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福酒가 기본이다

飮福酒가 기본이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볼 때가 가끔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 술을 배웠나’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술 역시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지닌 채 오늘에 이르러, 널리 알려진 대로 독약(毒藥)으로, 때로는 생명수(生命水)로 평가되고 있다. 술을 생명수로 여기려면 우선 술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며, 술을 노예로 만들 줄 아는 주도(酒道)를 배우고 이를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술이 시작된다. 물론 어린아이가 마시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지인들에게 축하주를 낸다는 뜻이다. 아이가 장성해 결혼하면 술잔을 교환하며 평생을 약속하는 ‘합환주’를 마신다. 첫날 밤 합방에서도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술 한 잔을 들었다. 인생을 끝마치고 이생을 하직하면 후손들이 술잔을 올린다. 4대봉사(奉祀)라 최소한 죽어서도 4대까지는 술을 얻어 마신다. 따라서 우리 인생의 대소사(大小事)에서 술이 빠지면 큰일 난다. 아니 대소사를 치를 수 없을 정도다.

뿐인가. 농사일이나 힘든 노동일을 할 때 잠깐의 휴식 동안 마시는 한두 잔의 막걸리는 힘을 솟게 한다. 또 일상 속에서의 음주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술을 통해 교류하는 당사자들의 특징을 아주 잘 나타내주기도 한다. 상대방의 특성을 가장 손쉽게 간파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논리정연한 말솜씨보다 술 취한 상태에서의 언행을 보면 된다. 술버릇에서 그 사람의 삶의 역사와 오늘이 드러난다. 실제로 직장인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46%), 기분전환(18%), 스트레스 해소(11%), 업무상 어쩔 수 없이(6%)인 것을 보더라도 사회인으로서 술은 피하기 힘든 존재다.

주당들은 “자동차는 물리적으로 거리를 단축시킨다. 술은 심리적으로 거리를 단축시킨다”는 주장을 늘어놓는데, 맞는 소리 아닌가.

조상들의 음주문화는 개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정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자녀나 제자들이 자연스럽게 음주의 법도를 익힐 수 있도록 했으며, 술좌석에도 이들을 동행시키고 시중을 들게 했다. 어른들이 술을 은밀히 마셔 자라나는 청소년으로 하여금 호기심이 발동케 한 것이 아니라, 술을 접대하는 예의와 절차를 배우고 익히는 기회를 갖도록 한 것이다. 즉, 술을 마시고 접대하며 사교를 즐기는 법을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보여줌으로써 산 체험을 하도록 한 것이다. 또 술좌석의 마무리는 최종 연장자가 일어나야 비로소 모두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하며, 감사의 인사는 술자리가 파하는 동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에 하는 것이 상례였다. 향음의 시작과 끝을 한결 같이 예(禮)로 생각한 우리 조상들은 나눠 마시는 미덕과 교제․친목을 위한 여흥의 수단으로 술을 인식했기 때문에 청소년에게도 음주의 예법을 체득토록 배려했던 것이다.

옛 선비들은 넓은 도포자락 하나 흔들림 없이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 얘기는 술 마시고 흥청망청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현대인들이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귀여운 자식들을 주정뱅이가 아닌 애주가로 만들려면 음복주(飮福酒)부터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살면서 술 마시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주도를 지키며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음복주를 권하는 나이는 고등학교 2~3학년 때가 적당하다.

보건복지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의 음주 실태는 지난 2007년 46.6%로 나타났다. 이들이 부모가 권유(음복주 등)해서 마신 것이라면 생각보단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문제는 뒷골목에서 어른들 몰래 마셨다는 점이다. ‘친구나 선배의 권유로 시작했다’는 응답이 남고생의 경우 20.21%, 여고생은 24.5%로 나타났다.

사회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술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왕 술을 배우려면 부모 밑에서 배워야 한다. 그래야 술로 인한 실수를 최소화해 건전한 사회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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