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정책의 민주화와 산업발전을 위해 전제와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①)

주류정책의 민주화와 산업발전을 위해

전제와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조성기(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한국할랄산업연구원, 이사, 연구센터장

 

“술 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요?”하고 묻자. 이견은 많고, 합의는 거의 없다. 합의를 향한 방향성도 제대로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때그때 시류에 맞춰, 아니 ‘시류’에 ‘적응’해서 결정되는 경향이었다. 안타깝다. ‘취객’마냥 정책이 흔들리는 형국이었다. 마침 삼일절이었다. 이해와 공감은 사실 우리 민족의 주요 덕목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선언문을 작성할 때 총칼로 싸우는 피의 투쟁보다 이해와 공감을 강조했었다. 주류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총체적인 이해와 공감의 공동체를 구성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제강화 정책이 옳은가? 규제를 완화해야 할 때인가?”에 대한 이견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맥주 맛이 있는 것인가가? 없는 것인가?”, 맛을 두고도 다르다. “우리 전통주의 품질은 세계적 수준이다! 아니다!” 등에서도 차이가 단다. 특히 ‘주류정책’ 방향에 대한 생각들이 다르다.

 

기획재정부 따로, 보건복지부 따로, 농식품부 따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면 사실 심층적 합의를 위해 모여앉아 몇 날 며칠을 새며 토론을 해본 적이 없다. 술 문제에 관한한 처음부터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강력한 규제를 하든 완화를 하든 칼자루를 쥔 부처가 독재를 했었다고 봐야한다. 부처 간 벽도 높았다.

 

이웃 일본에 가보면 공조가 필요할 때 타 부처에 파견관을 보낸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대화하고 조정한다. 우리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같은 테이블에는 앉지만 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고 각자 할 말을 하고는 헤어진다. 맘에 들지 않는 정책이 추진되어도 “나는 참여해서 할 말을 다했어!”하고 만다. 골조가 바뀌거나 문제가 되어도 참는다.

주류도매업의 운영에 대해서도 규제와 완화를 달리하며 필요할 때 마다 정책의 기조를 바꿔왔다. 필요할 때는 지역에 정해진 수의 도매업체를 지정 운영했다. 갑자기 특정지역의 면허로 다른 어느 지역이라도 가서 팔 수 있도록 바뀌었다. 대형도매업체들이 전국적으로 술을 유통하게 되고 격차가 커지는 계기가 된다. 지역판매권의 수를 지역 공급량을 감안하고 제한해서 발급했는데 그 기준과는 무관하게 판매지역 제한이 완화되었다. 혼란이 커지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제조업도 도수, 첨가물, 시설기준 등의 완화를 거듭해왔지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정책을 변경했는지 분명한 전제를 찾기가 어렵다. 제조 편리성 제고인가? 정책 효율성 제고인가? 주류문화의 유지발전인가? 국민 건강관리 목적인가? 뭘까?

그러니 이제라도 정책적 합의의 자리를 만들고 심층 논의해야 할 것이다. 때가 지난 일이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 이른바 선진국이 되었으니 더 더욱 그렇다. 선진국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국가다.

 

정부의 주류정책 논의와 민간의 개입 필요성

 

형식상 우리나라는 기획재정부가 술 문제나 술 정책을 다룬 정책의 정점에서 통제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기후에너지세제과가 실무담당이다. 그렇지만 술 정책을 논의할 때 술과 건강, 술과 환경과의 관련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증거는 보기가 쉽지 않다. 기술발전, 소비자 효용성, 일자리 등과의 관련성을 논의했다는 자취가 대부분이다. “그 정책논의의 전제가 무엇이었을까?”를 유추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성장이다. 술 자체에 대한 전제를 점검 했다기 보다 일반적인 사업발전을 위한 상황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술 정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논의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봐야 할 듯싶다. “술은 일반 물질인가? 특별한 물질인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게다가 꾸준히 술 정책을 연구하고 방향성을 정립하는데 정책자문을 하는 등지원에 나서고 있는 전문가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중앙의 정책논의 자리에서 집요하고 구체적인 논의도, 성실한 합의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정부도 다 잘할 수는 없다. 산적한 정책과제가 그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문제는 중요한 문제인가? 아닌가?

정부가 다서기 힘들 때에는 민간의 관심 있는 의인들이 나서야 할 일이다. 오랜 기간 술을 만들고 마시고, 고민하고 연구한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서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농식품부는 주로 우리 농산물 수요확대에 관심을 갖다가 2000년대에 들어 전통주 등에 관한 법을 통과시키고 전통주 생산 유통의 활성화에 나서고자 노력하였다. 술 전체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다. 국세청도 해방이후 주로 주세문제를 중심으로 정책적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후반에 알코올 문제의 예방과 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다들 국지적 정책에 포커스를 두게 되는 데 정부 업무분장이 그러하니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이후 국세청이 주관하던 정책서비스들을 필요한 부처청, 즉 식약처와 농식품부 등에 이관하는 정책서비스 관장 분할이 이루어졌다. 공병 문제는 환경부가 처리하게 되기도 했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 주류 관련 정책의 대상이 다양해지고, 정부부처의 역할도 다각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국세청은 제조 유통 등 관련업계의 이견조정을 하며 갈등을 막고, 주세서비스 부문을 원활히 추진하는데 정책영향력의 범위를 제한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전체를 관장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보다 상위의 정책의사결정은 기획재정부로 넘기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정부 밖에서 보면 분위기가 그렇다.

 

국세청이 술 제조, 유통, 주세, 소비문화 등 전반에 대해 종합적 관심을 가지고 무거운 책임을 느끼던 시대가 옛날이 된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술 문제 나 주류동향의 통계자료를 발표하는 등 음주문제 정보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위생안전관리를 넘어선 정책을 아직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도 술의 위해성에 대한 원론적 논의를 할뿐 더 이상 정책의 전반을 술 문제를 중심으로 정리정돈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다만 술 문제의 위험성을 지적할 뿐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교육부나 여성가족부가 간혹 학생과 가족의 술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만 간헐적이고 극히 부분적이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학계’도 각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고 있다. 포괄적 연구를 하거나 적극적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편이다. ‘보건학계’나 ‘정신의학계’는 주로 술 문제를 다룬다. 경제학이나 행정학, 사회복지 분야도 주세 등 술 정책을 큰 이슈가 있을 때나 간혹 다루고 있는 편이고 술 문제 연구로는 뜸하게 피해정도를 추계하는 정도다. 술 관련 문제를 다루는 활동가들이 “술에 대한 연구나 민간의 활동은 20년 이전으로 복귀한 듯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1990년대 후반에 ‘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가 생기고 전국 대학에서 술문제를 줄이자는 토론과 강연, 예방활동이 활성화되던 때와는 상황이 크게 변한 것이다.

 

학계가 발표하는 ‘술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계결과는 복지부 관련 연구기관이나 대학의 학술연구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정책연구원>(2015년)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2013년 기준 9조4천524억 원이고 흡연(7조1천258억원), 비만(6조7천695억원)보다 많으며,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위험성 보고 정보가 국가의 알코올정책이나 주류산업 정책 수립 시 심각하게 고려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나 행정분야에서의 정책연구도 국가정책당국의 필요시에만 일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연구간 연관성이 적으며 해당 이슈만 필요에 의거 결론을 내고 정책을 추진하는 정도다. 종합적으로 국가대책을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고 그렇게 때문에 국가의 정책도 근본적인 관점을 소통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 보건학, 의료계, 인류학 등의 전문가들이 함께 나서는 종합적 연구를 해내고 행정관료들이나 국회에서 국가적 대책을 체계적으로 다루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 일을 언제 누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국회’도 술의 위해성, 음주 교통사고문제, 술과 법적 규제와의 관련성 등에 대해 일시적으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지만 끈질기게 술 문제를 다루지는 않고 있다. 음주운전사고가 많거나 심각한 법적 음주사고가 있거나 술 취한 이들이 경찰을 마비시키거나, 알코올중독자가 가족문제나 심각한 사건을 일으키는 사건 사고가 있을 때에나 일시적으로 관심을 갖고 마는 것이다. 상고사 시절부터 술에 친화적인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지만 그러기에는 문제가 간단치 않다.

 

갈등, 격차, 소외, 불평등이 커져가는 세상이다. 이때 술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 위안이 남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술로 인한 재난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일부 부유한 인간이 화성으로 이주해 가고 난 후에 지구에 남은 우리는 ‘엄청난 재난 속에서 술을 여전히 마셔야 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인류가 자연스레 술을 신으로부터 얻었듯이 ‘멸종되는 그 순간까지 술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큰 위안도 어려움도 동시에 줄 것’이라는 의견들을 나눈다. 술은 아마도 인류가 남아있는 한 사라질 재화가 아니라는 의미이면서 함께 마시고 논 후 사후관리도 제대로 해야 하는 물질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 예방의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다음호 계속>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