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은 좋은 재료와 정성에서 나온다”는 고집으로 술 빚어

김견식 대표가 그가 생산한 보리소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배경의 오크통에는 증류한 보리소주가 숙성되고 있다.

65년 양조 외길人生 병영양조 金涀植 대표

 

좋은 술은 좋은 재료와 정성에서 나온다는 고집으로 술 빚어

보리로 만든 40% ‘병영소주, 팔순에 영그는 브랜디의 꿈

 

외길인생.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특히 현대인들에 있어 웬만한 장인 정신이 있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그런데 병영양조장 金涀植(85) 대표는 65년 양조외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외길을 걸어 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한국 양조업계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산 증인이다. 김견식 대표는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왕성한 현역이다. 병영양조장에 무수히 쌓여 있는 오크통. 그 오크통 속에는 김 대표가 직접 증류한 보리소주가 숙성되고 있다. 최고로 오래된 것이 6년이고 해 마다 증류주를 새로운 오크통에 담아 숙성을 시키고 있는데 김 대표는 “외국의 양주처럼 우리도 12년산 소주, 15년산 소주꼬냑을 출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65년 양조 외길人生 병영양조 金涀植 대표

오크통 속에서 소주가 숙성되고 있듯이 김 대표의 브랜디의 꿈도 익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 집념이 외길인생을 걷게 한 원동력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장하다.

김견식 대표는 몇 해 전 독일에서 동증류기를 수입해서 설치했고, 병입도 무인화 시키는 등 새로운 시설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로고도 새롭게 디자인 하는 등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경영을 하고 있다.

김견식 대표는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현역 양조 인으로서는 가장 웃어른이 아닌가 여겨진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병영양조는 1946년 중반에 세워진 양조장이다. 우리나라 양조장은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양조장이 많은데 특이하게도 병영양조장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생겨난 양조장이다. 당시 김 대표의 친척형인 김남식 씨가 누룩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가 이곳에 병영양조장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 양조장에 김 대표는 1957년 18세의 어린 나이에 병영양조장에 입사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우리나라 양조역사와 생을 같이 해오고 있는 양조 외길인물이다.

장흥이 고향인 김견식 대표는 가난한 살림에 호구지책으로 18세의 나이에 양조장에 취직을 했고, 군대갔다온 것을 제외하고는 외곬으로 65년 동안 술만 빚어왔고,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술을 빚겠다고 했다.

병영면의 랜드 마크가 되고 있는 병영양조장 1공장.

병영면에 들어서면 동네 한 가운데 높은 벽돌 굴뚝이 서 있다. 병영양조장이 과거 1960년대 방카시유를 연료로 사용하여 증류식 소주를 내릴 때 매연 발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워진 굴뚝인데 이제는 병영면의 랜드 마크처럼 되었다.

굴뚝에 ‘병영양조’란 글씨를 보고 객지 사람들이 “여기에도 양조장이 있네”라며 방문하기를 청한다. 김 대표는 누구든 방문을 요청하면 기꺼이 공장 투어를 자청한다. 방문객들은 이런 시골에 이렇게 규모가 크고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는 양조장이 있다는 데 놀라고, 양조장 역사 이야기를 듣고 나서 놀라고, 술맛을 본 후에는 술맛이 좋아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명인 전수자인 장남 김영희(55) 씨와 누룩을 빚고 있다.

술 빚기의 외길을 걸어온 김견식 대표는 2014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식품명인지정서(61호, 병영소주)’를 받았다. 이후 명인 전수자로 그의 장남 김영희(55) 씨가 2019년 1월 ‘식품명인전수자 선정서(2019-61호)’를 받아 명인의 대를 잇게 되었다. 전수자로 선정된 김영희 씨도 아버지 밑에서 31년이나 술을 빚어왔으니 술빚기 달인이 아니겠는가.

김 대표는 기자에게 “아들이 나보다 술을 더 잘 빚는다”면서 “지금 당장 (내가)손을 떼도 명주를 빚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좋은 재료로 술 빚어야 술맛도 좋은 것

기자는 3년 전에도 병영양조장을 찾아 김견식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삶과술 240호)

그동안 양조업계는 한국의 근대사만큼이나 부침(浮沈)이 심했다. 한 때는 수요와 공급이 어려울 정도로 술 판매가 잘 되었다가 쌀로 술 빚는 것이 금지되고 나선 문을 닫는 양조장이 많았다.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금지되었던 쌀 막걸리 생산이 풀리자 너도나도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많은 양조장들이 영업부진으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병영양조장은 굳건하게 버티면서 성장해왔다.

무슨 비결이 있었던가? 김 대표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맛 좋은 술을 내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맛있는 술을 빚기 위해선 무조건 좋은 재료로 술을 빚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다.

수십 년 술을 빚어 왔으니 김 명인은 얼마나 많은 술을 먹어왔을까?

“술은 못합니다.” 헐! 양조장 대표가 술을 못하다니…. 이유인즉, 술을 빚을 때는 항상 옆에 붙어서 술 익는 상태를 살펴봐야 하는데 술 마시며 시간을 빼앗겨서는 좋은 술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명인다운 이유다. “명인은 아무나 하나….”

병영소주의 새로운 라벨.

병영양조에서 생산되는 술의 뿌리는 전라병영성지?

병영양조장에서 360도를 돌아보면 산들로 병풍을 이르고 있다. 군사적으로 천혜의 요새(要塞)다. 기자가 느끼기에도 그런데 하물며 과거 군사전문가들도 이런 요새지역을 놓칠리가 있었겠는가.

태종 17년에 남해에서 노략질하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이곳에 ‘절제사(節制使)가 주재하는 병영(兵營)’을 세운 데서 병영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동쪽으로 성락산, 서쪽으로 석문산, 남쪽으로 오봉산, 북쪽으로 위봉이 둘러 있다. 작천(鵲川)을 통해서만 외부와 연결되는 폐쇄된 공간이므로 요새에 알맞다. 병영면의 중심에 있는 전라병영성지가 그 주인공이다.

병영성지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소실되며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97년 문화재로 지정되어 최근 복원공사를 통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복원공사가 끝나면 병영성지는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병영양조’는 병영성지에서 차용한 이름이라고 김견식 대표는 말했다.

“젊음이 있는 곳에 술이 있다.”는 말이 있다. 병영성지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군 생활을 했을 테고 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많은 오크통에는 보리소주가 숙성되고 있다

미수를 코앞에 두고도 우리 술 고급화와 세계화를 위한 그의 꿈은 아직 진행형이다. 김 명인이 정성을 쏟는 제품은 ‘소주브랜디’다.

좋은 술은 시간이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좋은 와인이 그렇고 코냑이 그렇다. 요즘 김견식 명인은 우리술도 10년산 15년산 증류식 소주가 나와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프랑스에서 오크통을 수입해서 보리로 빚고 증류한 보리소주를 장기 숙성시키고 있다.

오디와 복분자를 발효시켜 증류한 술도 있고, 순수한 쌀 소주를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키면 외국의 유명한 코냑 못지않은 술이 탄생한다.

매년 여러 통의 보리소주를 오크통에 넣어 숙성시키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이 6년이 되었다니 머지않아 10년산 보리소주가 출시될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국내산 소주코냑이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벌써 그 술맛이 궁금하다.

 

김견식 명인이 2001년 야심차게 개발한 약주가 ‘청세주(靑世酒)’다. ‘세상을 푸르게 하는 술’이란 뜻으로, 전통방식으로 쌀을 발효시켜 만들어낸 병영양조만의 약주이다. 보통 약주는 알코올 함량이 12~13%인데 비해 청세주는 18%다. 이는 특별한 기술과 숙련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술이다.

청세주는 국내산 햅쌀을 전통방식으로 발효시켜 여과와 살균처리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 숙성시켰으며 산수유, 산사자나무열매, 가시오가피열매를 첨가해 옅은 녹차 빛을 띠면서도 향이 은은하고 숙취부담이 없다. 1년 이상 두어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유통기한도 길다. 기존 소주의 맛과 차이가 거의 없으면서 우리 쌀로 만들어낸 전통주라는 인식이 퍼져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40% 병영소주(500㎖)
40% 병영소주(200㎖)

병영양조의 인기브랜드는 40% 짜리 ‘병영소주’와 ‘병영사또’다. 조선시대 병마절도사(사또)들이 즐겨 마셨다는 ‘병영소주’는 보리를 주원료로 하여 빚은 증류식 소주이며, ‘병영설성사또’는 쌀을 주원료로 하여 빚은 일반증류주로 숙성과정 중 오디와 복분자를 침출하여 천연의 향과 자연의 색을 갖춘 명주이다. 이 술들은 장기간의 숙성과정을 거친 완숙주로 향기가 은은하고 목넘김이 부드럽고 뒷날 숙취가 없는 병영양조만의 기술로 만들어진 고급주다.

독일에서 들여온 동증류기.

이 외에 막걸리는 병영설성生쌀막걸리, 설성 동동주, 설성만월(국내 첫 유기농쌀 막걸리)을 출하하고 있는데 인기가 높아 한번 마셔본 사람들의 택배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명인의 자부심처럼, 병영양조장의 술은 해외에서도 알아준다. 병영 보리소주는 2016년과 2019년 벨기에 국제 식품품평회(ITQI)서 2STAR를 수상했고,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우수 전통주 생산과 전수(傳授)에 힘써오고 있는 김견식 대표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6농업인의 날’에는 대통령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김 명인은 요즘 불경기라 양조장도 피하기 어려운데 버티고 있는 것은 일본으로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8년부터 수출을 했어요. 일본에서 사람이 와서 그들 나름대로 국내 12개 주조장을 선정하고 현지에서 시음을 했어요. 감사하게도 우리 제품이 품평회에서 1등을 하게 됐고, 수출을 하게 됐죠.”

설성동동주

지역 주변 농가에 큰 도움주고 있는 병영양조장

병영양조 2공장(막걸리, 동동주 생산) 2층에는 병영양조가 걸어온 발자취를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김 명인이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상장과 감사패가 가득하다.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서 2012년에는 ‘우리 술 품평회’에서 ‘병영설성사또’로 대상을 받는 등 크고 작은 상을 수없이 받았다. 상장과 상패가 수도 없이 많아서 몇 번이나 수상했느냐는 질문에 “자세히 세워 보지는 않았지만 한 200여 번은 넘을 것 같다”고 했다.

전통명주 선발대회 최우수상 3관왕, 농업인 대상,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 주류 품평회 은상(사또주) 벨기에 주류 품평회에서 은상(병영소주)도 받았다.

전시실을 겸한 공간에는 술빚기를 비롯한 강의실도 마련되어 있는데 그동안 김견식 대표가 개발해온 8종에 각종 술이며 도구들도 전시돼 있다.

병영양조장의 인기 주품들.

병영양조에서 사용되는 보리는 100% 국내산만을 사용하여 주변 농가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보리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지 않아 원재료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좋은 술을 빚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만을 써야 한다는 철칙아래 지금까지도 욕심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2남 4녀를 둔 김견식 명인은 큰아들 김영희 씨가 대를 이어 전수자로 선정되어 술빚기를 열심히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이 영업을 맡아 든든하다고 했다. 또 병영양조장의 사무와 마케팅을 도맡아 이틀이 멀다하고 서울을 오가는 명인의 딸인 김지유 실장의 노력도 크게 한몫 한다고 했다. 명인이 새롭게 꿈꾸고 있는 소주 브랜디가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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