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배우려면 욕심을 버려야

김준철의 와인교실

 

 

와인을 배우려면 욕심을 버려야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와인은 수많은 종류의 포도를 수많은 산지에서 재배하면서, 해마다 다른 날씨에서 자란 포도를 수확하여 수많은 메이커가 제 나름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니까 세계 모든 와인을 다 배우고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와인이란 어떤 것인지 그 기본 지식을 익히고, 내가 좋아하는 맛인지 아닌지, 또 병을 보고 그 와인이 고급인지 아닌지 정도만 알면 충분하다. 전 세계 와인 전부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본 원리를 알고 중요한 와인산지의 특성만 알면 그 다음에는 혼자서도 하나씩 접근하면서 자세한 공부를 할 수 있다.

영동에서 생산되고 있는 와인들. 우리나라에서는 와이너리가 가장 많은 고장이다.

와인 맛을 알아맞힌다?

 

와인의 맛을 전부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어떤 와인 감정가는 와인의 맛을 한번보고 어디의 무슨 와인 몇 년도 산이라고 정확하게 알아맞힌다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떻게 그 많은 와인을 다 맛 볼 수 있을까? 하루에 10 종류씩 맛본다 해도 일 년이면 3,650 종이고, 100 종류씩 맛본다 해도 36,500 종밖에 안 된다. 프랑스 보르도만 해도 12,000 개의 메이커가 있으며, 각 메이커마다 5-6종은 나오니까, 그 해 생산되는 보르도 와인의 맛도 다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몇 년도 산까지 알아맞힌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그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와인감정 전문가라고 해도 대개 자기 분야가 있다. 보통 한정된 지방에서 활동하며, 취급하는 타입이 있기 마련이다. 와인 맛을 감정하는 이유는 모든 와인의 품종, 지역, 연도를 구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가격에 비해서 맛있는 와인을 골라내는 일이다. 우리는 어느 것이 맛있는지 찾아내고, 좀 더 숙성이 된 다음에 마시면 더 좋겠다든가, 너무 오래되어 맛이 전성기를 지났다는 정도를 구분하면 된다. 전문적인 와인 감정가가 될 사람이라면 몰라도, 와인의 맛을 즐기는 사람은 평소 즐겨 마시는 와인이 있기 마련이며, 거기서 즐거움을 찾으면서 더 좋은지 나쁜지는 자신의 판단을 기초로 평가하면 된다.

 

기본 원리를 알아야

 

와인에 관련된 어떤 이론이나 법칙에 대해서 왜 그런지 그 기본 원리를 알려고 해야 한다. 화이트와인은 차게 마신다는데 왜 그럴까? 레드와인은 육류와 잘 어울린다는데 왜 그럴까? 호기심이 없으면 지식이 쌓이지 않는다. 반드시 그 원리를 캐물어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잘못된 와인상식이 상당히 많이 퍼져 있는데, 이것은 누군가 어떤 이론을 이야기하면 이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그 원리는 묻지 않고 누군가 이야기했으니 맞으려니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와인을 배우려면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주저하지 말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행동해야 한다. 또 아무리 맛이 좋다고 추천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과감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맛이 좋지 않다고 느끼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많이 마셔봐야

 

다음은 와인을 많이 마셔보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한 와인전문가를 초청하여 우리나라 김치 심사위원으로 앉혀 놓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와인 맛을 모르는 이유는 많이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익숙한 식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는 경제적인 형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처음에는 비싼 와인을 마셔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없다. 초보운전 주제에 고급 외제차를 운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먼저 소형차에 익숙해진 다음에 좋은 차를 몰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듯이, 와인도 값싼 와인의 맛에 익숙해져야 고급 와인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어떤 와인이든 그 와인의 맛에 익숙해져야 그 가치를 따질 수 있다. 당장 한 병에 만원이 안 되는 와인부터 구입해서 식탁에 갖다 놓고 식사 때 한두 잔 마셔봐야 한다. 이런 와인을 기준 와인으로 정해놓고, 밖에서 와인을 마실 기회가 생기면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더 맛있는지 없는지 살피고, 나중에는 단맛이나 신맛도 비교해 보고, 더 익숙해지면 향도 비교해 보면서 평가하는 것이 와인 맛을 아는 지름길이 된다. 이렇게 와인과 친해져야 와인을 빨리 알 수 있다.

 

알아야 마시는 술

 

와인은 알아야 마시고, 알아야 팔 수 있다. 물론 마시는데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로 그냥 마신다는 것은 제목을 모르고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이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와인을 단시간에 배울 수는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와인을 단시간에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와인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몸소 깨달았을 것이다. 포도의 종류, 재배방법, 발효, 숙성, 유통, 서비스, 테이스팅 등 그 분야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각 지역에 따라서 역사, 문화, 지리, 기후, 토양, 메이커, 관련 규정 등이 다르니 와인을 공부한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와인을 많이 알면 알수록 오히려 “내가 아는 것이 이렇게 좁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정상이다.

 

왕도가 없다

 

“와인 라벨을 쉽게 알 수는 없을까?” 이렇게 묻는 사람도 많다. 수많은 책들이 와인 라벨 읽는 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 때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라벨이 바뀌면 다시 난감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와인 라벨을 이해하는 데는 요령이 없다는 사실 또한 와인을 공부해 본 사람이면 인정할 것이다.

즉, 와인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며, 평생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마시는 것이 와인이라고 생각해야 옳다. 흔히들 라벨에는 와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훑어봐도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면, 필요한 정보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Chablis’라는 와인 라벨을 보면, 품종이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와인을 아는 사람은 ‘Chablis’라는 글씨만 보고 이 와인의 품종은 샤르도네라고 알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생산지명을 알아야 하며, 그것도 세밀한 지명까지, 그냥 ‘보르도’나 ‘알자스’ 정도로는 안 된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적어도 면 단위, 마을 단위의 명칭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자연히 지리에 대한 지식이 늘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중에서 유명한 곳에서는 로마시대부터 포도를 재배했다거나, 나폴레옹이 좋아했던 와인이라든가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곳도 많아서, 역사 공부를 안 할 수도 없다. 또, 무슨 포도를 어떻게 재배하며, 그 지역의 기후 특성이 어쩌고, 그 곳의 토질과 지형이 어떻다는 설명을 이해하려면, 포도재배, 양조에 대한 지식은 물론, 기상학, 지질학 등 지식도 있어야 한다. 생각에 따라, 너무 복잡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와인을 많이 알아 갈수록 여러 가지 상식이 늘어가는 재미도 있다.

 

한손에 잡히지 않는 와인

 

매너 위주의 짧은 교육을 받고, 와인을 아는 척 하면서, 와인 매너를 모르면 국제적으로 촌놈 취급을 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퍼뜨린다든지, 기본지식이 없는 채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여행하면서 화려한 와인을 마셔보았다는 이야기로 초보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와인은 한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남다른 호기심이나 관심을 가지고 탐험하는 자세로 하나 둘 알아가면서 그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와인을 공부할 수 없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면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것이 원칙이다. 혼자서도 와인공부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친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면 훨씬 시간과 노력이 단축될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 어디를 가든지 와인스쿨이 있는 것이다.

 

김준철와인스쿨(원장)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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