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을 왜 끊어야 하는가

좋은 술을 왜 끊어야 하는가

 

박 정근(칼럼니스트, 극작가, 소설가, 문학박사)

 

며칠 전 가까운 지기들과 경복궁 부근에서 만나 술을 마시며 겨울밤을 즐겼다. 소탈한 선배는 소주잔이 아닌 글라스로 폭탄주를 가득 부어준다. 굳이 소주잔에 여러 차례 술을 따라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리라. 젊은 시절부터 만난 사이에 수많은 정담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주변 잡담을 즐길 수 있었다. 술을 마시는 만남에서 어떤 형식을 갖추는 것을 줄이자는 음주 습관의 파격성을 읽을 수 있다.

지난 12월 10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서울의 맥베스> 공연 오픈 하기전 이 란의 필자 박정근 교수가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술을 마시는 동안 지난 일들을 추억하며 마치 어릴 적 동무처럼 흉금을 털어놓은 효과를 즐긴다. 폭탄주를 마시면 틀림없이 내일 아침 약간의 두통이나 메스꺼움으로 고생을 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자아는 술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리라는 기대감을 가진다. 그리고 경복궁 길을 걸어가면서 낙엽이 수북한 모습에 쓸쓸해진 마음을 쓰다듬으며 삶의 작은 기쁨을 누리면 되지 않겠는가.

 

요즘처럼 권력을 잡은 강자가 약자를 몰아붙이며 어두운 현실을 강요하는 상황은 참으로 마음을 어둡게 한다. 사실 권력자가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독선을 견제해주어야 세상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그들이 강자와 협잡하여 사회적 약자와 빈자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밤새 번민이 솟아올라 잠을 못 이루리라. 아마 도연명도 이런 이유로 음주가를 썼으리라.

 

平生不止酒, 평생 술은 끊지 못했노라

止酒情無喜. 금주를 하면 마음의 기쁨이 없고,

暮止不安寢, 금주를 하면 편안하게 잠을 못 이루고,

晨止不能起. 금주를 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리라

日月欲止之, 날마다 달마다 술을 끊고 싶었지만

營衛止不理. 그로 인해 혈액순환도 멈추리라

 

도연명은 그의 시를 통해 음주의 장단점을 말하며 심적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술의 과음이 몸에 이롭지 않지만 마음에 커다란 위안을 준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기에 술에 대한 애증병존심리를 느낀다. 술꾼이라면 누구나 겪는 심적 갈등이 아닐 수 없다. 술을 과하게 마신 다음날 아침에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투덜대는 술꾼들! 하지만 오후만 되면 일상의 무료함과 쓸쓸함을 이기지 못하게 술을 찾는 아이러니가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멕베스’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과 기념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정근 교수

도연명은 음주시에서 “술을 끊는다고 즐겁지 않음을 알고/끊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믿지 않았노라/이제 술을 끊는 것이 옳음을 알았으니/오늘 아침 진정 끊어보리라”/ 지금부터 일단 술을 끊고서/내일 아침까지는 끊어보리라/맑은 얼굴이 되어 어제 모습 그친다면/어찌 천만년만 끊겠는가?”라고 토로한다.

그는 술의 장점이 있다면 그것이 가진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존속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리라.

 

필자는 문화운동 차원에서 극단을 운영하고 있다. 공연할 때마다 배우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 그래서 연습이나 공연이 끝나면 선술집으로 가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불만을 토로하고 오해를 푼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연습과 공연을 지속한다. 마음에 미움을 지니고 동료들과 연기를 할 수 없지 않은가. 술은 인간의 마음을 풀어헤치는 약효가 있는 귀중한 음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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