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이 생각날 때면

술 한 잔이 생각날 때면

 

용수문학 회장 백 필 기

 

축하 연회에 반주 한 잔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반가운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할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술이 있어야 좋은 분위기로 이어지는 축의가 될 것이다. 연회장 탁자에 차려지지 않은 주안이 내심으로 아쉬운 것은 주벽으로 가는 전조일까.

좋은 만남의 자리에서 차분한 대화를 나누다가 약주가 나오면 금시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진다. 첫잔을 받아들어 아직은 주기가 오를 리 없어도 기분은 이미 감흥에 젖어든다. 한 순배 잔이 채워지면 얼굴에도 마음에도 홍조가 돌고 화기애애하게 정감이 있는 얘기꽃을 피운다.

술은 권하는 맛에 마셔야 제격이다. 요즈음에는 점점 각박해져가는 인심으로 예전부터 전해오던 주법(酒法)도 달라져가고 있다.

받았던 잔을 비우고 마음을 담아서 권주 잔으로 주는 술자리의 운치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한 잔 술을 권하고 싶어도 못다 준 결례를 한 것 같은 미안함과 섭섭함이 어우러진 허전한 마음으로 비우지 않은 잔에 술을 채워준다.

행여 알 수 없는 고뿔이라도 건너올까 마음 졸이면서 처음 받았던 잔에 다시 채워주기를 원한다. 과음하기 쉽다는 명목으로 마셔서 비우고 주는 잔은 마다하니, 경계하면서 드는 술에서 정이 흐를 수 있을까. 어찌 잔을 주고 따르는 정감이 있는 운치가 있을 수 있으며, 술맛이나 제대로 나겠는가.

좋은 감정이 생기면 건강에도 이롭다고 한다. 정 깊은 벗을 만나는 자리에 술 한 잔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마음을 열었던 신의로 권커니 잣거니 밤새도록 마신들 어떠랴. 예전에는 목숨도 대신 줄 수 있는 문경지우(刎頸之友)로 사귀는 벗도 있었는데, 가슴 속에 깊숙하게 숨겨두었을지도 모르는 지병이 옮을까 두려워 술잔 하나 돌리지 못할까.

벗과 함께 희희낙락하며 술자리의 풍류를 즐기던 추억은 사라져가고 있다. 정을 담은 잔을 건네는 권주의 운치를 잃어버린 새로운 술자리 풍습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술병만 든 채 엉거주춤할 뿐이다. 이해타산에 마음 쏟아 득실을 챙기기에 이골이 나서, 삭막해져가는 인심 속에 어리둥절하여 우두커니 버티고 서 있는 속이 빈 허수인가 싶은 심정이다.

예부터 우리 한방에서는 술을 백약의 으뜸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술 마시기를 즐겨하다 보면 과음이 되기 쉽고, 만병은 술로부터 생겨나게 마련이다.

8세기에 아랍인 제버는 발효하던 포도주 정수액을 분리하다가 알콜을 발견하였는데, 오백년 후에 프랑스 몽펠리 대학 교수 빌뇌브가 재발견하면서 만병통치 생명수(아쿠아비데)라고 하였다.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주기에 알맞은 물이다. 가장 훌륭한 건강식이라서 없어서는 안 될 좋은 물이기에 손색이 없는 적절한 명칭이었다고 생각 된다.

미국의 아더폴더 박사는 심장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포도주는 빈혈이나 비만증에 좋고, 맥주는 이뇨제로 이용하고 있어서 담석증 환자에게 먹도록 권하는 것을 보았다.

주석산 등의 유기질과 각종 미네날과 여러 가지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수많은 과일주는 독특한 영양이 함유되어 있어서 건강관리에 유익할 것으로 생각된다.

건강에 영향이 많은 인생사의 아픈 마음을 걷어서 싱그러운 마음으로 바꾸어주는 술이 있어서 새삼 고맙게 여겨진다.

아무리 술이 으뜸가는 약이라고는 하나 인간의 병은 술로부터 일어나고 술로서 병을 키우는 예가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많이 마셔서 환각상태로 되어 방황하는 어리석은 술꾼을 예사로 보아왔다. 과음하면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절제력을 잃는다는데, 실언이나 실수를 저지르기에 알맞은 것이 술이 아니더냐.

남녀노소가 먹어도 좋은 음식이지만 예부터 주도(酒道)가 있었다. 자제력이 미약한 미성년자는 먹지 못하게 하였고, 예를 갖추어서 시음하게 하였다. 절제 없이 마신 술에 취하여 건강을 해치고, 결례를 자주하여 몹쓸 사람으로 낙인되기도 한다.

건강에 좋은 것이라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지만 과하게 마시면 건강이나 인격이 격하되는 해로움이 있으니 득과 실의 두 모습을 가진 음식이고 영약이다. 독이 되고 약이 되는 것의 선택은 마시는 주객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술은 자제하면서 음미해야 하는 음식이라서 탐닉하는 묘미가 있는 기호식품이다. 적당한 음주로 멋진 인간미를 보인다면 얼마나 고귀한 사람으로 느껴지겠는가.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매력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한 잔 술이 생각 날 때면 아름다운 음주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만남을 하고 싶다.

 

‣글 쓴이 백 필 기는 ▴수필, 시, 시조, 평론가▴한국수필 운영이사▴한국시 편집, 심사위원▴해동문학 편집위원▴건국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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