무 통에 넣으면, 수 일이 지나지 않아 술이 익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책에 기록한 바에 의하면, 성종조 8년 정유에 제주인 김비의 등이 유구국과 규이땅에 표류해 간 곳이 마도라는 곳인데, 이 <마도방>에 의하면, “이 술은 유탁무청(탁주만 있고 청주는 없다)하니 쌀을 물에 담가서 여자들로 하여금 씹어서 된죽처럼 만들어서 나무통에 넣고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였다. 많이 마셔야 조금 취한다. 술잔은 표주박을 썼으며, 서로 잔을 주고받는 ‘주작지례(酒酌之禮)’는 없었다. 그 술이 매우 담담해서(심심해서) 빚은 후 3~4일이 되면 문득 익고, 오래되면 쉬게 된다.
청나라 주황이라는 사람이 유구땅에 사신으로 가서 대략 기록을 했는데, 유구나라 여자들이 구작생미(입으로 생쌀을 씹어서)하여 술을 빚었다고 하자, 중국인이 그 말을 듣고(더러워하는 마음에) 마시지 않았다고 하니 황당한 얘기 같다.
우리나라 동쪽에서는 갓난아이가 젖이 부족하면 어미가 멥쌀을 씹어서 즙을 취해 화로 가운데 올리면 절로 단맛이 나고, 단술이나 우유죽처럼 된 국물을 아이 입에 대면 아이가 삼켜서 목숨을 연명했다고 한다.
유구땅에서는 ‘쌀만 씹고 누룩 없이 술이 되었다’고 하니, 역시 하나는 특이한 일이다. 내가 일찍이 중국과 우리나라에 <삼재도회(갖가지 회합을 그림으로 만든 책자)>를 열람해보면, 유구국과 일본에 보휘도(섬이름)의 소주 명칭을 아울러 ‘포성주(泡盛酒)’라고 했다. 그런 즉, 어찌 쌀을 씹어 술을 빚어서 소주를 만들었겠느냐? 저 같은 허다한 외국의 일들은 비록 알지 못하더라도 역시 해될게 무엇이겠는가(몰라도 상관없다)마는, 이미 문자로 가히 상고할 만한 것이 있고, 이것저것 믿을 만한 실적이 있으니, 변증을 해서 해외에서 들은 기이한 것들은 자료로 갖추었다.
박록담은
*현재: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전통주 관련 저서:<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 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시집:<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 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