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송구영신 술 한 잔의 두런두런
육정균(시인/부동산학박사)
한 해의 막바지 12월, 벌써 몇 군데의 송년회를 다녀오며 나도 모르게 최희준님의 <하숙생>을 흥얼거린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세월무상, 인생무상을 느끼는 연말, 대지가 차갑게 식어 추운 삭풍에 마음이 시린 계절이다.
시인 천상병은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며, 인생을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 인생의 심정에서 ‘아름다운 소풍(消風)’으로 노래했다.
연말이다. ‘엊그제가 연초였는데 벌써 한해 끄트머리라니…’ 대개 사람들의 생각이 그럴 것 같다. 나이를 먹은 중·노년층일수록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러나 세월은 붙들어 맬 수 없는 것.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그래야 다시, 봄이 오고 푸른 새싹이 나고, 어린이가 태어나고, 봄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의 알곡이 여물고, 감사한 수확의 계절이 올 수 있는 것 아닌가?
한 해를 보내며, 다시 한해를 맞이하는 겨울은 친구 끼리든, 연인끼리든 가슴을 훈훈하게 지피고, 따스한 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데워먹는 술이 제격이다. 따스한 온기로 데워먹는 술 중에서 독하지 않고 감미로움까지 갖춘 술로 콩나물국밥과 함께 새벽 한기를 녹이며, 월드컵 축구의 막바지 경기를 새벽 내내 보고 두런두런 친구와 대화하기엔 ‘모주’가 일품이다. 엄마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모주는 막걸리에 한약재·계피·설탕 등을 넣고 끓여 뜨끈하게 데워 마시는 우리 술이다.
‘모주’는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향토 음식이며, 해장술로 유명하다. 막걸리에 대추, 인삼 등 한약재를 넣고 24시간 끓이다가 알코올 성분이 거의 없어졌을 때 계핏가루, 흑설탕을 넣은 뒤 따뜻하게 즐긴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귀양지에서 빚어 ‘대비모주’라고 부르다가 ‘모주’가 됐다는 설과 술을 많이 마시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가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고 달여 아들에게 주었다고 ‘모주(母酒)’라 이름 붙었다는 설도 있다.
또 한국전쟁 당시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들이 막걸리에 설탕을 타 아이들에게 준 것이 ‘모주’의 유래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모주’는 콩나물국밥과 함께 주로 잔술로 즐긴다. 술이라고는 하지만 도수가 2도 정도로 낮아 한방 음료에 가깝다. 짙은 밤색을 띠며, 막걸리보다 조금 걸쭉하다. 계피 향이 많이 난다. 맛은 설탕을 넣어 달착지근하다. 계피 맛과 한약재 맛도 나지만 단맛이 중화돼 강하지 않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뜻한 술이 마시고 싶다. ‘원샷’보다는 데운 술 한 모금이 어울리는 계절. 술을 데우면 몸과 마음도 뜨끈하게 달아오른다. 추워지는 겨울엔 훈훈하게 몸을 녹이는 점심, 저녁을 하며 따스하게 데운 한국의 전통 ‘정종술’로 속을 달래면 어떨까? 겨울에 차가운 술을 들이켤 때 추운 날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게 입술에 차디찬 술이 닿는 순간, 소름이 살짝 끼치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지 않는가.
서늘한 한기를 요란하게 느끼고서야 ‘꼴깍’ 술이 넘어가니, 찬바람이 불 땐 그래서 촉감부터 따뜻한 술이 생각난다. 눈 내리는 날의 노천 온천처럼 느긋하게 이 계절의 취기를 즐기고 싶어지는 짙은 와인 같은 전통 ‘정종’은 물론, 아주 신기할 정도로 맑은 ‘정종’도 있다. 어렴풋이 투명한 유리컵에 맑은 ‘정종’등 데워 먹는 술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인생의 아름다움, 계절의 아름다움은 한 해가 저무는 12월, 추운 겨울이라고 없는 것일까? 세계 경제가 힘들고, 한국경제가 힘들다고 한국경제가 망하고 한국이 망하는 것일까? 언제는 우리나라가 석유 등 자원이 많고, 넉넉한 먹거리가 풍부했던 나라였던가?
우리민족은 우리나라는 무에서 유를 만들고, 먹을 것이 부족해 굶어가며 보릿고개를 ‘아리랑 노래’로 힘겨운 설움에 살아가던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민족, 그래서 교육으로 세계적 인재를 길러내고, 수출에 힘써서 현재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나 고난도 우리민족은, 우리나라는 너끈히 이길 수가, 이겨 나갈 수가 있다. 세계 경제
가 어려워도 나라마다 노력할 것이므로 회복될 것이고, 우리나라 경제도 온 국민이 똘똘 뭉쳐 극복하고, 원전수출, 방위산업수출과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의 미래도시건설에 뛰어들어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킨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새로운 도약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난 7개월 전부터 근거가 전혀 없는 신내림 주장으로 집값 등 부동산폭락을 선동하는 유튜브 방송과 지상파 방송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부동산폭락설이나 폭등설의 선동적 유포는 소비하지 않고 저축한 우리나라의 국부(國富)를 허망하게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깊은 계곡과 뾰족한 산봉오리를 만들어 집 없는 서민(庶民)의 삶을 무너뜨릴 뿐이다. “새로운 희망을 갖자”는 친구와의 연말, 따스한 술 한 잔에 두런두런 나눈 대화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아름다운 귀향」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