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영감’들 스스로 설자리 만들어야

 

김원하의 취중진담

 

‘풋영감’들 스스로 설자리 만들어야

 

 

나는 ‘풋’이란 말을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풋’은 접두사로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의 뜻과 ‘미숙한’, ‘깊지 않은’의 뜻을 더하기도 한다.

‘풋사과’니 ‘풋고추’ 같은 말에서 느끼는 풋은 어딘지 싱싱할 것 같아서 좋다. 처음 술을 시작하는 것을 일컬어 ‘풋술’이라하고 한다. 사회초년병을 ‘풋내기’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시형 박사(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가 <시든 카네이션>이란 글에서 “요즈음 우리 연배의 ‘풋영감’들이 모이면 이런 타령이 단연 화두다. 며느리가 괘씸하다는 불평도 더러는 있다.”면서 ‘풋영감’이란 말을 사용했다.

10여 년 전 글이니 아마 70줄에 있는 분들을 지칭했을 듯싶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풋영감’이란 말은 우리사회에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필자는 이 ‘풋영감!’ 이란 말을 처음 접하고 나서 이렇게 멋있는 말이 있다니 이 박사 표현에 감탄했었다. 이 박사는 그 후 여러 책에서 ‘풋영감’이란 말을 사용해 오고 있다.

‘풋영감’이란 말은 마치 땀에 후줄 하게 풀발이 죽은 삼베옷을 세탁해서 풀을 잘 먹여 달인 삼베옷을 입은 느낌이다.

영감(令監)은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서 부를 때 또는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그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때,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남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이다.

때가 때인 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을 영감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다. 남편의 호칭어로 장년층이나 노년층에서 가끔 ‘영감’이란 호칭을 사용하지만 듣는 ‘영감’이 ‘영감’소리가 싫어서 사용하는 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요즘 ‘영감’이란 말은 늙은이, 즉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쓴다.

지공도사가 돼도 노인 측에 껴주지 않는다. 하물며 이제 막 환갑을 넘긴 60대 초반 사람들은 어느 쪽에도 끼기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어정쩡한 연령층을 덜 성숙한 노인이란 뜻에서 ‘풋영감’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롯, 나이 들어 퇴직은 했지만 마음만은 청춘이요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경력을 지닌 ‘풋영감’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맡기거나 찾아보는 일이 급선무로 대두되고 있다.

일자리라고 해서 꼭 금전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보수가 적고 많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데도 매일 놀고먹으면 건강에도 나쁘다는 것은 상식이다. 건강이 나빠지면 건강보험료도 그만큼 축난다.

일본의 경우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톨비를 받는 사람들은 거의가 퇴직자로 이루지고 있다. 몇 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우리도 이런 단순한 일은 이른바 ‘풋영감’들에게 맡기고, 건강이 넘치는 젊은이들은 힘이 드는 일자리를 맡기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김현 시에 <참꽃>이란 시가 있다.

눈이 아프도록 피었다/ 때맞게 시들거나/ 때가 되면/ 몸빛 내릴 줄 아는/ 꽃이 꽃이다/ 새로 솟는 꽃눈 닮으려/ 눈주름 펴가며/ 팽팽한 욕망 채우지 않는/ 꽃이 참 꽃이다.

참꽃은 진달래다. ‘풋영감’들이 결코 젊은이들의 공간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을 보조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지혜를 풀어놓으려는 것이다.

일부 젊은 층에서는 “‘늙은 남자 집단’이 점점 ‘젊은 남자 집단’처럼 변하고 있다”면서 “조용필의 ‘바운스’ 열풍이 그리 반갑지 않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보기엔 그들의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보는 모양이다.

결코 ‘풋영감’들은 당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고 당신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려는 것이다.

이제 ‘풋영감’들은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사회에 기부할 때다. 하다못해 버르장머리가 없는 젊은이가 있으면 겁내지 말고 타일러서 올바르게 인도하자. 때에 따라서는 망신을 당해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풋영감’들의 설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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