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無常

김원하의 데스크칼럼

人生無常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정승 집 문지방이 닳도록 개문상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설사 정승이 죽지 않아도 정승이란 감투가 날아간 다음 혼사라도 치러보면 안다. 공직자들이 현직에 있을 때 아들 딸 혼사를 치르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승집 개가 죽었을 때 개문상을 가는 이유는 정승과 눈도장을 찍기 위함인데 막상 정승이 죽었는데 누구와 눈도장을 찍을 것인가. 설마 개와 눈도장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공직에 있던 어떤 이가 백수(白手)가 되어 아들을 장가보냈다고 한다. 현직에 있을 때는 밥 한 번 먹자고 줄을 서더니 백수 상태에서 아들 장가를 보내자 식장 안은 썰렁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인가 싶어 그 사람은 폰에서 결혼식에 오지 않은 이들의 연락처를 지워버렸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사 다 그렇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친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알아본다. 살아생전에 술·밥 먹으며 “형이야 아우야!” 하면서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던 친구들 가운데 막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손 내미는 친구가 몇이나 되던가. 한 두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성인들은 말한다.

술·밥으로 사귄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실험 해보자. 한 밤중에 느닷없이 전화해서 급한 일이 생겼다며 도움을 요청해보자. 어떤 반응이 오는가를…. 두 말 없이 맨발로 뛰어나오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정승집 개문상을 가는 이유는 정승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요, 정승이 죽었다면 그에게 더는 잘 보일 필요가 없어진 까닭에 조문할 이유가 없어 안 간다는 것을 누구에게 탓할 것인가.

오죽했으면 <채근담>에도 염량세태(炎凉世態)라는 말이 나왔을까.「뜨거웠다가 차가워지는 세태(世態)」를 염량세태라고 하는데, 권세(權勢)가 있을 때에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형편을 말하는데 어느 사회건 있기 마련이다. 비단 공직사회뿐아니라 상하가 있는 사회에서는 존재한다. 이를 잘 아는 이들은 어떻게 하든 간에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야박하고 삭막한 세상인심이 최근 두 전직 대통령의 사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어떤 매체들은 ‘000 前 대통령 별세’, ‘0 대통령 사망’, ‘0 씨 사망’ ‘000 前 대통령 서거’ 등 각양각색으로 사망소식을 전하고 있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도 상당 매체들은 서거(逝去)라는 높임말을 썼는데 자국의 대통령이 사망 소식을 ‘0 씨 사망’이라 표현한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어떤 내용으로 표현해야 정답인지 모르지만 전직 대통령이 죽을죄를 짓고, 사과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어도 죽은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는 갖춰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 떠난 두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살아생전 덕을 본 사람도 있을 테고, 해를 입은 사람도 있겠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것 훌훌 털고 조의를 표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이 또한 비난 받아야 하는 소리인가.

진보의 스승으로 불리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지난 11월 23일 어느 출판 기념회에서 기자들이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에 대한 소감을 묻자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선인의 죽음이든 악인의 죽음이든 죽음 앞에서는 우리가 삼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한줌 재로 끝났다. 그 재를 묻을 유택(幽宅)마저 마련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현충원에는 묻히지 못하더라도 한줌 재라도 묻을 장소가 마련됐으면 한다.

요즘 온갖 미디어란 미디어는 내년 3월9일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 집중되어 있다. 그동안 대통령 선거에서 입후보자들은 임기가 끝나고 법정에 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그 많은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거나 죽거나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도 미국 같은 선진국들처럼 퇴임한 대통령들이 모여서 차담회도 하고 후배 대통령으로부터 초대 받아 밥도 같이 먹는 그런 그림이 보고 싶다.

그게 바로 선진국의 정치문화가 아니겠는가.

<교통정보신문·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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