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술이로다”에 대한 도연명의 자연주의적 술 철학
박 정 근(문학박사, 작가, 시인, 윌더니스 문학 발행인)
겨울이 오니 겨울 나름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겨울의 아름다움이 무엇일까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하얀 눈이라고 말하리라. 어느 계절에도 맛볼 수 없는 백색의 세계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하얀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면 거무틱틱한 세상이 순간적으로 하얀 도료를 머금은 듯 변색을 하는 마법을 선보인다.
어제 모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신이 먼지로 더럽혀진 세상에 하얀 만나를 베풀어 하얀 밀가루를 뿌리는 마법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나도 모르게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새벽길을 걸어보았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 위를 걸으며 어린 시절 흰 눈을 향해 두 손을 흔들며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런 행위야말로 어떤 인위적 장난도 개입하지 않은 자연주의적 감정의 발흥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얀 눈밭에 찍힌 발자국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필자는 가만히 뒤를 돌아다보았다. 하얀 발자국이 가지런하게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 걷기를 시작한 지점부터 필자가 서있는 곳까지 뻗어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작년 송년회에서 불렀던 “눈”이란 가곡을 나직하게 바람에 실어 보냈다.
그런데 어느새 필자의 노랫말은 눈이 되어 함께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필자의 감정은 어젯밤 속물적인 세상을 탓하며 술을 마시던 분노를 끄집어내어 하얀 눈으로 씻어내고 있었다. 눈과 함께 한 단 몇 분의 행위로 인해 혼탁해졌던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강열하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필자에게 왜 술을 마시냐고 묻는다면 술은 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리라.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한 없이 즐거워진다. 마찬가지로 즐거운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시면 즐거움이 흰 눈이 온 세상에 펼쳐듯이 마음의 숲을 경쾌한 음악으로 채운다. 이런 효과를 비유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교향악이 피아니시모에서 폴테시모로 서서히 증폭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술을 마시는 효과를 흰 눈이 온 세상을 소리 없이 하얗게 칠하는 정경이나 교향악이 마음의 숲 속을 아무런 무리 없이 퍼져나가는 것과 비유하는 것은 그 만큼 자연스럽다는 의미이다. 그런 효과를 도연명 시인의 음주시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아무런 무리가 없는 자연주의적 감정의 발흥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도연명 시인은 먼 길을 걷다가 갈증을 느낀다. 그 순간 시인의 발걸음은 넓은 강물이 흘러가는 나루터에 닿아있다.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물속에 자리를 잡은 돌 위에 걸터앉는다. 우선 먼 길을 걷느라 흘린 땀을 이마에서 훔치기 위에 두 손을 물에 담근다. 시원한 느낌이 달궈진 몸을 기분 좋게 식혀준다. 그는 갈증으로 말라버린 입으로 시원한 강물을 한두 모금 마신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도연명은 먼지로 더럽혀진 신발을 살짝 벗어놓고 물속에 발을 담근다. 걷느라고 고생한 발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며 눈을 들어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영상이 눈 속으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는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마치 이슬을 머금은 꽃이 살짝 피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조물주가 엿새 동안 창조를 마치고 만족하는 모습을 닮아있다. 시인의 마음은 그저 “좋구나”라는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시인은 <사계절의 운행 時運>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洋洋平津, 넓고 넓은 물가의 나루터에 이르러
乃漱乃濯. 물로 입을 가시고 발을 씻노라
邈邈遐景,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載欣載矚.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노라
人亦有言, 다른 사람들도 말하기를
稱心易足. 마음에 드나니 저절로 자족하노라
이 순간 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이런 즐거움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진다. 그는 보자기에 들어있는 술병을 꺼내고 잔에 술을 따른다. 그는 눈을 감고 혀로 술맛을 감치듯 천천히 맛을 본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이 따로 없구나. 여기 바로 이 순간이 바로 천국이라고 되뇌인다.
그리고 그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완성한다: “이 한 잔 술을 마시나니/ 거나해지고 절로 즐거워지노라.” 이것이 도연명의 음주시의 절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