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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한 약속 지켜야 하나

김원하의 취중진담

 

술자리에서 한 약속 지켜야 하나

 

 

“여보게 친구, 언제 술 살 텐가. 지난 번 술자리에서 다음엔 내가 크게 한턱 쏠게 하지 않았는가?”

그가 한 약속을 철썩 같이 믿는 K군은 아직까지 그 약속을 기다리는 중이라나 뭐라나.

아마 K군은 글줄께나 읽어서 취중진담(醉中眞談)이란 말을 굳게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술 취하고 한 말을 진담이라고 맹신하는 사람도 많지만 상당수는 뻥치는 것이란 것을 아는 사람도 많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현 국민의 힘 국회의원)은 2019년 말 어느 매체와 인터뷰에서 “김정일은 생전에 고위 간부들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양주 등 독한 술을 마시는 심야 술 파티를 자주 벌였다.”고 했다. 아마 김정일도 ‘취중진담’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간부들이 술 취해서 횡설수설하면서 반동을 획책하거나 자신을 비방하는 속내를 떠 보기 위해 술 파티를 열었을 것이다.

술 취하고 한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아도 가슴속에 담이 놓았던 비밀은 털어놓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취중진담’이 나올까봐 가슴 졸였던 국가적 사건도 있었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아니지만 풍문(風聞)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1972년 7월 4일 남북한 당국이 국토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이 있기 전, 북측 대표단이 극비로 서울에 와서 공동성명 기초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작업이 마무리 될 즈음 북측 대표단은 우리 측 대표단에게 “일도 잘 마무리돼 가니 쐐주 한 잔 합시다.”라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당시 소주는 30도짜리. 불행히도 우리 측 대표단은 술에 약했다.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었다. 그리고 북측 사람들은 워낙 소주에 강한 사람들이라 술에 취해 우리의 측 대표단이 먼저 취해 보안상 지켜야 할 사안이라도 발설하면 큰일이다. 그렇다고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후일담은 우리 측이 비책을 써서 북측 대표단이 먼저 취하게 했다고 한다. 그 비책이란 술자리에 참석하기 전 참 기름을 한 컵씩 먹고 참석했다는 것. 이 또한 풍문으로 들은 것이니 맹신은 금물이다.

일반적으로 술자리에서 한 약속은 아무리 비장해도 잘 지켜지지 않고, 비장하지 않아도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의 약속은 거의 지켜진다.

연애중인 남녀가 술을 마시면서 하는 “나와 결혼해주면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줄게.”는 90년대에 남자들이 즐겨 쓰는 프러포즈용 멘트였다. 요즘 이런 말을 했다간 “좋아요, 결혼하면 설거지는 당신 몫.”이란 말을 듣지 않을까.

실제로 필자 주변 한 지인은 술자리에 참석하면서 참석자들에게 로또 복권을 한 장씩 돌리면서 당첨돼도 다~ 가지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당첨은 되지 않았지만 1주일이 행복해지는 것은 웬일일까.

그런데 실제로 술자리에서 일어난 복권문제로 재판이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술 먹다가 후배에게 로또 한 장 사오라고 시키면서 “내가 1등이 되면 너한테 2억을 줄게.” 그랬는데 정말 1등에 당첨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1등이 되고 보니까 마음이 변해서 8천만 원만 주니까, 이 사람이 나머지 1억 2천만 원을 달라고 소송을 한 사건이다.

주당들의 대표적 거짓말이 “오늘은 각 1병씩만 하자”…지켜지는 것 보셨나요.

술 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이 바가지를 긁는 아내에게 다시는 “술 마시지 않겠다. 술 마시면 전 재산 당신에게 줄게”라고 각서를 썼다간 “진짜로 전 재산을 부인에게 양도하는 사례도 있다.”고 양소영 변호사는 말한다. 그런데 꿀 팁이 하나 있다. 각서를 쓸 때 정자가 아닌 흘림체로 쓰거나 하여 정식 각서가 아닌 것처럼 하면 부인이 재판을 걸어와도 이길 확률은 적다는 것이다.

연말이 코앞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주당들은 술자리를 피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술안주 가격이 비싸졌다고, 술자리에 없는 사람 안주거리로 뒷담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친놈이 술 취한 놈 보고 도망간다.’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술이 미친 것보다 더 광기를 부린다는 말이다. 술 취했다고 함부로 “담엔 내가 크게 쏠게.” 같은 허튼 소릴랑 하지 마시고, 그런 말 했으면 반드시 지키시길. 누구 기다리다 지쳐 자빠지는 꼴 보지 마시고….

연말연시, ‘딱 한 잔’의 결심을 세우고 술자리에 참석했으면 가급적 지키려고 노력을 해보라. 건강이 최고 아닌가.

술자리에서 술을 적게 마시는 요령 중 하나는 말 많이 하고, 물 마시기다. 전문가들은 말을 많이 하면 술을 천천히 마실 수 있을뿐더러 혈중 알코올 농도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혼자만 떠들면 다음 술자리에는 아웃 당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 또한 적당히 하시길.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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