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음주는 어떤 의미인가

세속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음주는 어떤 의미인가

 

박정근(문학박사, 대진대 교수 역임, 김수영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작가)

 

 

박정근 교수

왜 술을 마시는가? 우문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일로 며칠 계속 술을 마실 때마다 아내의 따가운 잔소리를 면할 수 없다. 어쩌면 매일 등산을 가는 사람들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하지만 친구들과 만나면 격의 없이 술을 한잔 나누면 이야기가 술술 풀리지 않는가. 인간관계에서 껄끄러운 개개인의 심리적 장애물을 제거하고 죽마고우의 순수한 관계로 전이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술일 것이다.

 

도연명이 술을 마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신적 자유였다. 사실 인간은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살아있는 매순간마다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더더욱 경쟁으로 가득한 세속의 삶은 모든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조장한다. 놀이터에서 편하게 놀이를 해야 할 아이들마저 순위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학원을 전전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보다 개인적 평판에 매달리는 현대인들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도연명은 당대의 중국인들이 너무 개인적 감정에 빠져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세계는 개인의 실존적 인식이 절실하지만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지켜야 할 도리가 있어야 공존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존재해야 상극적 관계에서 상생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연명이 살았던 중국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았다. 동진시대는 군벌들이 지배했고 반란이 십여 차례나 발발했던 혼란의 시대였던 것이다.

도연명은 이런 시대적 암울함을 시 속에 재현했다. 그는 시대적 혼란이 가져오는 근심을 술을 마심으로써 초탈하고자 하였다.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관직에 나갔지만 세상의 속물성을 견딜 수 없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돌아와 이웃들과 술을 나누며 마음의 평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는 <음주(飮酒)>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시인은 술을 마시고 취함으로써 세속적 욕망을 극복하고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道喪向千載, 도가 상실된 지 천년이나 흘러

人人惜其情.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감정에만 집착하네

有酒不肯飮, 술은 있으나 어느 누구도 마시려고 하지 않고

但顧世間名. 그저 세속의 명성만을 찾을 뿐이라

 

도연명은 고향 근처에 위치한 옥산의 요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노을 위로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너무 웅장하여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광대한 천지의 생성과정에서 언제 생겼는지 그 역사를 알 수 없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장관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신비롭게 변화를 거듭한다. 도연명은 멀리 산에서 펼쳐지고 있는 멋진 산의 정경을 바라보다 시선을 그가 거주하고 있는 자신의 집을 살펴본다. 비록 농촌에 위치한 누옥이지만 술을 거하고 마시고 있으니 즐겁기 짝이 없다. 그는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누옥에서 술을 마시는 행복감을 <산해경을 읽으며 讀山海經>에서 노래한다.

 

玉臺凌霞秀, 옥산 요대가 노을 위로 우뚝 솟아있으니

王母怡妙顔. 서왕모는 묘한 자태를 보이며 얼굴에 화색이 도네

天地共俱生, 천지와 함께 생겼으니

不知幾何年. 몇 년이나 되었는지 알 수 없네

靈化無窮已, 신령한 변화를 끝없이 보여주지만

館宇非一山. 내가 사는 누옥도 산과 못지않도다.

高酣發新謠, 즐겁게 술을 마시고 새 노래 부르니

寧效俗中言. 어떻게 속된 말로 모방을 하리요

 

이 시는 음주의 즐거움이 어떤 세상의 쾌락을 능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역시 술을 즐겁게 마셔야 최고의 행복감에 다다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종종 술을 마시면서 거칠게 다투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자는 술을 잘못 배웠으며 술을 마실 자격이 없다. 역시 술이란 즐거움과 행복감을 생산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며 어떤 세속적 목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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