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인들은 ‘조옥화 안동소주’가 <원조>라고 자부 한다

조옥화 명인의 손자인 김윤근 씨가 부모님의 대를 이어 안동소주를 이끌 채비를 갖추고 있다. 3대째인 김윤근 씨가 부모님과 함께 안동소주를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 3세 김윤근 경영지원팀장

 

안동인들은 조옥화 안동소주<원조>라고 자부 한다

뼛속깊이 전통주에 애착을 갖고 있는 3세대 김윤근 씨

 

안동하면 첫손 꼽히는 것이 ‘안동소주’다. 설사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도 안동소주를 알고 있을 정도로 안동소주는 한국 사람들에게 각인된 고유명사가 되었다. 전통 민속주는 고대로부터 그 제조 비법이 전수되어 의례용∙일상용으로 사용되어 온 민족의 술을 의미하며, 현행법상 <민속주>라는 단어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만 사용할 수 있다.

 

‘안동소주(安東燒酎)’를 한문으로 표기할 때는 술 주(酒) 대신 “세 번 빚은 술 주(酎)”자를 쓴다. 사전적 의미로는 군물을 타지 아니한 진국의 술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

그래서 안동인들은 ‘조옥화 안동소주’가 진짜이며 원조 안동소주라고 자부한다. 안동으로 여행을 떠난 젊은이들이 부모님에게 드릴 여행선물로 마트 등에서 안동소주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보따리를 푸는 순간 부모님이 ‘조옥화 안동소주’가 아니면 소주를 잘못 사왔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왜일까. 현재 안동에는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문화재·명인)’와 상표가 비슷한 ‘안동소주’가 8개나 있지만, 그 중 유일하게 국가문화유산(문화재)으로 지정되고 대한민국 최초로 1200년 역사 안동소주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안동소주는 ‘조옥화 안동소주’이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이후 안동지방 명가에서 전수되어 오던 1200년 역사 안동소주는 조옥화 여사가 전통적인 안동소주 양조비법으로 제조, 전승, 보존하여 1987년 5월 13일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으며, 2000년 9월 18일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받았다. 하나도 어려운 타이틀을 <문화재·명인>두 개나 보유한 것은 그만큼 조옥화 안동소주가 대한민국 대표 안동소주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조옥화 명인의 손자인 김윤근 씨가 부모님의 대를 이어 안동소주를 이끌 채비를 갖추고 있다. 3대째인 김윤근 씨가 부모님과 함께 안동소주를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는 조옥화 여사의 며느리 배경화(裵京華, 이학 박사, 무형문화재 보유자-경북 제12호, 안동소주박물관장)와 아들 김연박(金然博, 행정학 박사, 대한민국식품명인-제20-가호, 민속주안동소주 대표)에게 전승시킴으로서 그 맥을 계승하고 있다. 조옥화 여사(문화재·명인)는 3년 전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김윤근 팀장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젊은 층이 좋아하는 민속주 개발에 힘쓰겠다고 했다.

뼛속깊이 전통주에 애착을 갖고 있다

전통주 양조장의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양조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생산부터 관리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통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뜻있는 2세 3세들이 양조장의 대를 잇기 위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전통주 발전에 바람직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 가운데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 김연박 대표의 아들 김윤근(金倫槿, 42)씨의 경우도 돋보이는 인물 중 하나다. 김윤근 씨는 현재 부모님으로부터 경영 수업은 물론 회사의 경영지원팀을 맡고 있으며, 안동소주 무형문화재 전수 장학생이다.

 

김 팀장은 전통주가 몸에 밴 사람이다. 그래서 자칭 3세대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조옥화 안동소주의 모든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1세대나 다름없다고 했다. 김 팀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할머니 즉, 조옥화 여사와 부모님들이 술 빚는 일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지금은 뼛속깊이 전통주에 애착을 갖고 있다고 한다.

김 팀장은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저희 술을 구입하시기 위해 아침부터 최소 수백 미터의 줄이 있었어요. 지금 맛집 줄서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민속주 안동소주를 생산하는 안동소주 공장 전경.

나이가 들어가며 이강주, 문배주와 더불어 할머니가 빚는 안동소주가 우리나라 3대 명주에 들어갈 만큼 좋은 술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술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동소주를 마시는 계층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

김윤근 씨는 경희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심리상담을 공부했다. 부모님과는 다른 사회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안동소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유교문화에 길들여진 우리 민족은 술과는 밀접한 관계인데다가 우리의 민속주는 일상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전통주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김윤근 씨는 말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술을 마십니다. 물론 이 때는 부모님들이 축하주로 마시지만요, 그리고 혼인을 하게 되면 합헌주를 마시고, 죽어서는 후손들이 제사를 지낼 때도 술을 올립니다.”

우리 삶속에서 술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여서 이를 더욱 계승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NA채널과 tvN STORY가 공동제작하는 ‘이번주도 잘 부탁해’팀이 지난 해 안동소주를 방문하고 촬영했다. 좌로부터 고창석, 배경화 여사, 김연박 대표, 이엘, 성동일.

김윤근 팀장은 안동소주를 마시는 계층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고 했다. 과거 전통주는 어른들·중장년층이 마시는 술로 인식되었지만, 음주문화가 이전보다 성숙해지고 다양화 되고 있어 20-30대들도 전통주를 꾸준히 찾고 있다. 이전에는 취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양껏 술을 마셨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술들을 소량 음미하며 마시는 문화와 그 술이 가지는 가치와 이미지를 소비하는 트렌드 등도 영향이 있다고 한다.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조옥화 안동소주’도 더욱 세련되고 고급화 시켜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최근 4-5년 사이 이전과 비교해서, 전통주를 구입하시는 분들이나 우리 술에 관심을 가지고 주류박람회에 오시는 분들의 연령층이 낮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해서 큰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주병을 바꾸거나 용량을 다양화하여 젊은 층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조옥화 안동소주는 국가문화유산(무형문화재)·명인으로 동시 지정되어 제조법을 정확히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종(酒種)의 다양화라든가 주도(酒度)의 다양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다소 안타깝다고 김 팀장은 말한다. 국가문화유산의 전승·보전과 시대의 변화 가운데서 적절한 타협점이 나올 수 있게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 제도로 보인다.

주병과 용량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고유의 향과 감칠맛이 최고인 조옥화 안동소주, 안동소주의 교과서

같은 안동소주라도 ‘조옥화 안동소주’가 최고로 평가 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반적으로 전통주는 쌀, 누룩, 물로만 빚는 술이다. 이 원주를 증류해서 얻는 술이 증류식 소주다. 조옥화 안동소주는 직접 빚은 누룩(20여일 발효)과 고두밥(맵쌀)을 물과 혼합하여, 또 20여 일간의 발효과정을 거쳐 상압식 증류방식으로 생산된 소주다. 총 40일이 되어야만 조옥화 안동소주(문화재∙명인) 맛을 볼 수 있으며, 어떠한 인공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양조장들은 누룩공장에서 생산된 누룩을 구입해서 술을 생산한다. 그런데, 조옥화 안동소주는 누룩만큼은 직접 제조하여(자가누룩) 사용한다. 그래야만 고유의 술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글게 빻은 생밀에 물을 부어 골고루 버무린다. 잘 버무려진 밀(빻은 밀)을 누룩틀 안에 보자기를 펴고 넣어서 발로 고루 꼭꼭 밟는다. 성형된 누룩을 약 20일 정도 따듯한 곳에서 볏짚을 깔고 그 위에서 띄운다. 띄운 누룩은 콩알 크기 정도로 파쇄한 후 건조시킨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알코올 도수 45%로 단일 제품만 생산한다.

다른 안동소주와 또 차이점이 있다면 국가문화유산(무형문화재)으로 지정된 비법으로 빚어내고 증류 한다는 것이 다르다. 몇 번 안동소주를 방문했지만 아직 내부시설은 보지 못했다. 철저하게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외부로부터 유입될 수 있는 좋지 않은 세균들을 막아서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함이란다.

조옥화 안동소주를 마셔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를 마시든 숙취가 없다. 처음에는 독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마실수록 은은한 향취에다 감칠맛으로 주병의 바닥을 봐야만 일어난다. 도수에 비해 알코올 향이 거의 나지 않아 마시는 사람들마다 감탄한다. 오래 지날수록 풍미가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어 자꾸자꾸 찾게 되는 조옥화 안동소주다.

 

조옥화 안동소주의 소문은 영국까지 퍼졌던 것일까. 1999년에 한국을 찾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상을 조옥화 여사와 함께 며느리 배경화 씨가 차렸고, 안동소주를 여왕생일상에 올리기도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民俗酒 安東燒酎란 글씨는 며느리 배경화 씨가 쓴 글

김연박 대표와 함께 안동소주를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전통계승에 한 몫

 

안동소주가 부활하게 된 계기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행사를 치르게 된 정부로서는 우리 술을 외국인들에게 내놓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통주 발굴에 나섰다. 희석식 소주나 막걸리를 대표적인 한국의 술이라고 내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때 안동소주는 문배술·이강주 등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각광을 받았고, 안동소주를 옛 방식 그대로 재현한 조옥화 씨는 198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그 동안 가양주로 빚어오던 안동소주가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고 대중에게 소개된 것이다.

안동소주 부활의 일등공신 조옥화 여사는 지역 민속주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1990년 <민속주 안동소주>로 기업화 했다. 당시 지금과 같은 SNS는 없었으나 ‘입소문’만으로도 조옥화 안동소주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 없이 부족해 품귀현상을 겪기도 했었다.

과거에는 부엌에서 고두밥도 짓고 소줏고리로 소주도 내렸다. 소주발물관에 전시된 모형.

전통을 살리기 위해 주병은 도자기병으로 했고 주병에 ‘民俗酒 安東燒酎’란 글씨를 며느리인 배경화 씨에게 쓰도록 한 것이 안동소주의 로고체가 되었다. 안동소주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조옥화 여사를 보필하고 술뿐만 아니라 술이 들어가는 주병에도 정성을 담기 위해, 손수 글씨를 써서 현재 주병에 새기게 되었다.

 

배경화 씨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어머니 조옥화 여사의 평생 정성을 보면서 단순히 기술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학문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국립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안동소주의 전래과정에 관한 문헌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이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민속주 안동소주 발효의 양조학적 특성 규명 및 자가 누룩 제조의 최적화>로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와 더불어, 아들 김연박 안동소주 대표는 <지연산업(地緣産業) 육성정책의 한∙일간 비교분석> 이라는 주제로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제 전통만 따질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구가 필요하기도 한 시대가 되었는데 이 같은 연구는 남보다 한발 앞서가는 모습이다.

국가문화유산인 안동소주 알리기 위해 <안동소주 박물관>도 운영

조옥화 안동소주는 제조장 내에 <안동소주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365일 연중무휴인 덕분에 체험학습 등 가족단위의 관람객부터 안동지역 여행객 등 다양한 연령층이 방문하고 있다. 안동소주의 역사, 누룩 빚는 과정, 술을 담그는 과정은 물론이고 술상차려 손님을 접대하는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모든 음식모형은 모두 조옥화 여사와 며느리 배경화 여사가 직접 만든 음식 그대로 모형으로 만들다보니 실제 음식 이상으로 먹음직스럽다.

조옥화 여사가 이처럼 <안동소주 박물관>을 마련한 것은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한 홍보차원이다. 박물관내부에는 소줏고리로 증류주를 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고두밥을 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대중들이 전통 방식 그대로 술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게 하였으며 무료로 박물관을 둘러 볼 수 있게 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연간 적지 않은 운영비용이 들어가지만 국가문화유산으로서의 안동소주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조옥화 여사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제2대 김연박 명인(안동소주 대표)은 앞으로도 관람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제조, 홍보 및 모든 과정이 깨끗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도 외면

현재 안동지역에서 생산되는 여타 안동소주에도 안동소주라고 상표를 표시한다.

이에 대해 김윤근 팀장은 “1990년 조옥화 안동소주가 대한민국 최초로 출시되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안동소주는 대한민국 전통주의 대표명사가 되었습니다. 후에 안동소주 네 글자를 붙여서 다른 안동소주들이 출시되기 시작했고요. 처음에는 제 할머니가 만드신 술이 그만큼 유명해서 그렇구나 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안동소주라는 네 글자의 상표권은 안동시가 보유하고 있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허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와 제조법이 전혀 다른 술들이 조옥화 안동소주로 혼동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가 1990년 당시 도입한 도자기병 모양 및 종이케이스, 심지어 색감 등도유사하게 만들다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혼동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주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환영합니다. 그러나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소비자들께 지속적인 혼란을 드리게 되면, 언젠가는 안동소주의 브랜드 가치는 떨어지게 되고 소비자분들은 외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술이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기쁠 때나 힘들 때 등 항상 우리의 마음을 만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뿐만 아니라 판매 및 홍보과정 등이 깨끗해야 합니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술도 음식이고 음식은 정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제조법을 지키며 어떠한 것에도 타협하지 않으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SNS 등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정보량이 늘어나는 동시에 투명해지면서, 부정확한 정보·허위사실 등은 결국 바로 잡히게 되어있습니다.”면서 각자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정직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안상과 안동소주.

전통주 1세대에 감사하는 마음과 저변 확대를 위한 책임감

“과거 우리 조부모님·부모님 세대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6.25 등 큰 어려움을 겪고도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혜택을 지금 우리 세대가 누리며 살아가고 있고요, 전통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쟁쟁한 서양 술들과 경쟁하며 자리를 지켜낸 전통주 1세대 덕분에 전통주 시장이 확장·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전통주제조 및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전통주 1세대에 대한 감사함과 전통주 시장의 확장을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에 임하면 좋겠습니다.”

 

전통주 시장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김윤근 팀장은 항상 부모님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꿈에서라도 “잘 하고 있다.”고 듣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지만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여전했고, 안동소주에 평생을 헌신하신 부모님을 보필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45도 화주(火酒) 안동소주, 사나이 눈물 같은, 피붙이의 통증 같은, 첫사랑의 격정 같은, 내 고향의 약술 그 얼로 취하여, 이 풍진 시대도, 저 시대의 너털웃음 웃어가며, 성큼 성큼 건너뛰며 나 살으리….’

경북 안동 출신의 한 여성 시인은 ‘조옥화 안동소주’의 멋과 맛을 이렇게 예찬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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