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환경 갖춘 일본 최고의 술동네

허시명의 일본술 기행-‘니이가타’’ 편

 

천혜의 자연환경 갖춘 일본 최고의 술동네
일본 주당들을 매혹시키는 니이가타 현의 청주와 탁주

 

 

니이가타현 주조조합 회관에 전시된 니이가타의 술
술 평론가이며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인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은 최근 일본으로 술 기행을 다녀왔다. 허 교장이 발품을 팔아가며 둘러보고 온 일본의 술문화와 일본 술의 세계를 특집으로 게재한다. 쿠보타, 핫까이산, 키쿠스이, 도부로쿠 등 니이가타 현의 모든 술을 한 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1.니이가타현의 94개 양조장이 빚는 술의 향연

 

니이가타의 술병들일본을 여행하다보면 상품의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상품으로 포장하여 판매하는 감각이 발달하였다. 절이나 신사에 가더라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아니라, 상품 판매대들이 즐비하다. 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돈의 액수와 함께 적혀있고, 부적으로 행운과 안전을 팔고 망자들을 위한 묘지를 판다. 그렇게 상품화되는데에 가장 선봉에 선 물건 중의 하나가 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본 술은 17세기부터 상품화 길을 치달려왔고, 지금까지 맥을 이어와 300년 넘은 양조장들의 도처에 터잡고 있다. 물론 술은 신사와도 손잡고 있다.

이번 술 기행은 니이가타 지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본의 제일의 술 동네는 효고현이다. 고베의 나다가 그 중심에 있고, 백학(白鶴)주조회사가 최고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효고현은 2011년에 일본 청주를 18만3천㎘를 출하하여 단연 1위를 차지하였다. 출하량 2위는 교토부로 10만1천㎘다. 교토의 남쪽인 후시미가 술의 동네로, 한국에 청주를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는 월계관주식회사가 그곳에 있다. 세 번째로 일본 청주를 많이 생산하는 동네가 니이가타로 4만3천㎘를 차지하고 있다. 효고현의 ¹/₄, 교토의 ¹/₂에 못 미치지만, 니이가타는 최고의 술동네라는 수식을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동네다.

왜 그럴까? 니이가타현의 양조시험장을 찾아갔다. 바닷가 언덕을 등지고 자리잡고 있는 니이가타 양조시험장은 일본의 지자체인 현 단위에서 유일한 양조 전문 연구소라고 했다. 1930년에 설립되어, 1957년에는 니이가타를 상징하는 양조미 ‘오백만석’을 농업시험장과 공동으로 개발하였다.

니이가타현의 양조시험장 건물시험장의 연구원에게 니이가타 술이 왜 유명한지 물어보니 여러 가지를 꼽았다. 오백만석, 고시히까리 등의 쌀이 좋다고 한다. 좋은 쌀이 날 수 있는 조건은, 겨우내 내린 눈으로 대지가 마르지 않고, 여름에도 온도 차이가 커서 맛좋은 쌀이 생산된다고 한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물이 좋으니 좋은 술이 나올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거대 시장인 도쿄와 가까워서 다른 현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또한 달지 않는 알싸한 맛인 담려(淡麗)한 맛을 추구하는 양조장들이 많아서 담려한 일본술 맛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성인 1인당 일본술 평균 소비량에서 니이가타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니이가타현이 1인당 14.3ℓ로 전국평균 5.6ℓ를 월등하게 앞서고 있다.

니이가타현의 유명한 청주 브랜드로 쿠보타(久保田), 핫까이산(八海山), 키쿠스이(菊水)가 있다. 그리고 3월이면 ‘사케의 진(陣)’이라는 축제를 통해서, 니이가타현의 94개 양조장이 함께 모여 홍보 열전을 펼친다.

니이가타현의 또 다른 술로 도부로쿠가 있다. 니이가타현은 스스로를 일러 ‘도부로쿠 왕국’이라고 부른다. 도부로쿠는 전통적인 일본 탁주를 지칭한다. 일본은 1899년에 민가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금하면서, 민가의 탁주가 소멸되거나 음성화되었다. 그렇게 존재감을 잃어버렸던 도부로쿠가, 2003년 구조개혁특별구역 제도에 의해서 양성화되었다. 농촌활성화 정책으로 민박집이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농부들에게, 자기가 농사지은 쌀로 도부로쿠를 빚을 수 있게 했다. 전국에 도부로쿠 특구가 123개 (2012년 11월 현재) 지정되어 있는데, 니이가타에 9개가 있고 술 빚는 이들은 17명이 있다고 한다.

 

2. 니이가타의 모든 술이 모여 있는 폰슈칸

폰슈칸 안의 쓰러진 술꾼 인형
니이가타현을 여행한다고 하니, 일본에 있는 지인이 유자와역의 폰슈칸을 추천했다. 그곳엔 니이가타현의 모든 술이 모여 있다고 했다. 유자와역은 신칸센을 타고 들어선 니이가타의 첫 마을이다. 온천과 스키장이 많아서 겨울이면 사람들이 붐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역사의 안에 술 전시 판매장이 있는데, 그곳이 폰슈칸이다.

역사 3층에서 내려 2층으로 내려오니 서점이 있고 관광안내소가 있고, 관광기념품 판매점이 있었다. 그 안쪽으로 폰슈칸이 있었다. 폰슈칸은 니이가타의 술을 중심으로 쌀과 된장과 간장과 누룩 상품들을 함께 연계시켜 놓은 공간이다.

500엔을 내고 니이가타 청주를 5잔 골라마실 수 있는 시음장폰슈칸 자동문이 열리니, 술통 옆에 넘어진 샐러리맨 조형물이 있다. 술통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샐러리맨이 있는데, 아예 술병을 베개삼아 누워버린 샐러리맨도 있었다. “혹시 이게 바로 당신의 모습은 아닌가요?” 라고 묻는 것 같다. 맞은편에는 시음장이 있다. 500엔을 내면 니이가타 양조장의 술 중에서 5잔의 청주를 맛볼 수 있다. 500엔을 내니, 시음잔과 전용동전 5개를 내준다. 회사와 상품이름, 그리고 최근의 인기투표 성적이 붙어있는 술들 중에서 한 잔씩 맛을 보았다. 홀 한쪽에는 소금 안주가 있었다. 소금은 변하지 않는 안주이고, 입안을 닦아주고 술맛을 지워주는 지우개다. 그 소금의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된장도 안주로 찍어먹을 수 있게 이쑤시개가 놓여있다. 그리고 이 모든 소금과 술들을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옆에 마련되어 있었다. 시음은 곧 판매의 홍보로 이어져 있었다.

5잔을 맛보고 나오니 몸이 훈훈해졌다. 폰슈칸에는 니이가타현 술만을 판매하는 역의 술저장고(驛の酒藏)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니이가타에서 나는 95개(최근에 한 개가 줄어, 니이가타 양조장은 94개가 되었다)의 양조장 술을 다 모아놓고 판매한다. 지역의 술을 죄다 모아놓고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우리는 양주와 와인은 잘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곳이 있지만, 우리술만 모아놓고 판매하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사고 파는 것은 명분이 아니라. 실리다. 술이 잘 팔린다면야, 누구라도 모아놓고 팔려할 것이다. 팔리지 않으니 모아놓은 상점이 없고, 상점이 없으니 술을 팔 수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폰슈칸은 선물 코너에서는 술과 술지게미로 만든 과자, 절임음식, 된장, 간장을 팔고 있었다. 술병과 술잔도 팔고, 도시락도 팔고 술 안주들이 될 수 있는 식품들도 팔고 있었다.

폰슈칸에서 인상적인 곳은 코오지카페였다. 번역하면 누룩카페다. 일본은 2012년에 시오코오지(소금누룩), 쇼유코오지(간장누룩) 들이 히트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 코오지(누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발 더 나아가 코오지카페까지 있다니,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우리는 아직 누룩을 술 이외의 다른 식품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화장품이나 미용팩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고, 동물 사료로 활용하고 있지만, 가공식품의 재료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코오지카페의 메뉴를 살펴보니, 감주, 코오지라테, 코오지라테쵸코, 코오지라테말차, 코오지소프트아이스크림 등이 있었다. 과학적인 검증이 바탕이 되었으니, 자유로운 해석도 가능했을 것이다. 코오지카페와 한 공간을 사용하는 곳에 일본청주를 부어 목욕하는 목욕탕이 있었다. 15명 정도가 들어가면 가득찰 정도로 목욕탕은 좁았지만, 술과 목욕을 연계시킨 공간을 마련해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폰슈칸과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 음식점들도 술과 술지게미를 활용한 메뉴를 개발하여 내놓고 있었다. 다른 곳보다 좀더 좋은 가격에 음식을 팔 수 있는 힘도 술과 술지게미라는 새로운 요소의 결합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3.핫까이산(八海山)을 찾아가다

 핫까이산의 술병폰슈칸의 이웃 도시에 있는 핫까이산주조를 찾아갔다. 사전 예약도 없이 주소만 보고 찾아갔다. 양조장 안을 보려면 일본에서는 사전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무작정 찾아가면 열에 아홉은 허탕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양조장이 어떤 마을에,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가? 관광객들을 위해서 어떤 시설을 해 놓았는가?를 보고 싶었다. 굳이 양조장 안을 보지 않아도 좋았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양조장 안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핫까이산주조의 상품은 한국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다. 공항 면세점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익숙한 이름이다. 니이가타에서는 쿠보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브랜드다.

유자역을 출발하여 무이카마치역에 내렸다.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도 역 건물에는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핫까이산을 가고 싶다며 버스편을 물었보았더니, 핫까이산 스키장을 안내해줬다. 양조장을 찾아오는 사람보다는 스키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상원 십자로에 내리라고 했다. 우리는 길의 개수를 따져 사거리라고 하는데, 일본은 길의 모양을 따져 십자로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었다.

버스에 내려 길가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핫까이산을 모른다고 했다. 학생이니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왼편으로 꺾어져 곧장 가라고 했다. 다리를 건너고,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가 길을 가기를 한참, 세 번이나 더 묻고서 핫까이산 회사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아가고자 하는 핫까이산 자료관은 그곳으로부터 한참을 더 갔다. 중간에 자가용에서 내리는 여자에게 길을 물으니, 또 한참을 가라한다. 그렇게 길을 걷는데 자가용 한 대가 내 옆에 와 섰다. 길을 알려주었던 여자였다. 그의 차를 얻어타고 핫까이산 자료관 마당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40분을 족히 걸었다. 차를 얻어 타지 않았다면 한 시간은 걸었을 것이다. 핫카이산은 일반 관광객들이 지나가다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핫까이산 자료관과 제2 제조장은 산자락 밑에 마을과 떨어져서 자리잡고 있었다.

핫까이산 제2 제조장인 고와구라 건물을 보고 감탄이 절로 일었다. 3층 건물의 시멘트 구조물인데, 건물의 상단은 검은 목재로 마감을 했다. 웅장한 양조장 건물이 우주 기지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중하면서도 세련된 건물이었다. 양조장 견학은 불가능했고, 자료관과 판매장을 개방되어 있었다. 자료관엔 술 관련 책이 있고, 소파가 있어서 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양조장에 양조 관련 자료를 모아놓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핫까이산 시음 판매장의 모습양조장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통해서, 양조장 내부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핫까이산주조회사는 1922년 창업한, 일본에서는 그 역사가 길지 않은 양조장이다. 2004년에 제2 고와구라 제조장을 만들었다. 한 층의 면적 5,235㎡, 백미 3톤을 넣을 수 있는 담금 탱크 66대가 있다. 누룩을 제조하는 방이 3개가 있다. 건물은 3층으로 맨 위층에서는 쌀을 씻고, 찌고는 일을 한다. 적을 양을 담금하는 주모실이 있다. 2층은 담금 탱크의 상단이 있어서 원료를 넣고 뚜껑을 닫을 수 있는 곳이다. 1층은 발효탱크가 있고, 압착실과 여과실이 있다. 모든 공정은 3층에서 시작하여 1층에서 끝나게 구성되어 있다. 원료를 신속하게 옮기고, 작업자의 동선이 낭비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쌀을 씻고 찌는 기계는 수작업을 했을 때의 그 정성이 반영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양조장 옆에는 술과 술지게미를 사용하여 만드는 빵집이 있고, 관광객들을 위한 소바집도 있었다. 관광객은 자가용이나 전세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다. 산골에 있으면서도 거대한 우주기지 같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물 좋고 청정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장점을 잘 살린 덕분일 것이다. 좋은 술은 좋은 물이 있는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4.도부로쿠 특구에서 도부로쿠 빚기

니이가타 산골마을, 도부로쿠 특구의 한 민가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이틀밤을 자면서 도부로쿠 빚기 체험을 했다. 민가의 이층 다다미방에는 온풍기가 하나 달려있지만, 3면 벽에 나있는 창문에서 들어오는 외풍을 막지 못했다. 실내온도가 11도였다. 소설『설국』의 무대가 된 니이가타답게, 눈이 하염없이 내려 솜이불처럼 집을 덮으려 했다. 옆집은 비어있는지 2층 창문까지 눈이 쌓여있었다. 일본 집들이 이층인 것을, 지붕선이 가파른 것을 이제야 알 듯했다. 한국처럼 단층 팔작지붕이면 아마도 눈을 이겨내지 못하고 집이 주저앉았을 것이다. 지붕의 면적을 좁혀야 하고, 눈에 집이 묻히지 않기 위해 키를 높여야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1층 지붕을 뚫고 망루 같은 2층을 올려 살았던가보다.

도부로쿠을 빚기 위해 고두밥을 찌고 있다하룻밤을 자고 나서 주인 아저씨를 따라, 집에서 300미터쯤 떨어진 도부로쿠 제조장을 찾아갔다. 주인 아저씨 사토상은 일본에서 도부로쿠 제조 면허를 맨 처음으로 지정받은 사람이다. 2003년 도부로쿠 특구 지정허가가 나자, 그 다음해인 2004년 2월에 처음으로 면허를 땄다. 그가 사는 마을 니이가타현의 조에쯔시에서 40명쯤 되는 농부들이 니이가타현과 한 마음이 되어 도부로쿠 면허를 내달라고 정부에 청원했다. 한번 거절되고, 이듬해 법령이 통과되어 특구지정을 받고 제조 면허도 받을 수 있었는데, 40명 중에서 3명만이 면허를 딸 수 있었다. 그냥 술을 빚어서는 안 되고, 민박이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농부에 한해서 자신이 농사지은 쌀로 술을 빚을 수 있어야 면허가 나온다고 했다.

사토상은 도부로쿠 1호로 지정된 덕분에 총리대신인 수상을 만나 도부로쿠도 건네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여기저기 인터뷰도 했다. 평범하디 평범한 산골마을에 외국인이 찾아올 수 있는 것도 도부로쿠 때문이었다.

도부로쿠 제조장의 이름은 코시노하쿠호오이다. 지역 이름과 산봉우리 이름을 조합한 것이다. 알코올 도수 14.8도와 7도 두 종류를 낸다. 도수 높은 술은 칼칼한 맛이 돌고, 도수 낮은 술은 단맛이 주도한다. 사토상과 그의 아내가 함께 작업한다. 아내가 쌀을 6kg 가져와 고두밥을 쪘다. 그러면 그는 용기를 소독하고 술 빚기 준비를 한다. 쌀을 불리고 물기를 빼고 고두밥을 찌는 것까지 아내의 몫이다. 그 다음부터 발효통을 씻고, 물을 채우고, 코오지 7kg을 넣고, 효모를 넣어 술을 빚는 것은 그의 몫이다.

도부로쿠를 빚고 용량을 측정하고 있다사토상의 제조장은 예전에 소학교 급식소로 쓰던 공간이다. 아이들이 다 자라버려서 소학교가 문을 닫았다. 이제는 그 소학교를 다녔던 소년들이 노인이 되어 술을 빚는다. 프로판가스로 물을 데워 60리터짜리 술통을 소독하고, 면포를 소독하여 고두밥을 찌고 술밥을 섞는다. 도부로쿠 빚는 법은 아주 간단 간결하다. 약식으로 청주를 빚는 것 같다. 주모도 따로 만들지 않고, 홑 담금하는 단양주다. 누룩은 청주제조장에서 사서 쓰거나, 누룩 회사에서 사서 쓴다. 누룩값이 제법 비싸 1kg에 900엔이란다. 가루 효모를 사용하고, 젖산으로 산도를 맞춘다. 위생을 철저히 지켜 술밥에 손 한번 담그지 않고 술을 완성시킨다. 온도는 15도를 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또 이를 정확히 노트에 명기한다. 그가 술을 빚는 지 9년째가 되었는데, 이번에 나와 함께 빚은 술이 255번째였다.

도부로쿠 제조장, 참 작다. 시골 사람들이 해야 할 일 하나를 더해주고, 폐쇄되었던 소학교 급식실에 온기를 돌게 하고, 농가 민박 식탁 메뉴에 특별한 음료 하나가 더 오르게 하는 것이 도부로쿠의 역할이었다. 3백년 되거나, 우주기지처럼 생긴 양조장도 있지만, 집에서 된장 담그듯이 발효 음식을 만들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내놓는 술도 일본에는 있었다. 그게 도부로쿠였다.

 

 

글·사진: 허시명

술 평론가이자 한국막걸리학교 교장,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중앙대학교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했고, 일본주류총합연구소에서 청주제조자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샘이깊은물』 기자를 거쳐,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 품평회 심사위원, 국세청 주류품질인증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막걸리, 넌 누구냐?』,『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풍경이 있는 우리술 기행』,『조선문인기행』등이 있다. 현재 명지대 산업대학원, 순천향대 대학원, 배화여대, 서울대학교 최고농업정책과정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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