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Blackout

블랙아웃 Blackout

 

빈병 숫자만큼 우정은 더해갔고,
어느 순간 대뇌의 필름은 끊기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엔 상처뿐…

 

독자투고 서울 도봉구 창동 이모(41)씨

 

나는 고등학교 시절 ‘백일주’니 뭐니 해서 술을 조금씩 입에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양의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때부터다. 입학하자마자 처음 맛본 대학문화는 바로 술이었다. 입학식부터 시작해 신입생 환영회, 각종 MT, 그리고 거의 매일 이어진 동기들과의 술자리….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배들과의 어려운 술자리보다 안주를 넉넉히 먹지 못해도 막역한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과음하는 일이 많았다.

1학기가 끝나가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수업이 끝나고 동기들과 술을 마셨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빈병 숫자는 많아졌고,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려는 듯 스킨십 또한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뚝!’ 하는, 과음을 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법한 대뇌의 하얀 백지상태, 즉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져 잠을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이 내방이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제 어떻게 술자리가 파했고, 무슨 교통수단으로 집에 왔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의 필름이 알코올에 모두 녹아버린 것이다. 손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고 목에는 긁힌 자국, 무릎에는 빨간 피멍까지 들어 있었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이 정도의 상처면 누구랑 한판 대차게 붙은 게 틀림없었다. 술이 덜 깬 몽롱한 정신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부랴부랴 학교로 갔다.

과 학생회실의 문을 여니 어제 같이 술을 마셨던 동기 한 녀석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인사를 하려고 하는 순간 동기의 콧잔등에 붙어 있는 반창고며 목에 있는 상처를 보고 놀랐다.

“내가 어제 저 녀석과 싸워나 보네…, 근데 왜 싸운 거지?”

동기 역시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우린 서로의 상처를 보고 괜찮은지 묻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심하게 싸운 뒤에도 거리낌 없이 화해할 수 있는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우린 함께 이제 다시 술을 마시지 말자고 다짐했다. 물론, 이런 다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음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어제 술자리의 또 다른 동기가 들어왔다. 물론, 그도 초췌한 모습이 불쌍할 정도였다. 그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쓰레기들”이라며 집에는 잘 들어갔냐고 물었다. 우린 화해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어깨동무하며 웃어줬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야! 너희들은 어제도 어깨동무하고 가다가 넘어지고 구르고 전봇대에 부딪혔으면서 아직도 어깨동무하고 싶냐?”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나는 내 옆에 있는 동기와 싸운 적이 없음을 깨달았으며, 그저 어제 함께 불러댔던 노래만이 머릿속에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동기 역시 어제 일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자기도 내 상처를 보고 우리가 싸웠을 것으로 지레 짐작했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우린 속으로 서로의 바보 같음을 비웃었다. 물론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술자리로 이어졌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우리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대학을 졸업한지 2년이 넘은 지금,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술자리를 가졌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의 필름이 알코올에 녹는 시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음주가무를 즐기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성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날씨가 꾸물꾸물한 날이면 그때 그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진탕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니 말이다. 비록 내일 일어나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아픔을 겪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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