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이 왔건만,

임재철 칼럼니스트

 

어느새 봄이 찾아왔다. 바야흐로, 봄이다. 겨울 동장군과 코로나의 기세로 세상이 얼어붙고 사람들이 위축되고 있었지만 봄, 봄이 우리 곁에 왔다. 그러니까 코로나 일부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살아가는 현실은 차디찬 겨울이지만 새싹이 돋고 꽃 피는 계절이다.

우리 주위의 부드럽고 따스한 봄바람은 막을 수 없는 봄기운이다. 마음은 벌써 봄바람이 부는 저편을 거닐고 있다. 중국 명나라 때 환초도인이라 불린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에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말로 봄바람과 가을 서리의 지고지순함을 꼽았다.

9세기 당나라 때 백낙천도 시 ‘춘풍’에서 봄바람에 정원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뒤이어 앵두 살구 복숭아 자두가 차례로 핀다(春風先發苑中梅 櫻杏桃李次第開)라고 했다. 즉 봄바람이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기르는 것과 같이 모든 생명이 봄바람을 만나면 되살아난다는 거다.

 

그런가하면 남자의 마음보다 여심을 더 흔든다는 봄바람은 우리의 영원한 가곡 <봄처녀>에서도 볼 수 있다. 1932년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이 가곡은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라며 새봄을 처녀같이 아름답게 표현했다.

봄은 또 여자의 마음을 흔드는 계절이다. 좀 더 진하고 세파적인 표현에는 옛 선비들이 즐겨 썼던 ‘춘보용철 추자파석(春菩鎔鐵 秋子破石)’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도 있다. 풀이하면 ‘봄 여자는 철을 녹이고, 가을 남자는 돌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이 웃자고 한 표현으로 생각되지만 요즘에는 술좌석에서 종종 약간의 음담패설로도 패러디되기도 하여 춘보용철 추자곤벽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봄바람이며 봄기운을 얘기 하려다가 빗나갔다. 코로나에 멈춰선 우리네 일상은 그대로인데, 자연의 섭리는 이렇듯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탓에 요즘은 이런 봄의 생명체들도 가끔 변이종이 출현하고 있다. 가령 지난 1월 22일경 그러니까 음력 섣달의 추운 날씨에도 중국 윈난(雲南)성 푸얼(普洱)시 란창(瀾滄)현 징마이(景邁)산에는 벚꽃이 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 코로나의 기세로 세상이 얼어붙고 사람들이 위축되어서인지 필자는 이 봄에 몽상적인 ‘헛봄 바람’이 일고 있다. 즉 봄날에 허황하게 들뜬 변이된 마음이라 하겠다. 굳이 애기하자면 쓸데없는 바람이다. 무엇 때문일까. 박식한 세상 앞에 그냥 경박한 세상살이로, 아니면 핑계거리인 정치판으로 돌려 버리면 사라질지 부끄럽고 의문스럽지만, 그래서 이 봄날에 심연의 진실한 마음 갖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요즘 유난히 고독이나 외로움과 가까운 사람이 필자라는 생각이다. 많은 날들을 혼자서 생각하고 산책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긴다. 한때는 사람이 재산이라 여기고 많은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고 음료를 마시며 즐기는 성향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감성이 식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방향도 여러 갈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이가 들면 복잡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단순 해져야 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여하튼 그렇다.

 

나이 든 세대라서 그럴까?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꿈과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지만, 자유의 순간이 오기는 오려는가. 그런 저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갈수록 무력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봄의 깊은 고랑에 맺힌 헛바람이 아니고선 표현하기 힘들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면, 고독의 성찰을 통해 내면을 살피며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이 또한 삶의 여정이기에.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삼국지에서 ‘영원한 평화도 영원한 전쟁도 없다’고 했듯이 때가 되면 멈추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것이리라. 살다가 길을 멈추고 잠깐 쉬어야 할 때가 있다. 어느 곳이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인지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익숙한 곳을 떠나 외롭더라도 원하는 길이라면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전히 아쉽지만 이제 와 새삼 생각해 보면 지나온 세월에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겠다. 어쩌면 그 세월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바꿔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많은 상처를 견디고 서야 인생을 바라보는 혜안을 갖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상처를 얼마나 잘 승화하며 사는 가는 각자의 몫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봄의 세월은 어떨까. 분명 온 세상은 전환의 시대에 놓여 있다. 코로나, 기술변화, 기후위기, 신자유주의의 몰락, 미중의 패권갈등 등 여러 가지로 세상살이가 자꾸만 팍팍하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가진 자와 쥔 자들의 갑질, 일상화가 되어버린 정치권의 막무가내 싸움질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참고 견뎌야 한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변하고 있는 세상의 물결을 관조하면서 일상을 지내는 시간에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세계 인권 운동의 상징이고 남아메리카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만델라 대통령은 27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감사함을 잃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감옥의 밑바닥에서 그의 기적을 이루어 냈다는 거다. 따라서 감사하는 마음이 모든 걸 이루는 기적이 있다고 본다.

 

어려운 날도 시간이 가면 지나가리라 믿는다. 밝아지는 만큼 더욱더 어두워지는 것도 있고, 사람의 마음은 상대적인 것이라 군중 속에서의 느끼는 고독은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듯, 봄도 마찬가지이겠다는 결어를 찾게 되었다. 세상은 푸릇한 봄이지만, 저 세상이 나와 관계가 없다면, 나는 아직 시린 겨울에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봄이 오지 않는 현실이며 헛봄 바람에 대처하는 자세일 것이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내 마음의 겨울을 봄으로 만들 힘은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에서 출발할 것이다. 다만 막연한 긍정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그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가슴으로 산책하는 그런 결기나 강단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따금씩 우리의 삶은 가끔 그야말로 클릭 이동이나 리셋(Reset)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우고 새로 시작,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기존에 가진 것들을 긴 인생 살아가면서 한 번 정도는 다 버리고 치우는 것이 실은 더 좋은 것 같다.

봄이란 먼저 비우고 다시 채우기 시작하는 때이고 고난을 겪은 후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봄의 세월을 느끼며 사색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따뜻한 봄에 우리가 너무 힘들고, 세월의 야속함을 견뎌내고 지켜야 할 게 많더라도 자기 자신과 가치를 지키며, 살고 지고 하는 그런 우리 곁의 봄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월이 흘러도 또 다른 아름다운 봄은 멈추지 않고 오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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