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起酒)’ 스토리텔링 및 술 빚는 법

박록담의 복원전통주스토리텔링 107번 째 이야기

 

기주(起酒)’ 스토리텔링 및 술 빚는 법

 

 

‘기주(起酒)’라는 주품은 <山家要錄>에 만 수록되어 있는 유일한 방문이다. ‘기주(起酒)’는 우리나라 전통 양조방식의 ‘과학화’, ‘합리화’를 입증해주는 중요한 술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기주’는 본격적인 양조를 위해 미리 빚어둔 본주(本酒:단양주의 경우에는 술밑, 2양주의 경우 밑술)와 합하여 사용하는데, 이른바 ‘보조술’로 현대양주에서는 ‘주모(酒母)’라고 한다.

술을 빚어서 1~2일이 되면 발효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누룩 속의 효모와 누룩곰팡이, 젖산균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시기이다. 특히 효모는 ‘아밀라제’의 도움으로 당(糖)을 사용하여 증식과 발효를 동시에 진행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증식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여 술밑을 지배하게 되고, 보다 안전한 발효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효모균이 당을 사용하여 발효보다 증식에 주력하게 되는 까닭은 효모 수에 비해 주어진 당의 양이 적다는 데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증식을 통하여 박테리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잡균이나 특히 초산균으로부터 식량인 당을 지켜내기 위한 활동이 증식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증식된 효모를 본격적인 양조에 투입하여 주게 되면, 적은 양의 누룩을 사용하면서도 안전한 발효를 도모할 수 있게 되고, 누룩의 양이 적게 사용된 만큼, 술에서 누룩(곰팡이) 냄새가 적으면서, 발효를 통한 ‘방향(芳香)’은 강하게 나타나, 향취가 좋은 술이 된다.

이렇게 ‘주모’를 이용한 양주기술은 근대에 와서 일본에서부터 체계적으로 확립되었으며, 특히 일본의 현대식 사케 제조공정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으로 보급, 확산되기 시작하였는데, 유감스럽지만 우리나라의 양주산업은 철저하게 일본의 사케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일본식 양주기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볼 때, ‘기주’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1450년대 개발된 양조기술의 하나로, <산가요록>에 수록되어 있던 ‘기주’가 이후의 다른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주’는 보급, 확산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것일까?

<산가요록>은 어의(御醫)를 지낸 전순의에 의해 저술된 문헌으로, 현재로선 국내 최고의 양주관련 저술이라고는 하지만, 대중에게 전파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산가요록>의 주방문이 전문적으로 술을 빚어보지 않은 일반인이 따라 하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하는 점이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그 예로 <산가요록>에 수록된 탁주의 하나인 ‘소곡주’ 주방문을 예로 들면, “멥쌀 7말 5되를 씻어 물에 담갔다가 곱게 가루를 내고 끓는 물로 죽을 쑨다. 식으면 누룩가루 7되, 밀가루 5되를 섞어 술을 빚는다. 익으면 멥쌀 7말 7되를 씻어 물에 담갔다가 푹 찐 다음에 식혀서 누룩가루 3되와 섞어 먼저 빚은 밑술로 덧술 하여 만든다.”고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술에 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 주방문대로 하였을 경우, 술이 끓어오르지 않는 등 실패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그 배경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술이 체계적인 주방문 형태를 갖추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때는

149~1494년간으로 알려진 어숙권의 <故事撮要>의 등장 이후라고 생각된다. <고사촬요>에 수록된 소국주(少麴酒)는 “깨끗이 쓴 멥쌀 1말을 매 씻어 가루를 만들어 질그릇 동이에 담고 깨끗한 물 2병을 무거리에 붓고 끓인다. 이것을 쌀가루에 골고루 타서 식은 뒤에 빻은 누룩 1되 5홉과 버무린다. 7일째가 되거든 깨끗이 쓴 쌀 2말을 전과 같이 매 씻어 두고, 쌀 1말에 팔팔 끓는 물 2병을 고루 뿌려, 식거든 먼저 빚은 술밑과 뒤섞어 독에 넣는다. 세이레가 되어 맑게 가라앉은 뒤에 쓴다.”고 하여, 동일한 주품에 대하여 술 빚는 방법이 비교적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따라 하기가 수월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주’가 널리 보급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고, <고사촬요>를 인용한 문헌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데, 양주관련 문헌과 기록으로 1611년에 간행된 것으로 밝혀진 <東醫寶鑑>을 비롯하여 <음식디미방>, <酒方文>, <山林經濟>, <民天集說>, <甘藷種植法>, <酒饌> 등 여러 문헌에 ‘주본(酒本)’, ‘부본(腐本)’ ‘작주부본(作酒腐本)’, ‘서김(腐本)’이라 하여 ‘기주’와 같은 용도의 주방문이 18회나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고사촬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山林經濟>에 수록된 ‘작주부본법(作酒腐本法)’을 보면, “멥쌀 1말을 깨끗이 씻어 겨울에는 10일, 봄·가을에는 5일, 여름에는 3일 동안 물에 담가 쌀알 속속들이 불려, 건져서 폭 찐다. 여기에 약간의 누룩을 넣고 손으로 비벼 골고루 섞어 항아리에 넣고 주둥이를 봉하여, 겨울에는 따뜻한 데 두고, 여름에는 서늘한 데 두어 삭아서 술이 되거든 떠 쓴다. 그 맛이 약간 시금털털하면서도 살살 녹아 좋다.”고 하여 ‘기주’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산가요록>의 ‘기주’는 후기에 이르러, ‘주본(酒本)’, ‘부본(腐本)’, ‘서김(腐本)’으로 보다 발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山家要錄>의 ‘기주(起酒)’는 체계적인 양조기술의 확립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주품이요, 주방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起酒法 <山家要錄>

술 재료 : 멥쌀 2되, 누룩 2되

술 빚는 법 ①멥쌀 2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하룻동안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뒤,)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②고두밥이 익었으면 시루에서 퍼낸다(고루 펼쳐서 식히는데, 겨울에는 온기가 남게, 여름에는 차디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고두밥과 누룩 2되를 섞어 술독에 담아 안친다.④술독은 예의 방법대로 하여 겨울에는 2~3일, 여름에는 1일쯤 두었다가 익기를 기다려 술 빚을 때 사용한다.⑤술이 익으면 본주(밑술)에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독에 담아 안치고 발효시킨다.

* 기주(起酒)는 마시기 위한 술이 아닌, 본주(本酒)를 빚기 위한 밑술 또는 술의 발효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빚는 술이다.

 

박록담의 복원전통주스토리텔링 108번 째 이야기

 

곡미주(麯米酒)’ 스토리텔링 및 술 빚는 법

 

‘곡미주(麯米酒)’는 보리쌀로 밑술을 빚고 발효되어 술이 익으면, 걸러서 탁주로 마시기도 하고, 날씨가 더워져서 술이 변질되거나, 오래되어서 맛이 없어지면 필요에 따라 증류하여 소주를 내려서 마시는 방법의 술이다.

이러한 예는 그리 흔치 않은 방법이나 멥쌀술이 보리쌀 술 보다는 맛이 부드럽고 향이 좋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빚어진 ‘곡미주(麯米酒)’는 보리소주(麰米燒酒)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른바 ‘한국식 위스키’와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술이 발효되는 관점에서 보면, 가히 옳은 방법도 좋은 술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술이란 증류한 소주보다는 발효주인 청주나 탁주가 한국인의 체질에 더 잘 어울리는 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리로 술을 빚고 증류하여 소주를 마시게 된 배경에는 보리술의 알코올도수가 낮은 관계로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곡미주’와 같이 보리나 잡곡으로 빚는 술의 경우, 그 실제에 있어서는 2양주나 3양주를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밑술이 본술(덧술)의 바탕이 되므로, 보리와 같은 잡곡으로 밑술을 하고, 알코올도수가 높아지는 멥쌀이나 찹쌀로 덧술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유일하게 수록되어 있는 ‘곡미주’는 단양주로서, 알코올도수가 낮은 대신 술의 풍미를 좋게 하기 위하여 급수양(양조용수)을 적게 가져가는 편이 좋고, 주원료 자체가 당화가 용이하지 않은 까닭에 누룩의 양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30~40%)을 차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곡미주’와 같이 보리쌀을 사용하여 빚은 술은 공통적으로 증류주가 많은데, ‘곡미주’라는 명칭보다 ‘모미주(麰米酒)’ 또는 ‘모미소주(麰米燒酒)’, 그리고 더러 ‘피모소주(皮麰燒酒)’로 표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국내 최초의 양조전문 기록인 <산가요록>을 비롯하여 <諺書酒饌方>과 <(釀酒集>, <農政會要>에서는 ‘모미주(牟米酒)’, <酒方文>에는 ‘보리주(麰酒)’, <酒食方(高大閨壼要覽)>에는 ‘보리술법’ 등 다양한 명칭으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보리쌀을 이용하여 빚는 술의 예는 그리 흔치 않은 방법이나, 쌀 술 보다는 보리쌀로 빚은 술의 맛이 부드럽고 구수한 맛과 향이 좋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술에 적당량의 물을 사용하는 대신 누룩의 양을 줄이면 보다 감미롭고 향기가 좋은 술을 얻을 수가 있다.

‘곡미주(麯米酒)’에서 밑술을 증류한 결과, 25%의 소주 3되 5홉을 얻을 수 있었다.

 

麯米酒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술 재료 : 보리쌀 1말, 누룩 3~4되, 물 (5되~1말)

◇ 술 빚는 법 ①보리쌀을 물에 깨끗이 씻어 돌확에 갈아 하얗게 대껴서 까불어 놓는다.

②까불은 쌀을 솥에 안치고 끓여서 밥을 짓고, 익었으면 냉수에 담가 3일간 불려둔다.③ 보리밥을 건져서 볕에 바짝 말린 뒤, 절구에 찧어 껍질을 없이하여 준비한다.④준비한 보리쌀 1말을 시루에 안쳐서 찐다.⑤고두밥은 시루밑물을 넉넉히 붓고, 불을 세차게 때서 무르익게 쪄내고, 익었으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⑥고두밥에 준비한 분량의 누룩가루 3되(증류 목적이면 4되)를 혼합하고, 절구에 인절미처럼 찧어 술밑을 빚는다. ⑦술밑에 물 (5되~1말)을 합하고, 다시 고루 버무려서 술독에 담아 안친다.⑧술독은 예의 방법대로 하여 발효시키고, 익는 대로 밥알이 동동 떠오르면 채주한다.⑨채주한 술은 그대로 마시면 구수한 탁주 형태의 부드러운 보리술이 된다.⑩소주를 빚으려면 채주한 술을 가마솥에 담아 안치고, 소줏고리를 얹어 예의 방법대로 증류하여 소주를 얻는다.

* 주방문 말미에 “소주를 고우려면 누룩을 넉되 쓰라.”고 하였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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