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핸 꼭 중국 술 한잔 먹세 그려
임 재 철 칼럼니스트
우린 ‘2023호’인생열차(人生列車)에 또 올랐다. 여느 때와 같이 차표도 없이 엉겁결에 승차했지만, 우리는 그 열차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달려 나갈 것이다. 다만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은 뒤로하고 오로지 우리의 인생에 행복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부지런히 타고 다니고, 좋은 곳을 많이 다니며, 건강과 희망을 가득 싣고 열심히 달리다가 ‘2023호’역(驛)에 도착 후 마감을 해야 한다.
가는 세월을 어쩔 수가 있나. 산 넘고 바다건너 종착역을 향해 철길을 달리는 인생. 한해 한해를 정말 알차게 보내면 그뿐. 올 한 해를 걸어가며 많은 사람과 다양한 것을 접하겠지만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술 얘기다. 즉 지난해 10월 칭다오(靑島)맥주를 전제로 중국 술이야기를 조금 했지만, 평이하게 새해의 시작을 해 보고자 한다.
중국을 여행해 본 이는 잘 알겠지만, 자고로 중국은 술의 나라이다. 어느 지방이나 지역특산 명주가 있고 이를 함께 할 수 있는 독특한 음식문화가 있다. 술은 중국인의 생활 속에서 음료처럼 그렇게 가벼울 뿐만 아니라 이미 일종의 문화로 형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맛있는 음식, 즐거운 술, 편안한 차를 떠나 중국의 탐험이나 경험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개 우리가 알 듯 술은 생겨난 그날부터 인류 생활과 갈라놓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기쁠 때 사람들은 술로 축하하고, 괴로울 때 사람들은 술로 스트레스를 풀며, 외로울 때 술은 좋은 친구가 된다. 말하자면 술로 인해 우리 생활이 다채롭게 변한 것이다.
연초라서 누구나 신년 모임이나 술자리가 많지만 술은 친구를 접대하기에 가장 좋은 음식이다. 중국 속담에 ‘술은 지기를 만나 마시면 천 잔으로도 부족하다((酒逢知己千杯少)’라는 말이 있다. 친한 친구들이 모였을 때 술이 가장 흥을 돋우는 것이다. 술은 또한 사람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어서 유명한 시인과 작가가 글을 쓸 때 종종 술에 의지에 나온 영감으로 한 편 한 편의 훌륭한 작품을 써냈다.
중국 바이주(白酒)의 역사 역시 대략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바이주를 담그던 술 제조 유적은 중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소비되는 전통술 가운데 으뜸도 단연 바이주다. 지역에 따라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마을 수만큼 다른 바이주 브랜드가 있을 정도다. 이렇듯 중국의 대표적인 술인 바이주는 공식 브랜드로 나오는 술의 경우만 봐도 수천 종일뿐만 아니라, 밀주까지 하면 수만 종이 될 것이다.
또 한 브랜드가 한 종의 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많게는 수백 종까지 생산하니 중국 바이주의 세계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

또한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중국에는 한국 못지않은 주당들이 많다. 다시 말해서 친구를 만날 때 사업을 논할 때 술은 빠질 수 없는 대화의 윤활유요 매개체다. 그래서인지 우리식 ‘원샷’과 같은 중국인의 ‘간베이’(干杯)는 술을 권하는 우리 문화와 중국이 별반 차이가 없다.
술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해 주고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솔직하게 대하고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술은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많은 걱정거리도 가져다준다. 친구나 선후배, 심지어는 부부간에도 술 문제로 크게 다투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끝이 없이 넓고 넓은 중국 대륙에 양조장이 몇 개나 있을까? 헤아려본 적도 없지만 앞서 언급한 술 종류 이상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술의 세계를 파악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2020년 기준 중국 술 시장 규모는 50조 원을 넘어섰고, 음주 인구는 8억4000만 명에 달했다. 중국 전역에 산재한 주류 공장도 1만5천여 개나 된다. 오늘날 중국 전역에는 각기 다른 브랜드의 맥주도 수십 가지가 있다.
중국술의 대표주자인 바이주산업의 발전은 고급 바이주의 판매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즉, 고급 바이주시장이 커진 데에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소득증대가 한 몫 했다. 주머니가 넉넉해 진 중국인들이 체면과 위신을 고려한 데다 맛과 향이 뛰어난 고급술을 찾으면서 바이주시장이 활기를 찾은 것이다.
연말연시나 특히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춘제(春节)가 다가오면 고급 바이주의 소비는 더욱 늘어난다. 고급 바이주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용으로 선호되기 때문이다. 한때 춘제 때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 주류 코너에서는 가격 인상에도 고급 바이주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여기에는 중국 구이저우 성(貴州省) 마오타이(茅台)현에서 생산되는 세계 3대 명주 마오타이주(茅台酒), 오곡의 정수를 뽑아 빚었다는 우량예(五粮液), 딸이 태어나면 담갔다가 시집갈 때 준다는 샤오싱주(绍兴酒)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들이 있다. 또 고급 바이주 가운데 한국 주당들에게도 인기 있는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생산되는 수이징팡(水井坊)의 약진도 간과할 수 없다.
그 가운데 마오타이 주는 중국술을 대표하는 명주다. 마오타이주가 생산되는 중국 구이저우 성은 ‘하늘에 3일 맑은 날이 없고, 땅에는 3리의 평지가 없고, 백성에게는 3등분해 줄 은도 없다’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그만큼 비가 오는 날이 많고, 산악지대라 평지가 거의 없으며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성 중의 하나다. 그러나 최근 때 묻지 않는 천혜의 자연이 길이 뚫리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종류가 다양한 중국 술… 그렇다면 뭘 마셔야 할까. 중국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바이주를 찾아서 그 지역과 첫 대면을 시작하면 좋다. 가령 비싼 명주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적당한 가격의 바이주를 고르면 부담도 덜면서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 게 중국술의 세계다. 거기에 따른 음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 음식도 천차만별이니 맛있는 거 곁들이면 족하다.
사실 필자는 중국 전역에서 대부분의 술을 마셔봤다. 물론 앞서 언급한 고급술도 마셔 보았지만 꼭 그 지방의 바이주를 맛본다. 일단 그 지방의 술은 그 지방의 물로 빚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방의 문화를 갖고 태어난다. 그 술을 마시면서 그 지방에 젖어 들고, 또 그 술을 통해 그들의 세상과 정신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을 여행할 때마다 대부분 술단지에 빠졌었고, 매번 다른 술을 맛보았지만 그 술 맛을 제대로 기억할 수 가 없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한심하다.
넉다운이 된 경우 중 가장 악몽을 꼽으라면 산둥 성 옌타이(烟台)를 들 수 있다. 옌타이의 오래된 친구들과 ‘옌타이 아가씨’라는 옌타이꾸냥(烟台姑娘)을 맥주잔으로 4잔 정도를 거푸 원샷을 한 이후 혼 줄이 나가 아침을 맞아야 했다. 물론 수년 전이니 가능했던 객기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술자리 자체는 그들에게 즐거운 자리였고, 필자는 지금도 그 옌타이 토박이 친구들과 계속해서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하늘의 운행에 따라 시작된 새해도 쉼 없이 뛰어 가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술을 접하고 또 걸어가지만 올해는 어떻게 ‘삶과 술’을 맞을 계획인가. 필자는 우선 세계적 팬데믹이 사라지고 모두가 일상을 되찾기를 바래 본다. 현 3중고의 경제 위기와 많은 우려가 교차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힘든 시기가 희망의 시절로 전환되었으면 좋겠다. 혹독한 겨울 끝엔 언제나 봄이듯,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일상의 소중함과 희망의 “2023호”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올해야 말로 모두가 기분 좋게 새로운 여정을 파이팅하며 높은 도수의 바이주를 한잔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