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럽지 않게, 어렵지 않게 마시는 Whisky Tasting
최근 싱글몰트 위스키의 인기가 좋다. 이는 우리에게 위스키가 꽤 가까이 와 있다는 얘기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위스키는 주로 룸살롱이나 모던 바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브랜드 선택의 폭도 넓지 않았다. 위스키를 즐기는 이들에게 싱글몰트, 그레인, 스카치 등의 종류는 필요치 않았다. 그저 위스키이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수년 전부터 각 포털사이트의 위스키 관련 카페 회원들은 정모(정기모임) 때마다 희소성 있는 위스키들을 함께 마시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서울 신천의 한 바(bar)에선 각종 몰트위스키를 10년 전 오픈했을 때부터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다. 물론, 그 매력에 빠져 단골이 된 손님이 적지 않다. 올 2월에는 단 하루 열린 ‘위스키 라이브’ 행사에 수천 명이 몰려들어, 주최측과 참가 업체들이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위스키의 인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다. 알고 싶고 마시고 싶은 만큼 찾았고, 알게 됐고, 그 매력에 빠졌고, 그것이 여기저기 퍼졌다. 자연 인기가 뜰 만할 때 뜬 것이다.
허나, 문제가 하나 있다. 그간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위스키의 향과 맛을 찾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실 준비는 됐는데 어떻게 마셔야 할지 난감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미래의 위스키 애호가들이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늘 그래 왔듯이 샷잔에 따라 한 입에 털어 넣고, 맥주잔에 맥주와 섞어 마시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테이스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연의 맛을 느끼고 향을 맡는 일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솔직히 ‘위스키 테이스팅’이라는 말이 생소하다. 그 이유는 아직 우리나라에 위스키를 음미하는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스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늘 하듯 ‘자연의 맛을 느끼고 향을 맡는 일’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모든 풍미의 근원을 자연이라고 생각하면, 마시고 있는 위스키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자연의 풍미를 조금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스키 문화는, ‘회식’이라는 이름의 집단적인 음주 풍토와 ‘폭탄주’로 불리는 위스키와 맥주의 혼음 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기존 위스키 문화에서는 개인의 취향이나 위스키 선택의 다양성이 존중받기 어려웠고, 또 위스키의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하면서 즐기는 문화 역시 자리 잡기 어려웠다. 위스키는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제품마다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자기 취향에 맞는 위스키를 찾아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위스키의 종류는 크게 나라별로 나누고, 그 다음 재료 및 생산방식으로 나눈다. 생산방식으로 나누자면 하나의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와, 여러 증류소에서 생산한 것들을 혼합한 위스키가 있다. 각기 다른 증류소의 지역별 특성, 생산방식, 증류기,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과 그 배합에 따른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맛과 향을 지니게 돼 브랜드별 특성이 다양하고 개성이 풍부하다.
와인 테이스팅이 와인이 상했는지의 여부나 디캔팅(decanting)이 필요한지 등을 알기 위한 전문 소믈리에의 역할이라면, 위스키 테이스팅은 다양성을 지닌 위스키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가끔 사람들은 테이스팅에 대해 얘기하면서 좋은 위스키와 나쁜 위스키를 구별하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위스키는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대부분의 위스키 애호가들은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다’고 말한다.
대화의 시작
위스키는 모든 증류주 가운데 브랜디와 더불어 가장 오랜 기간 숙성시켜 만드는 술이다. 수백 년간 전통을 이어온 장인들의 손을 거쳐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완성되는 ‘시간의 예술’인 것이다.
와인 빈티지가 와인이 만들어진 해의 날씨와 기후 같은 계절적인 시간을 담아내는 것이라면, 위스키 빈티지는 장기 숙성을 통해 ‘세월’을 담아낸다. 위스키 메이커들은 위스키를 시음할 때 “어프리셰이트(appreciate)”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 말에는 ‘평가한다’는 의미와 함께 ‘고맙게 생각한다’, ‘감상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위스키의 풍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위스키에 “어프리셰이트!” 하고 대화를 시작하자.
테이스팅 前 라벨 읽기
본격적인 테이스팅에 들어가기 전, 우선 위스키의 앞뒤 라벨을 꼼꼼히 봐주길 바란다. 와인 라벨처럼 위스키 라벨에도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위스키 라벨에서는 기본적으로 위스키의 종류, 숙성 기간과 알코올 도수는 물론 하이랜드․아일레이․캠벨타운 등 위스키 생산지역과 칠 필터링 여부, 캐스크 스트렝스 등의 정보를 알 수 있으며, 생산된 빈티지도 표기돼 있다. 일부 위스키 라벨에는 숙성 통에 대한 정보와 간단한 테이스팅 노트(tasting note)도 함께 들어있다.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알코올 도수가 50~60%로 높은 위스키 원액을 물로 희석하지 않고 바로 병에 담은 것. 일반적인 위스키는 병에 담기 전 물로 희석해 알코올 도수를 40~43%로 낮춘다.
*칠 필터링(chill filtering) 위스키의 지방산을 제거하기 위한 여과 과정. 높은 알코올을 함유한 위스키는 용해된 지방산을 갖고 있다. 위스키에 물을 넣거나 차갑게 하면 지방산이 표출돼 위스키가 흐려지거나 안개처럼 변한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칠 필터링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싱글몰트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은 지방산과 함께 위스키의 개성이 사라진다고 믿어 언칠(un-chill) 필터링 위스키를 선호한다.
빛깔은 정보를 담고 있다
잔에 위스키를 따른 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이 위스키의 빛깔이다. 우린 여기서 맑고 투명한 빛깔부터 아주 진하고 불투명한 다크 월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빛깔을 통해 위스키 숙성에 쓰인 오크통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버번위스키를 담았던 통에서 숙성된 위스키는 금빛을 띠면서 윤이 난다. 진한 금빛 위스키는 처음 쓰는 통에 담겼던 것이고, 연한 금빛 위스키는 재사용된 통에서 숙성된 것이다. 스페인산 피노 셰리(fino sherry)를 담았던 통에 처음 채운 위스키는 진홍빛을 띠며, 재사용된 올로로소 셰리(oloroso sherry) 통에 담긴 위스키는 광택이 나는 마호가니 빛깔을 띤다.
하나의 오크통을 썼을 경우에는 빛깔이 진할수록 오래 숙성시킨 제품일 가능성이 높지만, 숙성 통을 다양하게 배합한 경우 빛깔만으로 장기 숙성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위스키에 물을 넣었을 때 빛깔이 흐려지면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이거나 언칠 필터링 제품이다.
위스키마다 빛깔이 다른 것은 숙성 과정이 다르다는 뜻일 뿐, 그 자체로 품질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위스키의 가치를 나타내는 글라스
위스키 테이스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글라스의 선택이다. 와인에도 포도 품종별 특성을 살려주는 다양한 모양의 글라스가 있듯이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위스키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적당한 용기, 즉 노징 글라스가 필요하다. 오래 숙성된 위스키는 향이 풀리는 데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며, 제대로 풀린 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글라스가 필요한 것이다.
위스키 테이스팅에는 주로 튤립 모양의 셰리 코피타(sherry copita)나 여러 가지 노징 글라스를 사용한다. 이런 노징 글라스는 수십 년간 숙성된 위스키 본연의 맛과 향을 일깨워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튤립형 글라스가 없다면 사이즈가 작은 와인글라스나 브랜디용 스니프트(snifft)도 괜찮다. 그것마저도 없다면 바닥이 넓은 텀블러(tumbler)라도 써보자. 단 얼음은 넣지 않는다.
오늘 당장 글라스를 바꿔보라. 그동안 즐겨왔던 위스키의 맛과 향이 훨씬 풍부해진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노징 글라스(nosing glass) 위스키 테이스팅에 적합한 잔 이름. 테이스팅에 어울리게 만들어져 있다. 특히, 위스키 향을 맡는데 적합하다.
잠자는 위스키의 향은 무엇으로 깨울까
적당한 글라스를 준비했다면 이제 천천히 위스키를 따라보자. 경험 많은 사람이라면 위스키를 따른 뒤 바로 마시지 않고 약간의 시간을 두면서 글라스를 천천히 스월링(술을 글라스에 따른 뒤 공기와 섞어 향을 발산시키려고 잔을 둥글게 돌려주는 행동)해 닫혀있던 위스키의 향들이 발산되기를 기다렸다가 시음할 것이다. 경험이 많지 않다면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른 뒤 약간의 물을 첨가하길 권한다. 수십여년간 오크통에서 잠자던 위스키의 향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단단하게 닫혀있다. 이것을 깨우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과 스월링, 또는 한 방울의 물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은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우는 백마 탄 왕자의 키스와 같이 마법에 걸린 위스키의 향을 자연스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향이 풀리면 수십여년간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위스키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부드럽게 속삭일 것이다.
향 맡기는 풍미를 알아보는 중요한 단계
위스키 테이스팅에서 ‘향 맡기’는 위스키의 풍미를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의 향을 맡을 때에는 와인처럼 코를 가까이 들이대는 것보다 거리를 약간 두는 것이 좋다. 이 과정을 통해 위스키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향들을 즐겁게 감상하며 생산 지역과 생산 과정, 숙성 통 등을 짐작할 수 있다.
달콤한 바닐라향이 강하면 대부분 버번 통에서 숙성시킨 미국 위스키이며, 말린 과일향이 풍부하면 주로 셰리 통에서 숙성시킨 아이리시 위스키다. 독특한 피트향이 나는 위스키라면 몰트를 건조하는 과정이나 증류 과정에서 피트를 쓴 스카치위스키이며, 갯벌 냄새나 요오드 향을 풍기는 위스키는 바닷가에 위치한 증류소에서 만든 아일레이 위스키다. 위스키 향은 ‘아로마 휠’이라는 체계적인 향 분석표로 나타낼 수 있다.
맛과 질감 그리고 피니시
향을 천천히 감상했다면 이제는 입안에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어보자. 스트레이트로 한 번에 마시면 위스키가 순식간에 입안을 통과해 목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 오히려 목을 타고 역류하는 알코올 풍미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다.
위스키를 입안에 머금으면 처음에는 증류주 특유의 높은 알코올 도수 때문에 ‘뜨겁게’ 혹은 ‘불타는’듯한 느낌을 받지만, 시간이 흐르면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여러 풍미가 느껴진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같은 여러 맛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며, 2차적인 향들까지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입안 전체를 자극하던 위스키가 입안에서 머물다가 자연스럽게 목으로 넘어가고, 숨을 내쉬면 코와 입과 목은 남은 위스키의 향과 맛으로 가득 찬다. 이것을 ‘피니시’라고 한다. 대개 도수가 높거나 숙성 연도가 오래된 위스키는 피니시가 길게 느껴질 수 있다. 피니시는 위스키의 품질에 따라 길이가 결정된다. 이런 테이스팅 과정을 통해 한두 모금 또는 한두 잔 정도 마시며 위스키가 풀어내는 독특한 향과 맛을 음미한 뒤에야 한결 편하고 자유롭게 나머지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
위스키 평론가와 전문지
테이스팅은 위스키의 진면목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필수 과정이다. 테이스팅의 가장 큰 목적은 다양한 위스키 가운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위스키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스팅 과정을 통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위스키를 찾았다면 전문지와 잡지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해보자. 와인에 로버트 파커 같은 평론가와 ‘와인 스펙테이터’ 등의 전문지가 있듯이, 위스키에는 작고한 마이클 잭슨이나 짐 머리에 같은 평론가와 ‘위스키 매거진’이라는 전문잡지가 있다. 맛이나 향이 궁금한 위스키가 있다면 마이클 잭슨의 ‘몰트위스키 컴패니언’이나 짐 머레이의 ‘위스키 바이블’ 등에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맥시엄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