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 ‘옹기종기’ 막걸리 孔振赫 대표
경영난 폐업 후 사라진 남창 옹기종기 막걸리 재탄생 시켜
탁하지 않고 담백한 시장 막걸리의 재탄생…MZ세대를 품다
영남권 진산 중의 하나가 해발 742.6m의 대운산(大雲山)이다.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에서 양산시 웅상면 명곡리와 삼호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여러 골짜기는 벼랑이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워 소금강으로도 불리는 산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깃든 대운산은 울산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 대운산 등산로 입구에 ‘옹기종기’막걸리를 생산하는 (주)옹기종기영농조합(대표 孔振赫, 48)이 자리 잡고 있다.
옹기종기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은 생각보다 해묵은 양조장은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 사는 기자가 알게 된 것은 술맛이 좋아 입소문의 꼬리가 길게 이어진 탓인가 보다.
술맛 좋다는 소문만 듣고서 그냥 앉아 있다는 것은 술 신문 기자의 도리가 아니지 않는가. 불원천리 마다 않고 옹기종기 양조장을 찾은 날은 때 마침 ‘남창옹기종기시장’의 장날이었다.(장날은 매월 3일과 8일이 들어간 5일장)
5시간 이상 운전하여 도착한 양조장은 지나가는 사람들도 쉽게 인식 될 만큼 벽화가 양조장을 감싸고 있다. 추후에 안 것이지만 이 벽화는 서울의 유명한 화가를 초청하여 그린 것으로 값도 꽤 지불한 것이라고 했다.
어렸을 적 꿈이 정치가였는데… 울산시 시의원에 당선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공진혁 대표를 만났다. 처음만난 사람끼리 의례 그렇듯 수인사를 끝내고 명함을 받았는데 양조장 명함이 아니다.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공진혁’이란 명함이다.
의아한 얼굴을 알아차린 공진혁 대표가 다시 양조장 대표 명함을 건넸다. 그러면서 습관이 되어서 그랬다고 했다. 공진혁 의원은 두 번 도전으로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울주군에서 뽑는 울산시 시의원에 당선됐다고 한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인 공진혁 의원은 어렸을 적부터 정치가 되는 것이 꿈이 였다고 하니 잘 된 일 아니겠는가. 시의원은 국회의원으로 가는 첫 관문이 아니겠는가.
공진혁 대표가 가업을 잇는 일도 그렇다고 전공과목도 아닌 양조장을 운영하게 된 것은 단순히 지역사랑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이력을 보면 한마디로 스포츠맨이다. 현재 남창태권도 관장이다. 온양초, 남창중․고를 나와 용인대학에서 스포츠를 전공했고, 울산대학교 정책대학원을 졸업했다. 이런 이력 때문일까 울산광역시 태권도협회 이사, 울주군 체육회 이사, 울주군 족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고, 2021년에는 농림부장관상도 받았다.
울주군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고향 사랑이 남달랐을 것 같다.
맨땅에 헤딩 하며 일궈나가는 ‘옹기종기’ 막걸리
울주군에는 복순도가를 비롯해 △웅촌양조장 △언양양조장 △대운산도가 △한수도가 등 5곳의 막걸리 양조장과 언양읍의 수제맥주 양조장인 트레비어 등이 있다. 막걸리 판매 경쟁이 치열한 지역 중 하나다.
대운산 도가는 근년에 상호를 ‘옹기종기’양조장으로 바꿨다. 대운산 도가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이름이 ‘옹기종기’이기 때문에 술 이름을 상호로 바꾼 것이다.
대운산 도가 막걸리 즉, ‘남창 막걸리’라는 이름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남창 막걸리의 출발은 3대째 남창시장을 지켜온 남부탁주다. 남창시장이 ‘남창 옹기종기시장’이 되면서, 남창 막걸리도 ‘남창 옹기종기 막걸리’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주류 시장이 녹록치 않았다. 남부탁주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3년께 폐업했다.
남창 옹기종기 막걸리가 사라지자 주민들의 아쉬움은 커졌다. ‘우리 동네 막걸리는 지켜야 하는데…’ 동네 어르신들의 탄식에 응답한 사람이 공진혁 대표다. “어르신들 바람대로 지역 막걸리 명맥을 이어보고 싶었다”는 공 대표는 2018년 9월 대운산 도가를 설립하고 막걸리의 업계로 뛰어들었다.
공 대표가 대운산 도가를 인수하려 할 때 주변에서는 울주군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조장이 있고, 폐업한지 5년이나 된 양조장을 굳이 되살리려고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들을 보내는 이가 많았다고 했다.
이는 양조장 폐업으로 한때 생산이 중단됐던 ‘남창 옹기종기 막걸리’가 재 출시되면 지역 막걸리업계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에도 개의치 않고 공 대표는 기존 폐업하기 전 공장장과 지역 상인들을 만나 협의한 끝에 상표권을 이어받고 양조장을 인수 받았다. 3개월간의 시험 생산에 성공한 뒤 지난 2019년 1월 26일부터 판매를 시작하면서 울주군 탁주업계에 도전장을 내놨다.
공 대표는 “막걸리를 빚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쌀, 누룩, 물만 있으면 막걸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많은 시행착오 끝에 제대로 된 막걸리가 나오는 날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공 대표가 양조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전국의 유명 양조장을 다니며 술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냉대가 심했다. 제주도에 있는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양조기술교실에도 참가하면서 고군분투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건 막걸리의 재료였다. 남부탁주 시절 막걸리의 주 재료였던 ‘밀’ 대신 ‘우리 쌀’을 이용했다. 공 대표는 때때로 정미소를 찾아 울산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사서 막걸리를 빚었다.
따지고 보면 공진혁 대표의 양조장 운영은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1일 막걸리 300박스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무인 판매대 저녁 결산하면 막걸리 통수와 금액 일치
공진혁 대표는 ‘옹기종기’ 막걸리가 후발주자임을 인지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전개한 결과 기존의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는 눈치들이라는 것이 지역 막걸리 업계의 중론이다.
공격적 마케팅은 막걸리 가격을 저렴화 시킨 것. 750㎖ 막걸리 한 병을 1천원에 출고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마트 식당, 주점 등에 공 대표와 부인 박미정 씨가 직접 공급한다. 아직은 직원을 둘 만큼 여유롭지 않아 부부가 생산 판매를 도맡고 있다.
이런 결과 지역 대학 축제 등에서 ‘옹기종기’를 찾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양조장에 설치된 무인판매대에는 막걸리가 다 팔려 쇼케이스가 비어 있는 날도 있을 정도라고 박미정 씨는 말했다.
무인판매대라는 것은 대단 한 것이 아니고, 쇼케이스에 막걸리를 채워놓고 쇼케이스 앞에 돈 통을 놓아두는 것이 전부. 그런데도 저녁에 결산 해보면 막걸리 통수와 돈이 일치 한다는 것이다. 울주군(타 지역 사람 포함)사람들의 양심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공 대표는 “처음부터 많은 돈을 벌기 보다는 지역민들에게 값싸고 맛있는 술을 공급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면서 가격을 싸게 정했다고 했다.
공 대표는 “어릴 때부터 남창시장 인근에서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꼈는데, 지역 특산주가 사라진 것을 알고 가족들과 이를 살려보기 위해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말하면서 이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남창 옹기종기 사장’서 따온 술이름이 시장과 잘 어울려
남창 옹기종기 막걸리는 ‘남창 옹기종기시장’에서 따온 명칭이다. 남창옹기종기시장은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되었는데 1916년 개설된 노점형의 중대형시장으로 그 역사가 100년을 넘기고 있는 역사가 살아 있는 5일장이다. 장날은 매월 3일, 8일이 들어간 날 장이 선다.
남창 장은 남창역을 통해 울산, 부산 등지의 상인 장꾼들이 모여들던 남부 5개 면의 중심시장으로 1960년대까지 남창 시가지 전 도로상에서 장이 열렸다. 인근 지역에서 재배한 농산물과 잡아 올린 해산물이 풍부하게 나와 있어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사전적 의미로 ‘옹기종기’란 말은 크기가 다른 작은 것들이 고르지 아니하게 많이 모여 있는 모양의 형용사다. 그런데 말이 아름답지 않은가.
남창에서 가까운 곳에 외고산 옹기마을이 있다. 옹기 집산촌인 외고산 옹기마을. 그 마을 이름 따서 지은 시장이 남창옹기종기시장 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지금도 옹기마을에는 옹기를 굽는 집이 여러 집이 있다.
남창옹기종기시장에는 농수산 식품이 유명하다. 시장 구경재미가 쏠쏠하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출출해지기 마련인데 이 때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요기를 때우면서 ‘옹기종기’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면 금상첨화.
탁하지 않고 담백하다는 평판 높아 젊은 층 선호
각설(却說)하고, 술은 누가 뭐래도 술맛이 좋아야 한다. ‘옹기종기’ 막걸리는 지하 200m에서 퍼 올린 지하수로 막걸리를 빚는다. 이 지하수는 대운산에서 이어지고 있어 물맛이 좋다. 때문에 술맛이 부드럽고 탁하지 않아 담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기존 밀 막걸리에서 밀과 쌀을 혼합한 막걸리로 젊은 층과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제품이라고 공진혁 대표는 말했다.
‘옹기종기’를 마신 젊은 층들의 평판은 “알코올 향이 강하지만 달달하여 간단하게 먹기 좋은 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공 대표는 또 “옹기종기 막걸리는 예전의 술보다 목넘김이 부드럽다는 평을 받았다. 지역 출신의 자부심을 갖고 재생산한 막걸리인 만큼 막걸리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좋은 술은 기본 재료가 좋아야 하기에 양조장 인근 논을 임대해서 벼농사를 직접 짓는다.
농사를 처음해본 공 대표는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벼농사를 지면서 깨달았다고 털어 놓는다.
지난 추석 때는 이 지역 특산물인 간절곶 서생배와 울주배 등을 넣은 이색 과일 막걸리(10%)를 생산해서 출하했는데 반응이 예상외로 좋아 6차 산업화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옹기종기는 최근 온라인 등으로 판로를 넓히기 위해 일반주류면허인 제조면허를 지역특산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올 초에는 페트병과 분리해 배출하지 않아도 재활용이 가능한 ‘최우수등급’의 투명 라벨을 부착한 패키지로 전면 교체했다.
지난 추석 때 지역 특산물인 배를 첨가한 배 막걸리를 출시 한데 힘입어 3대 명주로 불리는 ‘이강주’를 개발하고 있다. 이강주는 증류주에 배, 울금, 생강, 계피 등을 넣어 1년가량 숙성시킨 술이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옹기종기 양조장을 취재하면서 불현 듯 이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글․ 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