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가 마뜩찮은 이유

‘질주’가 마뜩찮은 이유

임재철 칼럼니스트

 

얼마 전 혈압이 210까지 올라간 상태에서도 사진기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후배에게 죽음과 겨루는 ‘질주’를 하는 거냐며 조금 위험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즉 더 악화되면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죽음의 공포를 삶의 의미로 승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이래저래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질주한다.

 

물론 살다 보면 병마 속에서도 질주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목표가 명확해지면, 그리고 그 목표에 대해 내면의 확신이 서면, 최선을 다해 질주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질주’는 원초적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초원을 달리는 인간은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자연을 극복하고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질주 본능을 가진 사람들을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다. 야구선수는 1루를 향해 질주하고 카레이서나 마라톤 선수도 완주를 위해 전력으로 질주한다. 멋진 질주다.

 

하지만 목표도 없고, 목표가 있어도 그 목표에 자신이 제대로 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은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쉽게 질주한다. 말하자면 군더더기나 거칠 것 없는 좋은 질주가 있는 반면 별 생각 없이 질주해 버리거나, 애초부터 아무 생각도 없이 덮어 놓고 질주하곤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신검부 정권의 탄생과 질주를 목격하고 있다. 즉 정권 자신에 대해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질주만 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하려다 ‘되치기’당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 과거 신군부 정권에 비견되는 신검부 정권이라고 할 만하다. 이른바 누구나 아는 윤석열식 ‘검찰공화국’ 인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하 전·현직 검사 출신 측근들을 검찰은 물론 장·차관급 인사와 대통령실 요직에 고루 포진시켰다. 분야는 전방위였고, 속도는 전광석화였다. “좋아 빠르게 가!”라던 대선 캠페인 당시 일성 그대로였다.

신군부 정권에서는 군인이 실력자였는데, 신검부 정권에서는 검사가 실력자다. 예컨대 법무부 장관이 인사검증과 정보 채널까지 모두 장악했다. 결국 국가권력의 요체는 형벌권과 조세권이다. 정부는 얼마 전 ‘느닷없이’ 연 13조1000억원 규모의 감세를 발표했다. 감세액 중 절반 정도인 6조원이 대기업과 집부자 감세이다. 정부는 영국과 같은 규모의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총리 유력 주자인 리즈 트러스 외교장관은 연 300억 파운드의 감세를 주장해 보수당 내에서도 큰 역풍을 받았다. 300억파운드면 우리 돈으로 47조2060억 원 정도이다. 영국의 국내총생산이 3조3760억달러이고, 한국은 1조8000억달러이다. 조세부담률에서 영국은 30%, 한국은 20% 내외이다. 이런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의 윤 정부는 지금 영국과 같은 규모로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하겠다. 헌데 선거 때 언급 않던 대규모 감세는 조세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나아가 이는 대기업과 부자에게 한정된 포퓰리즘이다. 다시 말해서 형벌권 독점과 조세권 남용도 개의치 않는 신검부 정권의 질주를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감세를 공약으로 내걸어도 집권 뒤에는 그 공약을 최소화하려 한다. 하지만 대선 때 언급하지 않았던 대규모 감세를, 경기침체로 재정 수요가 커질 상황에서 불쑥 내미는 것은 무슨 초식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윤 정부는 지금 정체성 혼란에 빠진 것 같다. 즉 자신이 검사인지 정치인인지, 검찰총장인지 대통령인지 혼동하는 것 같다. 검사 옷을 너무 오래 입으면 자신을 절대자로 착각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갑질이 몸에 배고,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며,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고 힘자랑을 즐긴다는 점이다. 지금 윤 정부의 모습이 딱 그렇다. 이 또한 그냥 질주다.

 

그런 질주로 말미암아 예견된 참사가 현실화됐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 부정 평가가 20%대에 머물고 있다. 일반적으로 20% 지지율은 레임덕 수준으로 평가된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피로감을 넘어 절망감으로 바뀐 것이다. 비극은 대통령의 한없이 가볍거나 공허한 말과 글 그리고 그 ‘품위 없음’ 등 이미 예견돼 왔음에도 끝없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 폭락의 원인 중 하나로 주요하게 꼽히는 것이 바로 출근길 문답이었다. 건들건들한 자세 등은 개인의 습관이라 할 수 있지만, 하루가 멀다고 “전 정권 탓”을 일삼았고,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는 어록도 탄생했다. 주요 현안을 ‘패싱’하기 일쑤였으며, 그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중단하고 국민을 우습게보고 권력에 취한 태도로 일관했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이런 실언에 일찍이 익숙해져 있다. “주 120시간 노동”, “저 출산 원인은 페미니즘의 정치적 악용”, “전두환,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 등등 대선 후보 시절 그의 입은 논란 제조기라 불릴 만했다. 그리고 그 발언들이 집권 직후 고스란히 정책에 반영되는 중이다. 그래서 실제로 대통령의 말과 글에서 정부의 국정철학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말과 인사로, 집권당은 책임정치로, 정부는 정책과 예산으로 세상을 움직인다. 그 힘이 뚝 떨어졌다. 메신저로서의 믿음을 잃으니 말도 협치도 국정도 바로 서지 못한다. 이리 빨리 민심 위에 붕 떠버린 ‘부평초 정권’은 없었다.

그리고 윤 정부의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사다. 더불어 경제다. 즉 현재 최악의 위기에 봉착한 한국경제 살리기를 하지 않고 있다. 오늘의 고물가·코로나·경제위기도 약자부터 잡아먹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반대다. 전 정부 탓, 여소야대 탓, 어느새 대통령 입에선 정책 홍보가 안 된 탓까지 늘었다. 불통과 오만 그리고 무능의 다른 이름인 리더십 부재는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주류 언론이 꼽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 요인이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속도전’으로 경찰국 만들기를 했고, 국내외 경제위기와 금리 인상, 물가 급상승으로 서민들은 민생고에 허덕이는 와중인데도 대통령 입에선 그 어떤 유감 표명도 나온 적이 없다. 대통령이 요지부동이니 특단의 조치가 나올 리도 요원해 보인다.

지지율 10%가 나와도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것인가. 잘하는데, 잘할 건데 언론과 국민이 몰라준다는 걸까. 슬프지만 각각의 민생은 그러할지라도 사회적 합의나 국회의 여야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질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혹시라도 ‘정권의 추진력’이라고 착각한다면 어찌 할까.

 

그에 따른 답은 한마디로 대단히 곤란하다일 것이다. 왜냐하면 취임 4개월도 안 돼 우호적인 언론들조차 실언 및 불통의 폭주를 지적하고 나섰다. 좋은 말로 그냥 질주를 지적한 셈이다. 그것은 오롯이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스스로 불러온 난맥상을 말한다. 한편 향후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 경우 윤석열 정권이 검찰 권력 및 정부 요직을 차지한 검찰 출신 인사들을 앞세워 국정 운영의 난맥을 공안 정국, 사정 정국으로 타개하려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우려를 언론들은 이미 표명 중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고 나라 경영도 마찬가지다. 음주도 폭주는 안 된다. 질주하는 중간에라도 멈추어 서서 스스로 생각해 본다면 잘못된 질주의 결과를 피할 수 있다. 최고 권력자가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마이웨이 질주를 고집하면 정권 신뢰도에 쩍쩍 금이 간다. 지금 국민은 고물가와 고금리에 시달리고 있으며 무역수지 적자는 4개월 연속 적자다. 마침 지지율도 바닥이다. 국정의 목표와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정치적으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을 얕보거나 모욕하면서 완장질 하듯 질주만 하다가는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큰 민심의 도도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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