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세계로 가는 인간의 통로로서의 술

 

이상세계로 가는 인간의 통로로서의 술

 

 

박정근(소설가, 시인, 도봉문화재단 이사, 윌더니스문학 발행인)

 

박정근 교수

플라톤은〈공화국〉에서 시인을 사회에서 축출해야 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천상에 있는 ‘이데아’를 추구해야 하는데 정작 시인은 이성보다는 감정과 영감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시인은 이데아에 이르지 못하고 그에 대한 ‘그림자’의 ‘그림자’를 재현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이성을 통해서 실체를 추구하지 않고 열등한 매개체인 영감을 추구하여 자신의 능력이 아닌 신의 힘을 빌린다고 보았다, 결국 시인은 이성이 아닌 영감을 통해서 실체를 재현하는 시어를 획득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해로운 존재라고 본 것이다.

 

플라톤의 관점에서 인간의 눈에 드러난 자연은 이데아를 모방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인은 시 속에 자연을 모방하여 재현한다. 그렇다면 시는 이데아의 그림자를 모방했으니 그림자의 그림자를 모방한 꼴이다. 시인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제시하지 못하고 허상의 허상을 재현하는 거짓말쟁이와 다름없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은 공화국의 시민들에게 해로운 존재이므로 시민들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연명은 시인으로서 이데아를 어떻게 추구한 것일까. 이전에 필자가 주장했듯이 도연명은 술이 있는 곳이면 시가 있고 우정과 사랑이 있었다. 술은 이웃과 친구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통로였다. 도연명에게 시, 우정, 사랑은 플라톤의 이데아로 인식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도면명은 실체에 대해 플라톤과 반대 입장에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을 관찰하면 이와 관련된 친구가 생각이 나고 그와 동질감을 느끼며 술을 찾는다. 이데아란 천상에 있다기보다 도연명의 일상적 삶속에 존재한다. 술과 예술이 젊은이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해로운 매체가 아니라 인간의 최고의 가치로서 시, 우정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데아로 나아가는 통로였던 것이다. 도연명은 <시운(時運)>(사계절의 운행)에서 자연과 우정 그리고 술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延目中流, 시냇물 가운데에 눈길을 머무르니

悠想淸沂. 맑은 기수가 아득하게 생각이 나네

童冠齊業, 아이들과 함께 모여서 공부한 후

閒詠以歸. 유유히 노래 부르며 돌아왔었지

我愛其靜, 나는 그토록 한적한 삶을 사랑하여

寤寐交揮. 자나 깨나 자주 술을 마신다네

但恨殊世, 단지 한스러운 것은 세상이 변하여

邈不可追. 아득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어라

 

시인은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 함께 우정을 돈독하게 나누던 동무를 생각한다. 그와 함께 놀고 공부했던 어린 시절의 동무들은 그야말로 맑은 시냇물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세월이 흘러서 혼탁해진 삶을 살아갈수록 천진난만했던 동무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에게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친구들은 시인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시인의 추억 속에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그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서 부르던 노래가 먼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들려온다. 시인은 추억 속의 동무들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래서 그는 술을 시도 때도 없이 마시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인은 현실로서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다다를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것은 도연명을 시적 비극성으로 몰아간다고 볼 수 있다.

 

도연명은 추억 속에 존재하는 우정과 시적 환상을 추구하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온다. 그는 마냥 추억만을 더듬기에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엄존하고 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하여 어린 시절 동무들을 노래할 수 있는 거문고가 침상 위에 있고 마시다 만 탁주는 반이나 남아있다. 순수하게 추억 속에 존재하는 최고의 가치 이데아 상태의 우정이 어린 추억이 눈앞에 시냇물의 잔물결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동시에 추억 속으로 안내하는 거문고와 탁주가 현실의 침상 위에서 부조화 속에서 가시권에서 나타난다. 도연명은 그의 모순된 감정 상태를 <시운 時運>(사계절의 운행)에서 연이어 노래한다.

 

淸琴橫牀, 거문고는 침상 위에 가로질러 있고

濁酒半壺. 탁주는 술병에 반쯤 남아있구나

黃唐莫逮, 황제와 요임금 시대에 미칠 수 없으니

慨獨在余. 내게 슬픔만 가득할 뿐

 

이 시에서 도연명은 이상과 현실 중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플라톤처럼 불가시적 세계로서 천상에 이데아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일상적 삶 속에서 이상적 이미지를 찾아서 자신의 이상적 세계와 연결을 시키고자 했다.

시나 예술, 그리고 술이 허상으로 이끄는 불건강한 매체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이상세계로의 통로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추억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 과거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한계를 토로하였다.

이것은 시인의 현실이 황제나 요임금 시대와 상당한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이 있어 극복할 수 없는 비극적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술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일시적으로나마 망각하고 자유를 획득하게 하는 해방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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