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어떻게 술을 마셔야 할까
최근의 음주 트렌드가 홈술․ 혼술이 대세다. 이런 음주문화에 젖어들면 막상 여럿이 모여서 술을 마실 때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몰라 실수할 때가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느냐’며 그냥 마시면 되는 것이지 꼰대처럼 무슨 예의범절을 찾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술은 다른 음식과 달리 주도(酒道)를 알고 마시면 더 멋있는 음식이 될 수 있고 실보다 득이 많아진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는 벌거벗고 마시든 드러누워서 마시든 신경쓸 일이 아니겠지만 여럿이 마실 때는 그렇지 않다. 상사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도, 아예 찍혀버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술자리다.
특히 높은 사람이 참석하는 술자리에서 건배 제의도 나오기 전 홀짝 마셔버린다면 어떨까. 이는 집안 어른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서 어른이 수저를 들기도 전에 음식을 집어먹는 것과 매 한가지다.
술은 해보다는 득이 더 많은 식품이다. 그러나 혼술이 지속되면 자칫 절제하지 못함에서 오는 해로움으로 인해 술을 천대해야 할 나쁜 음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는 술을 마시고 잘못된 언행이 문제이지,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술을 모독하지 말기를 바란다.
일반적인 고전(古典)에 나타난 주도에서 술의 효용에 대하여 논한 것을 보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과 같이, 한 잔 술에 일의 성패가 달려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한 잔 술의 비중은 크다. 술을 권해야 할 때 권하지 않으면 그것도 실패요, 권하지 말아야 할 때 권하면 그것도 실패다. 한 잔 술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한 잔의 술잔이 그만큼 예민한 것이다. 술을 잘 다스릴 줄 알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사업이나 인간관계에 두려울 것이 없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지혜요 처세다.
진정한 주당들은 ‘주봉지기천종소(酒逢知己千鍾少)요, 어불투기일구다(語不投機一句多)’니라 고 노래한다. 술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말은 뜻이 맞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은 것이라 했다. 그런데 세상이 각박해서 그런가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란지명(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니라.’(-술과 음식을 함께하는 형제는 천 명이나 되지만 위급하고 어려운 때 도와 줄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라는 말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술 먹을 때는 변치말자고 맹세하였건만 술 없고 돈 없으면 돌아서는 사람들이 더 많다. 술로 사귄 친구는 술 없으면 우정도 끊어진다. 술로 사람을 얻을 수도 있고, 술로써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술 마시는 기술이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주도를 지켰을까.
논어(論語) 학역재(学易斎)에 ‘향인음주 장자출 사출의(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자리를 떠야 비로소 나가셨다.”고 했다. 술자리를 시작할 때는 물론이고 파할 때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주도다. 주도라는 것 자체가 자리 선정부터 마시는 것까지 다소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으나 어른을 공경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훗날 자신도 공경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철들면 깨닫게 되는 진리다. 공자도 제자들에게 효(孝)는 덕(德)의 근본(根本)이라며 자신의 생활신조를 ‘노자안지(老者安之)’라고 했다. 즉 노인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삶을 지향한 것이다.
주종(酒種) 불문이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소주 마시면 노가다 취급하고, 와인 마시면 고상한 사람으로 대접 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당에 끼워주지 말아야 한다. 소주를 마시든 막걸리를 마시든 술은 자기 취향대로 마시면 된다.
공자 맹자 찾으니 고리타분하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주도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술자리에서만이라도 서로를 공경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 술을 잘 마시는 방법이 아닐까.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