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정책과 정책이야기(37)
주류정책의 민주화와 산업발전을 위해
전제와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完)
조성기(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한국할랄산업연구원, 이사, 연구센터장
자유화와 규제완화의 추진, 소통 없는 공감대
2008년 이후에는 주류산업에 대해 자유경쟁 방식의 진입자유화 노력이 더 추가되었다. 각종 규제완화가 여러 분야에 대해 계속 추진되었다. 이와 더불어 전통주 제조와 유통분야에 대한 규제완화에 대해 다양한 동의가 이루어지면서 더 추진되었다. 규제완화가 전통주 생산비용에 도움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주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는 되지 못했던 기억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산업정책의 보급을 목표로 추진하면서 주류산업 분야에 까지도 규제완화가 적극 확대하였던 것이다.
2010년 이후가 되면서 주류정책은 주세징수 이외에 전통주 진흥, 위생안전, 공병환경관리 업무 등으로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에 걸맞고 필요한 관계법들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종전과 달리 국세청의 업무가 배분이 주장되었고, 수차례 논란 후 통과 되었다. 외국에서는 좀처럼 발생하기 어려운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급격히 발생하였다. 주류산업의 관련 업무분장이 식약처(주류안전관리 업무), 농식품부(전통주 진흥업무), 국세청(주류면허와 주세징수 업무) 등으로 3분된 것이었다. 획기적인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 군정기, 정부수립 후 경제성장기에 그야말로 ‘강한 규제’를 주류정책의 기조로 자연스럽게 선택해 왔다. 알고 보면 ‘논쟁과 합의가 필요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또한 외부에서 다가온 세계화의 분위기에 편입되면서 ‘규제’를 제치고 ‘산업진흥’의 중요성과 그를 위한 ‘규제완화’가 강조되었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산업정책 기조의 채택이 큰 몫을 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주류산업 정책의 기조를 두고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류정책의 방향성 논의’를 위해 한판 승부를 건 흔적과 경험은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가 자초한 비민주적 상황이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정책방향을 시류에 맞춰 큰 불편 없이 바꾸어 온 것으로 관찰된다. 정부부처 마다 방향성이 다르고, 이견이 생겨도 소위「국가차원의 조율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부처 간의 정책조율도 ‘진정한 조율’은 아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논의하는 시늉을 낸 샘이었다. 회의를 하더라도 치열한 논쟁이 없고 한 쪽의 생각대로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산업계도 시민차원의 반대나 정부의 권위에 대한 외침에 익숙치 않았고 그저 순응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정책의 역사는 대체로 그랬다.
2020년대가 오면서 주류와 주류산업관련, 행정업무의 다양성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특히 공정경쟁 분야는 비용편익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세무조사 인력 이외의 공공 조사인력이 충원되어야 할 분야다. 영세업체를 괴롭히는 불공정 거래행위가 주류제조와 유통분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류산업관련 정책과 관련 행정업무는 기획재정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농식품부, 식약처,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환경부, 법무부, 경찰청뿐만 아니다. 더 많은 기구들과 관련성이 늘고 있다.
이 때 합의가 없는 각개전투식 행정은 결국 산업의 진흥이 아니라 업계에 애로를 낳게 된다. 향후에는 중소기업청, 노동부, 교육부, 국민안전처 등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산업과 정책의 불확실성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관계법들도 마찬가지다. 주세법, 공정거래법, 자원절약법, 식품위생법, 국민건강증진법, 정신보건법, 산업안전보건법, 청소년보호법, 중소기업법, 학교보건법, 아동복지법, 도로교통법, 수상레저안전법, 철도안전법,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낚시어선업법 등이 술과 관련된다. 한 번도 주류산업과 정책 관련법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주류관련 법들이 상당히 많다. 다중적 위험사회가 오고 있고 어느 누가 깊은 생각 없이 정책을 추진하면 문제는 아주 심각해 질 수 있다.
합의에 의한 주류정책 방향설정은 이제라도 해야 할 일
앞에서 다각적인 검토를 했다. 이제 마무리 할 단계다.
주류산업과 정책은 지난 7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역사를 공유하고 차분하게 검토하고 다양한 부처의 역할과 관련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주류 정책의 골격을 잡는 일을 이제라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
부처 간 정책논의는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를 조직이든 네트워크이든 현실에 맞도록 세우고 한자리에 앉아 시도하자는 것이다. 특정 부처가 일방적으로 규제 정책을 건드리는 것도 많은 문제를 잉태할 수 있다. 정부에서 그 일을 늦추면 민간에서라도 시작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서 정부와 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 내부가 바쁘면 정부 밖에서라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컨트롤 타워도 전처럼 반드시 새 조직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합의된 방향성에 발맞춰 ‘앞으로’ 나아가야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야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래야 주류정책에 관한 한 실제 선진국이 될 것이다. 주류정책은 누가 어떻게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주류소비자인 시민, 업계, 정부부처 들 모두가 함께 소통하고 나서야 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주류산업 정책에 오래전부터 적신호가 켜져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도 그대로 두었고 몰랐더라도 취해서 잊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문화 속에 주취의 사회적 생물학적 유전자가 있는 듯하다.
최근 정부의 주류산업 정책은 수제맥주 활성화를 위한 만찬주 활용, 시설기준 완화, 유통채널 확대, 주세 경감, 스마트오더와 자판기 도입, 맥주보이 허용 등 규제완화와 특정 주류의 진흥 등 눈앞에 보이는 문제 위주로 대응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본을 건드리는 논의는 없었다.
정부가 ‘알코올 국민건강, 전통주 보전, 농산물의 사용촉진, 유통질서 확립, 주류 관련 폐기물의 환경관리 등’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깊이 되짚어 봐야 할 일이다. 그 중 “정책의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합의를 한 적이 있었던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관계 전문가들도 그런 과제에 대해 ‘매우 불충분’하였던 우리의 정책현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주류산업의 발전을 위해 근본적인 검토가 없었고 발전도 보이지 않았다고들 말한다. 쏜살같이 규제완화가 추진되어 민첩하게 변화되는 듯하지만 “중핵을 논의하지 않는 변화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한 절반의 종량세제화 정책의 경우도 어떤 전제를 깔고 결정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종량세제화의 본래 취지대로 정책의 중핵을 ‘국민건강’에 두고 그에 맞춰 변화를 했다면 박수를 보낼 이가 더 많았을 것이다. 앞뒤가 맞기 때문이다. 종량세제 전환이 “해외맥주 대비 국내맥주의 역차별 해소나 맥주의 품질 제고 등을 겨냥한 것이 전부”였다면 가슴 답답해 할 이들이 많다. 당장의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결되는 듯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전후 전제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해결은 또 다른 문제를 안게 된다. 정부가 주류관리에 꼭 필요한 정책적 전제라는 맥락을 놓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맥락이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들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 정부에 주류정책이 있는 건가?”하고 말이다.
주세가 현행 종가세제에서 종량세제로 완전히 바뀌면 저도주인 맥주의 수요가 늘고 탁주, 전통소주, 희석식소주 등의 수요가 줄 가능성이 크다. 해외 고급 주류의 수입 촉진도 부추겨질 것이다. 수제맥주에게도 영세 전통주업체들에게도 시간이 가면서 그다지 도움이 될 일이 아닐 수 있다. 정부가 주류의 품질제고나 청년고용 창출을 위해 수제맥주 활성화를 시도한다고 하자. 수제맥주 시장은 전체 주류시장의 0.05%내외일 뿐이다. 고용창출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역시 부분적으로 당장에 이로운 일이 전체와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정부 주류산업 정책의 철학과 방향성 부재, 정책의 형평성과 정부의 책임성 문제를 낳는 정책추진방식을 신중하게 재검토하자. 그 일을 합의와 소통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술은 시장 활성화를 통한 성장 중시 진흥정책을 펼 때 알코올 문제가 더 추가되는 묘한 물질이다. 당초에 술 산업의 진흥을 통해 가치를 늘리고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구상 자체가 전근대적인 발상일 것이다. 술은 이미 성숙산업이다. “진흥의 대상이 아니라 보전의 대상이라는 측면이 분명하지 않은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일이다. 술은 국민의 애환을 달래기 데 필요한 물질이고, 주세는 국정운영에서 매우 소중하다. 내국세 비중이 1.5%이하로 떨어졌지만 주세는 3조원이 넘는다. 지역발전을 위해 중요한 자산이다. ‘정책이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를 범하지 말자. 정부는 술의 ‘본질적 문제’나 정책변화가 낳을 ‘상대적 폐해 문제’도 잘 살피고 추진할 일이다.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잘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업발전과 국민건강, 환경개선에 고루 도움이 되도록 판을 짜야한다. 무엇보다도 정책의 전제를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잘 청취하자. 전통적 가치보전도 주류산업정책에서 꼭 필요한 과제다. 그래야 세계화와 인공지능의 기술정국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와 소통이 정책의 민주화와 높은 생산성을 낳게 할 것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