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생각

 

임 재철 칼럼니스트

 

시간은 질주하여 잔인한 4월이다. 서럽고 서글프고 고독하고 허탈하다. 오 년이 너무 길다. 오 년을 어찌 사나. 까마득한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지만 대선 이후로 필자의 시간은 야속하게 정체되어 있다.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마음도 그대로다.

 

하여 말없이 음울하게 서서 상념에 젖는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행복’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겠지만 인생의 모퉁이인 한 사람으로서 그냥 그렇다. 각자에 따라 행복의 정의나 체험이 다르긴 하겠지만, 오히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런 감정 자체가 식어 버린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거나 사랑을 구하거나 여려 형태의 소망을 갖는 이유도 결국은 ‘행복’으로 귀결된다. 생명이라면 누구나 가 닿게 되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이유도 없다. 거기에는 무슨 수로도 행복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행복할 수 있는 시공간이다. 우리가 놓여 있는 현재 다른 시공간은 없다는 전제이고 보면 행복은 단순한 답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기업에서는 직면하는 수많은 경영상황에서 어떤 문제의 현명한 답을 얻기 위해 좋은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즉 광범위한 자문자답이다. 개인에서부터 기업 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명한 여러 질문을 던지면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온다는 것인데, 하지만 행복이라고 하는 질문에는 스스로 만족에 근접해지지는 답이 쉽지 않다는 확신이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말은 결국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필자 역시 이렇게 사는데 과연 행복한가를 따지고 보면 행복하기위해 돈을 버는데 자꾸만 몸과 마음이 가난해지는 건 왜일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정말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행복할까.

 

대개의 사람들은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갈 때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은 재산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신체 일부에 작은 가시 하나만 찔려도 온몸에 진통이 전이된다. 때문에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

 

이를 테면 오미크론 확진으로 힘들었던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이 너무 아팠다고 얘기한다. 감기보다 약하단 말이 빈말이었다고 했다. 물론 케바케다. 어떤 이는 감기의 모든 종류가 한꺼번에 몰려와 뼈마디 206개를 확인할 만큼 힘들었고 겨우 조금 회복되어 커피를 마시는데 맛이 이상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사는 맛이 없었다며 가족들에게 번지지 않게 하고 피해가는 게 현명하다는 조언이었다.

 

‘행복은 진지한 문제다’의 저자 데니스 프레이저는 갓난아이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말하는 단어가 ‘더 줘’라고 소개한다. 이와 함께 그는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감정이 아니다라고 언급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대개 추상적인 느낌이며 그 느낌은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좋은 일의 결과로 생긴 감정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기만을, 그래서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하지만 그는 행복이란 느낌이 아니며, 우연히 찾아오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쟁취하면 과연 더 행복하게 될까. 필자는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할까, 불행하게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하고, 더불어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인생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하겠다.

누군가 인생이란 기관차를 움직이는 힘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물은 끓고 난 다음에 수증기를 발생시킨다. 엔진은 증기 게이지가 212도를 가리키기 전에는 1인치도 움직이지 않는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미지근한 물로 인생이라는 기관차를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 때 일어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현상, 그는 멈춰 버리고 말 것이다. 열정은 불속의 온기이며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숨결과 같은 것이다.’

이렇듯 인생의 행복은 하는 일과 시간에 강력하게 집중하면서 자기만의 숨어 있는 성취나 만족을 발굴하고, 두뇌에서는 소위 ‘도파민’이라고 하는 행복 전달물질이 왕성하게 분출되게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시공간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렇듯 지극히 단순한 거부터 일상 속에 그저 묻어나는 좋은 감정 같은 바로 그런 것이 행복일 거다.

 

행복은 열매가 아니라 줄기나 가지에 더 많다고 했듯 누구나 계획을 세우고 성취를 추구하는 삶은 온당하다. 행복이나 불행은 크고 작은 계획과 성취 안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보다 더 좋은 조건, 보다 더 괜찮은 일, 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고자 하는 과정, 그러니까 희망과 꾸준한 노력이 행복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이쯤 되면 서두의 분위기와 의식은 상당히 반전되어 ‘행복’에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다 풀리지 않았지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더니 몸이 나른하고 피곤해진다. 이럴 때는 음식으로 우리 몸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우리가 제철 음식을 신경 써서 잘 섭취해 몸의 면역력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때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약간의 노고의 휴식이랄까 건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기에 말이다.

여기서 잠깐,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난다고 해 보자. (중국어로 굳이 쓰면 我摆脱这个世界的束缚和枷锁,去寻找我的幸福了). 여행자의 가장 큰 행복은 아마도 여행길 위에 있을 것이다. 즉 여행을 하는 것은 공간 이동,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통한 자아 성장과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몸으로 직접 낯선 현장을 체감해야 비로소 자기가 누군지 실감할 수 있는 것이고,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함께 행복감을 체득할 수 있다.

 

인생을 한 편의 연극으로 비유하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인생을 흔히 여행에 빗대어 왔다. 그리하여 누구나 나그네가 되었고 여행길을 떠난다는 것은 곧 삶의 길을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그네는 그가 쉬어 간 그늘을 생각하지 않는다지만 현실에 매몰된 딱딱한 일상을 벗어나 떠나기 전부터 설렘이 있는 여행길에 오르는 또 다른 나그네는 가슴으로 산책하는 행복한 여정이 될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필자로서는 대부분 홀로 활보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어색하지가 않게 되었다. 오히려 호젓하고 자유로운 매력에 점점 빠져들어 홀로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좋은 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혼자 컴퓨터를 통한 영화 보기도 가장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진한 감화인지는 아직 예민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또한 필자의 ‘생각’으로선 행복 근육 만들기가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위에서 서성일지 알 수 없지만, 많이 부족함에도 이렇게 나이 들어 갈 수 있어서 세월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그냥 행복하고 고맙다고 스스로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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