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박물관을 펼쳐 보는 시간

칭다오 맥주박물관

옛 박물관을 펼쳐 보는 시간

 

임 재 철 칼럼니스트

 

많은 여행을 다녀 봤지만 흥미로운 경험 중 하나는 ‘술 박물관’이나 ‘술 제조공장’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인생은 긴 여행이고 많은 것을 보고 듣지만, 모든 것은 아는 것만큼만 보이는 것인지라 그 또한 그러했을 거다.

가령 박물관이나 제조사라는 것이 지나온 시간만큼 많은 이야기를 축적해 놓았을 텐데, 우리가 여행을 하며 자료나 소개하는 이의 말을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나그네가 우연한 여행길에서 대략 쉬어 간 그늘을 기억하듯 한 굽이씩 풀어 볼까 한다.

사진은 필자가 칭다오 맥주박물관을 찾았을 때

대개 여행자들은 세계 몇몇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그 여행을 지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박물관은 역사를 기록하고 보여주는 곳이다. 요즘은 디지털화해 보여주는 곳도 많지만, 박물관은 역사와 시대의 기록을 한정된 공간에 쌓아 두는 곳이다. 이런 공간을 살펴보는 것은 나그네의 일상에서 벗어나 보물창고를 뒤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다.

나그네길 위에 인생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여행이 있고, 삶고 죽음이 있다고 믿는 필자로선 중국을 1백여회 이상 다녀왔다. 중국 말고는 갈 곳이 없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바람의 숨결이 닿는 곳으로 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산둥 성(山東省)의 칭다오(青岛市)를 20번 이상 간 것 같다.

칭다오 맥주박물관

그러니까 ‘칭다오 맥주’ 때문에 칭다오를 간 것은 아니지만, ‘칭다오 맥주 박물관’을 7~8회 견학했다. 1903년 8월, 독일인들이 맥주를 마시고 싶어 설립한 북유럽식 양조장이 바로 칭다오맥주의 시작이다. 말하자면 당시 독일인들이 지은 맥주공장의 설비를 보존한 상태로 2001년 개관된 박물관이다. 실제로 그 안에서 지금도 맥주를 제조하고 있고, 칭다오 맥주의 양조 기술과 관련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전시 및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칭다오 ‘원장 맥주’를 비롯, 생맥주와 흑맥주 등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칭다오 맥주박물관은 칭다오 양조장 옛 공장 자리에 있으며, 빨간색 서양식 건축물이 이색적이다. 칭다오맥주 첫 공장인 만큼 과거 양조장 모습, 역대 광고 등을 재연해 볼거리가 풍부하다. 1896년 독일 지멘스에서 제조돼 1903년부터 칭다오맥주주식회사가 사용했던 맥주 기계도 보존돼 있다. 이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수백 년된 기계 중 하나라고 한다. 광장에는 디오니소스 동상이 있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칭다오 맥주의 역사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다.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볼 수 있는데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 입구는 유명한 맥주 거리로 나그네들이 쉬어 갈 곳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 필자가 칭다오 맥주를 시음해 본 것 중 산둥 성 정부의 골프장 이벤트 행사 후 맛본 생맥주가 정말 고소하고 상쾌해 이래서 칭다오 맥주구나 하는 마음을 일깨운 적이 있다. 그 후 선후배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그 곳을 찾았을 때 그들이 시음잔 몇 잔에 그 맛에 취한 걸 보며 흐뭇해 한 적도 있다.

칭다오맥주는 칭다오인(人)의 영혼이자 자부심이다. 그 곳 주민들이 비닐 포장해 집에서 마실 정도로 칭다오맥주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칭다오맥주는 장저민 중국공산당 총서기, 후진타오 주석, 시진핑 주석 등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단골로 찾는 중요한 중국 기업이다.

 

칭다오맥주는 보리, 홉, 효모, 물을 주재료로 하는 독일 맥주 생산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원료 관리도 철저해 보리는 그 해에 생산된 것만 사용하고, 향을 좌우하는 홉은 직접 키워서 수확 후 사흘을 넘기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칭다오맥주가 초기부터 전 세계적으로 맛을 인정받을 수 있던 이유는 독일에서 직접 가져온 효모와 칭다오 지역에서 나오는 맑고 깨끗한 지하수 덕분이라고 한다.

 

다음은 일본의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와인, 위스키, 맥주 등 술 제조와 차와 주스, 건강음료 등 다양한 상품을 제조하고 있는 ‘산토리’이다. 그 가운데서도 ‘산토리’의 원점이기도 한 ‘’위스키 제조공장’을 되새겨 본다.

산토리하면 바로 위스키, 일본산 위스키가 탄생한 곳이다. 센다이 인근의 공장 등도 가보았지만 바로 ‘야마자키 증류소’다. 벌써 30년이 넘어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그곳에 관광버스로 실려 간 필자는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견학이었다.

 

고백하건대, 그때 몇 년씩 숙성시켜야 하는 큰 나무통들이며, 위스키를 물에 타서 마시는 미즈와리나 소다수에 타서 마시는 소다와리를 처음 맛본 곳이다. 야마자키 증류소는 어느 곳보다 축복받은 자연환경을 두고 있다. 물이 좋은 곳으로 저장고 옆에 연못이 있어 당시 필자로서는 위스키는 뭐니 뭐니 해도 자연환경과 물이 생명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필자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만든 증류액(原酒)을 디스플레이 한 것 중 짙은 호박색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여태껏 그런 색깔의 위스키를 입에 스며들게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흘러간 추억이 되었고, 술을 빚고 제조하는 걸 모르지만 간명하게 보면 좋은 술이 있는 곳은 여행자에게는 멋진 동네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더불어 술박물관이나 양조공장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양조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가장 진솔한 방법 아니겠는가. 우리가 시대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기록은 소중하다. 남겨진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는 지나온 시대를 보고 미래를 물을 수 있기에 말이다.

 

남미여행 중 멕시코시티에서 며칠 보낸 적 있는 필자는 꽤 오래 되었지만 데킬라 박물관 (Museo del Tequila)에 간 기억이 있다. 데킬라 박물관은 멕시코시티 가리발디 광장 부근에 있다. 박물관 구성은 별 거 없었지만 그래도 데킬라의 본고장이니 뭔가 한번 가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즉, 대한민국 서민들이 즐기는 술이 소주라면 멕시코에는 테킬라가 있다.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agave)으로 만드는 술인데 알코올 농도가 50퍼센트에 이르는 독한 술이다. 용설란으로 만든 증류주를 총칭하여 메즈칼(Mezcal)이라고 하며 더 좁은 의미의 메즈칼이 테킬라다.

 

데킬라 박물관 및 가리발디 광장은 멕시코 인들의 문화 공간이다. 데킬라 종류만큼이나 많은 수백개의 데킬라 병과 다양한 전시물이 전시돼 있는 박물관은 데킬라 제조에 관한 과정, 역사 및 흥미로운 볼거리들을 보여 주고 있다. 거기에다 데킬라 마시는 법에 대해 알려 준다. 고도가 높고 삭막한 멕시코 여행길에서 데킬라를 즐겨 마시지 않더라도 한 번 봐야 하는 곳이다.

 

여러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아직도 술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로서 정말 술의 세계가 얼마나 깊은지 이번 뒤적이는 두뇌를 통해 조금은 슬로 모션이 걸린 듯 한 느낌이다. 그동안 유럽 등지의 소소한 와인 박물관이나 일본의 아사히 맥주공장 등도 소환되기는 하지만, 당시 그 많은 술병을 한없이 쳐다보며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았던 기억들, 삶의 무게는 물론 짓눌리는 고해의 현실 속에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안개 속으로 흩날려 보내기 위해 고통스런 여행을 했던 기억을 연상하며 지금의 필자에게 되묻는다.

흔히 역사는 되풀이되고, 역사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술박물관 뿐만 아니라 역사, 과학,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보물 같은 박물관들을 둘러보면 삶의 희열감이 배가될 것이다. 특히 빠르고 복잡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를 담고 있는 박물관들의 역사와 아름다움이 변함없이 우리 곁에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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