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4)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4)

 

 

남태우 교수

고대 그리스, 암픽티온(Amphiktyon)이라는 왕이 아테네를 다스리던 때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인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테네 인근의 할리모우스(Halimous)라는 마을을 들렀을 때의 일이다. 과일농장 주인인 이카리우스(Icarius)의 집에서 유숙하였는데 그의 환대에 보답으로 그에게 포도나무를 선물하고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포도주가 처음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카리우스는 열심히 포도를 가꾸어 수확기에 이르자 포도주를 빚어 염소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이웃을 초대하여 함께 나누어 마시며 춤을 추고 즐겼다.

그들은 이것을 마시고 취하여 독이든 줄 알고 그를 죽였다. 이것을 알지 못한 그의 딸 에리고네(Erigone)는 충직한 개 마이라(Maera)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아버지 시체를 발견하게 되자 그녀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에 디오니소스는 은혜도 모르는 아테네인들을 벌하여 미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많은 아테네 여자들이 목매어 죽었다. 마침내 그들은 아폴론의 신탁에 의해 그 불행의 원인을 알고 제사를 행했다. 이 제사 때는 이카리오스와 에리고네를 추모하는 인형을 나뭇가지에 걸었다.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던 개는 각각 ‘처녀자리’와 프로키온(Procyon, 개자리의 1등성)이 되어 하늘에 올라갔다.

 

그리고 이 마이라가 외롭지 않게 에리고네도 하늘에 올려 처녀자리(Virgo)로 만들고, 에리고네의 아버지 이카리우스는 목동자리(Bootes)로 만들었다. 한편 이카리우스 가족을 죽음으로 몰았던 이웃들은 할리모우스를 도망치듯 떠나 인근 케오스 섬으로 옮겨가 살았는데, 하늘에 오른 마이라는 여름 중에서도 가장 무더운 날을 관장하는 별자리여서 케오스 섬을 불바다처럼 뜨겁게 만들었다.

섬의 주민들은 계속되는 무더위로 고통스러워 지자 신탁을 빌었고 신탁 결과 이카리우스를 죽인 농부들을 죽여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그들은 죽었고 제우스는 북서계절풍을 40일간의 선물함으로써 케오스 섬만은 여름의 열기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지중해의 여름날 가장 무더운 날을 ‘Hemerai kynades(그리스어로 개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지중해 사람들은 유난히 무더운 날을 ‘dog days’라고 부른다.

 

아이톨리아(Aetolia)에서도 디오니소스는 환영받았다. 일설에 의하면, 오이네우스 왕이 그에게 자기 아내인 알타이아(Althaia)를 제공하여, 그녀는 디오니소스의 딸이자 나중에 헤라클레스(Hercules)의 아내가 될 데이아네이라(Dēianeira)를 낳았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오이네우스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그에게 포도 재배법을 가르쳤다.

 

디오니소스는 외국 출신의 신답게 그리스 이외의 나라를 널리 여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라가 그를 미치게 했기 때문에 그는 시리아, 이집트 등 동방의 여러 나라를 방랑하고, 마지막으로 프리기아에서 키벨레 또는 레아에 의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프리기아의 옷을 입고 리디아의 마이나데스들과 사티로스들, 또는 실레노스(Silenus)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그를 따르는 여자들은 사슴가죽을 몸에 두르고 티르소스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

 

또 새끼 사슴에게 젖을 먹이고 야수를 잡아먹었으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성행위를 했다. 실레노스가 길을 잃었을 때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일이 생기자, 디오니소스는 그 보답으로 미다스 왕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루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미다스 왕은 자기 손이 닿는 것을 모두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 소원은 이루어졌으나 그것은 은혜라기보다는 오히려 저주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황금은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에우프라테스(유프라테스) 강에 왔을 때, 디오니소스는 담쟁이덩굴과 포도넝굴을 얽어 다리를 만들었다. 드디어 그는 인도의 갠지스 강에 이르러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신앙을 편 뒤 표범이 끄는 마차를 타고 그리스에 돌아왔다. 올림포스의 신들과 기가스(Gigas)들과 싸움이 일어났을 때 디오니소스는 에우리토스(Eurytus)를 튀르소스 지팡이로 때려 죽였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부하인 사티로스들이 탔던 노새의 울음소리는 기가스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었다.

신들이 괴물인 튀폰(Typhoon)에게 쫓겨 이집트로 도망했을 때 디오니소스는 산양으로 변신했다. 나중에 그는 헤라와 화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헤파이스토스(Hephaestos)가 설치한 덫에 걸렸을 때, 디오니소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그녀를 도망칠 수 있게 했다. 또 일설에 의하면, 디오니소스는 아프로디테와 정을 통해 자신과 같은 풍요와 초목의 신인 프리아포스(Priapus)를 낳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개구리(Βάτραχοι, Batrachoi)>에는 디오니소스가 희극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로마인들은 그를 옛 이탈리아 전원의 신인 ‘리베르’와 동일시했다.

디오니소스 통음난무와 영광

<와인을 마시는 바쿠스>는 와인 통 옆에 턱하니 기대어 앉은 투실투실한 술의 신 바쿠스가 한편으로는 와인을 마시고, 다른 한 편으로는 오줌을 싸고 있다. 그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제 맘대로 살고픈 이 어린아이야말로 본능대로 사는 신이고, 본능을 이해해주는 신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보면 술의 신 바코스를 아기의 모습으로 그렸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데, 이는 만취하면 어린애처럼 된다는 알레고리가 숨겨진 코드이다. 종종 바쿠스는 술을 한 잔 권하며 인생은 짧은 거라고, 세상 뭐 별 거 있냐고, 왜 빈약해빠진 너희의 의지에 삶을 몽땅 거느냐고 조롱하듯 묻는다. 때로는 감정 가는대로 내맡기라며 지그시 눈웃음을 치기까지

한다.

그림을 그리는 기교가 뛰어났던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그림들을 스스로 익히면서 빛과 색채를 이해했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젊은 바쿠스(The adolescent Bacchus)>와 <병든 바쿠스(Autoritratto in veste d Bacco(Bacchino malato)>가 있다. 술의 신인 바쿠스가 인간처럼 병에 걸리고 술주정을 한다는 발상이 이 그림에 들어갔다.

와인을 마시는 바쿠스(1623)/ Guido Reni

술에 절어서 지내는 바쿠스는 인간처럼 병에 걸리고 손톱 밑에 때가 꼈을 것이라는 카라바조의 상상이다. 당시 기득권 미술가들은 카라바조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미리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의 묘사가 지나치게 사실적이기 때문에 신 중심의 관념적인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종교적인 후원자에게는 불경스러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Bacchino malato/ Caravaggio> <The adolescent Bacchus/ Caravaggio>

<병든 바쿠스>의 얼굴이 바로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다. 카라바조는 바쿠스를 좋아했던 것 같다. 1606년 과음 후 그만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선고를 받지만 탈옥을 하기 까지 한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고향 밀라노를 떠나 처음 로마로 와서 오래 아프고 난 다음 열병에 걸려 여러 달을 앓고 난 후에 그린 그림이다. 검은 손톱과 창백한 입술 등을 통해 마치 술의 해로움을 알려 주고 있는 듯하다.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로마에 와서 처음 그린 자화상이다. 마치 황달에 걸린 듯한 누런 피부색에 생기가 없는 표정은 풍요로움과 쾌락의 상징인 바쿠스를 가난하고 병든 모습으로 표현했다.

 

<병든 바쿠스>는 카라바조가 자신의 뒤를 밀어 줄 배경이나 돈이 없던 어려운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밑에서 제단화나 정물화를 그려주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 때 이 화가가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림 속 바쿠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카라바조는 제목처럼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다. 혈색이 창백하고 입술은 허옇게 떴으며, 신의 탁자인데도 과일 몇 개가 놓여져 있을 뿐이다. 그림에 얽힌 개인사의 연대와 내용이 실제 그러한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 속 포도주의 신 바쿠스는 앓다 일어난 병자답게 파리한 얼굴색과 핏기가 가신 메마른 입술로 병색이 뚜렷하다. 손톱은 색이 옅으면서 어둡고 그가 거머진 포도조차 병자의 노란빛을 띠고 있으며 머리에 얹은 월계수 잎과 포도덩쿨로 만든 관도 생기를 잃고 시들었다.

 

또 다른 작품은 <젊은 바쿠스>가 발그레한 뺨을 가진 소년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표정과 눈빛은 소년이라 하기에 어색할 정도로 생기가 없다. 바구니에 담긴 과일도 제빛을 잃고 썩어 있다. 이미 술을 많이 마신듯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는 바쿠스의 표정이 보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초기작이다. 바쿠스의 머리를 뒤덮고 있는 포도나무 잎은 포도주와 연관되어 그가 술의 신임을 상기시킨다.

흔히 바쿠스가 술에 쩔어 있는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상상되는 것에 비해 카라바조의 바쿠스는 수염도 없이 젊은 얼굴에 홍조를 띄고 있는데, <바쿠스> 역시 화가가 좋아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 눈빛은 멍하고 손톱에는 때가 껴있다. 또 과일 바구니에는 상한 과일과 시든 나뭇잎이 섞여 있다. 바쿠스는 한 손에는 ‘사랑의 초대’를 암시하는 검정색 리본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넓은 유리잔에 포도주를 가득 담아 권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마치 감상하는 사람을 酒님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하다. 이 바쿠스는 ‘허무’나 ‘동성애’ 혹은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암시한다고 한다.

 

이 그림은 로마 체류시절 그의 후원자였던 프란체스코 델 몬테(Francesco Maria del Monte, 1549~1626) 추기경이 자신의 친구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Ferdinando I de’ Medici, 1549~1609)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그림속 바쿠스는 화가의 친구로 역시 화가였던 마리오 미니티(Mario Minniti)를 모델로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술잔을 든 바쿠스의 손톱에 때까지 그린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 역시 늘 품위있게 묘사되던 ‘신’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의 모습으로 묘사한 탓이다.

바쿠스가 들고 있고 술잔 속 포도주는 막 술을 따른 듯 거품이 일고 있다. 그 앞에 놓인 과실들은 얼핏 보면 탐스럽기 그지없으나 자세히 보면 신선함을 잃어가고 있다. 시간이 다해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존재하지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허무함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카라바조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화가로 평가되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연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기독교적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추구하는 화풍을 버리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카라바조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이를 작품에서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므로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극적인 긴장감이 느껴지곤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교인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했으므로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성화로 그들을 감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인간 본연의 심리를 꿰뚫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려 했던 카라바조는 가톨릭 교회의 눈총을 받게 되었다. 그는 심지어 16세기 뒷골목을 오가는 불량배, 거지, 매춘부 등을 그림 속에 끌어들여 그들을 예수로, 성자로, 막달라 마리아로 둔갑시켰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그 어디에도 인간을 초월한 신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음주문화칼럼니스트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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