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

(Persephone(1874)/ Dante Gabriel Rossetti) (The Return of Persephone(1891)/ Frederic Leighton)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5)

 

 

이슬람의 와인, 커피

디오니소수 필자 남태우 교수

잠을 불러오는 ‘와인(wine)’과 잠을 깨게 하는 ‘커피(coffee)’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다. 둘은 각기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을 상징하는데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왔던 쌍두마차였다. 많은 이들이 남미에서 ‘커피’가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커피’의 고향은 원래 아랍이다. ‘와인’이 유대, 기독교, 유럽 문화에 기반을 둔 음료라면, 커피는 이슬람 세계의 특징적 음료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에서나 와인을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아랍이 정복한 곳에서는 예외 없이 커피가 발견된다. 그래서 커피는 ‘이슬람의 와인’이라고 불렸다.

 

와인은 기독교적 세계를 지배했으나 커피를 앞세운 마호메트가 지나간 곳마다 그 뿌리가 뽑혀 나갔다. 몇 세기에 걸쳐 와인 제조업자와 커피 제조업자 사이의 싸움은 치열했다. ‘커피와 와인의 전쟁과 공존’은 곧 문명 간의 대결과 통합의 과정이기도 했다. 아랍의 이슬람인 들에게 ‘커피는 종교’였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쓸 때 천사 가브엘이 전해준 음료는 커피였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무는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식물이자 하나님이 인간에게 약속한 선물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라고 말했듯이 와인은 거룩한 희생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커피는 술’이었다. ‘와인’이라는 뜻의 아랍어 ‘카와(quawah)’가 터키로 건너가 ‘카베(quaveh)’가 되었고, 이탈리아에서 ‘카페(caffe)’가 되었다. ‘커피’를 세상에서 처음 마신 사람들은 15세기 초 예멘 지역의 이슬람 신비주의자 수피(Sufi)들이었다. 이들은 주전자에 커피 빈 한 움큼을 집어넣고는 물에 팔팔 끓여 우려낸 진한 블랙커피를 마셨다.

취한다는 점에서 커피는 와인과 비슷했지만, 와인과는 달리 몸이 취할수록 머리는 맑아지고 신경이 흥분되어 기도와 명상에는 그만이었다. 한 사람에 한 주전자씩 커피를 마신 무슬림 수피(Sufi)들은 서로 손을 잡고 신전 안을 뱅뱅 돌면서 알라신을 반복해서 부르고 춤을 추었는데, ‘눈앞에서 접신의 황홀경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커피는 알코올이 금지된 이슬람 사회에서 ‘숙취가 없는 술’로 각광을 받았다.

 

메카의 종교 지도자들은 한때(AD. 1511~1524) 커피를 마약으로 분류, 커피를 팔다 걸리면 처음에는 몽둥이로 때리고, 두 번째는 사람을 가죽 부대에 넣어 자루를 꿰맨 후 보스포루스 바다로 던졌다. 커피의 중독성이 ‘지고를 향한 영적 탐구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금지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벌이는 정치 토론이 체제 유지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랍의 이슬람인들에게 커피는 종교였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쓸 때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전해 준 음료가 커피였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병에 걸린 선지사 마호메트의 꿈에 나타나 커피 열매를 보여 주며 병을 치료하고 신도들의 기도생활을 북돋우는 데 효험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주었다고 한다. 이슬람교가 처음 아라비아반도에서 퍼져나간 시기와 커피와 같은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커피가 이슬람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적인 목적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즐겼던 사람들은 무슬림이었다. 예멘의 쉐호데트(Schehodet), 즉 ‘증언’이라는 이름의 사원은 이슬람 수도원이었는데, 그곳에서 기도하던 수도사들은 졸지 않고 기도하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그것은 커피콩에 들어있는 마술과 같은 속성들 때문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피곤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져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밤 중 가장 잠이 쏟아지는 이쉐(Ische)라고 부르는 기도시간이 되면 그들은 커피를 나누어 마신 후에 기도했다.

쉐호데트 사원에서 수도사들이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것이 언제였는지는 확정짓기 어렵다. 하지만 의술에 밝은 아랍인으로 중세 스콜라시대의 유럽에서 ‘아비세나(Avicnna)’라고 불렸던 ‘이븐-세나(Ibn Sinu)’가 서기 1,000년 이미 커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는 당시에 커피를 ‘카베’가 아니라 ‘붕크(Bunc)라고 불렀다. 그는 의사로서 커피가 가진 효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포도주는 몸을 나른하게 하지만 커피는 생각을 두 배나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다.

 

커피의 각성효과에 대해 추적조사가 최초로 이루어 진 곳은 미국이다. 미국인 ‘오라티오 우드’는 혈액순환과 근육에 미치는 카페인의 영향을 연구했고, ‘홀링우드’는 1912년까지 약 7만 6,000건의 측정과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홀링우드는 근육운동효과를 결론적으로 이렇게 요약했다. “카페인은 골수의 이완중추에 자극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근육이 더 힘차게 수축하도록 하면서 같은 양의 에너지로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해준다.” 애써 이들의 조사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아랍인들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알고 있었다.

커피는 때때로 ‘이슬람의 포도주’라고 불렸다. 코란 중 ‘식탁’이란 표제를 달고 있는 장에 보면, 이슬람의 창시자인 모하메드는 포도주를 즐기는 취향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포도주는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포도주가 배척되었는데, 실제로 포도주 자체를 반대했다기보다 ‘성스러운 상태’, 즉 집중력이 방해받는 상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슬람이 등장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포도주에 대한 보호와 예찬이 사라졌다. 이슬람세력이 점령한 지중해 남부지역의 절반 정도에서 포도나무가 사라졌고,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신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사실 예멘 땅의 뜨거운 협곡에서 커피열매를 따고 이를 모아 쌓아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슬람세계에서 커피와 포도주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포도주는 거부되고, 그 자리에 커피가 자리 잡았다. 이슬람에 의해 기독교국가인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었을 때에 포도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커피가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이슬람에서 포도주는 ‘잠’을 의미하고, 커피는 ‘깨어있음’을 의미했다. <천일야화>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결코 잠을 자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커피를 몇 잔이나 마실까?” 포도나무는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식물이자 조물주가 인간에게 약속한 선물의 상징이었다. 예수는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이다”라고 말했듯이 와인은 거룩한 희생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럼, 도대체 커피는 어디에서 등장해 마호메트의 기원설이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마호메트는 히라 동굴에서 금식수행을 하다가 몸이 쇠약해져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때 그를 살린 게 커피 열매라는 것이 기원설의 요지다. 가브리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동굴 밖에 가면 빨간 열매가 있으니 그것을 따 먹으면 살 수 있다”거나 “커피열매를 달여 마시면 몸이 좋아 진다”고 말했다는 둥 조금씩 다르지만, 커피를 처음 마신 사람이 마호메트이며 커피가 마호메트를 살렸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마호메트가 병들어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검은색의 음료를 선물로 주고 갔는데, 그 음료를 마신 마호메트는 40명의 남자를 말안장에서 떨어뜨리고 40명의 여인과 동참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다.

 

마호메트 기원설은 무슬림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 출신으로 커피역사를 기록한 윌리엄 우커스(Willium H. Ukers)는 1935년 펴낸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에서 “마호메트 사후 200년 경(832년 경) 이전에는 커피에 관한 사료를 찾아 볼 수 없다”면서 마호메트와 관련한 커피 기원설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커피가 마호메트를 살렸다고 믿는 무슬림들은 카바 신전에 순례를 갔다가 ‘잠잠(Zamzam)우물’을 떠가면서 커피도 고향 땅으로 가져갔다. 카바 신전에서 동남쪽으로 20m 거리에 있는 잠잠우물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살린 것으로 전해져 무슬림들은 이를 성수로 여긴다. 순례 객들은 이 물을 가져가 치료를 위해 쓰기도 했는데, 순례객들이 붐벼 잠잠우물에 접근하지 못할 상황이 빈번해지자. “잠잠성수 대신 마호메트를 살린 커피를 몸에 담은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커피는 빠르게 무슬림 사회를 파고 들어니다.

커피와 이슬람 테러는 이슬람 문명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을 보여준다. 커피는 황금기를 맞은 이슬람 문명이 인류에게 선사한 멋진 선물을 상징하는 반면 테러는 쇠퇴한 이슬람 문명이 굴욕 속에서 인류에게 떠넘기는 무거운 짐이다.

가브리엘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천사로 별명도 많다. ‘수태를 알린 천사’, ‘자비의 천사’, ‘복수의 천사’, ‘죽음의 천사’, ‘묵시의 천사’, ‘진리의 천사’, ‘에덴 동산의 통치자’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흥미롭게도 가브리엘은 대천사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라는 설이 있다. 주된 임무는 ‘예언’과 ‘계시’이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위에서 언급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이다. 처녀인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그것을 마리아에게 알린 이가 바로 가브리엘이다. 또한 성모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기 6달 전에, 즈카르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기도 하였다.

이슬람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알라의 계시를 전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브리엘은 무지개 색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도 하며, 중세 민간에서는 앵무새의 깃털을 가브리엘의 깃털이라며 성유물로 속이는 사기 범죄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천사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교리는 없으므로 상상은 자유이다. 천사들 중에서 하니엘(Haniel, 권천사장), 산달폰(Sandalphon, 권천사장) 등과 함께 여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Dionysos의 유랑(流浪)

 

신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질투 많은 부인 헤라의 눈을 피해, 스승인 실레노스(Silenos) 밑에서 자라났다. 그는 수염이 더부룩한 노인인데 때로는 말의 다리와 꼬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대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혜가 많은 요정으로 그를 붙잡기만 하면 그가 가진 지혜를 빼낼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가 그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체포했을 때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죽는 것이 상책이다,”이라고 왕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주신 디오니스를 길렀고 그의 술친구였다.

(Persephone(1874)/ Dante Gabriel Rossetti) (The Return of Persephone(1891)/ Frederic Leighton)

소크라테스는 그의 용모와 지혜가 많다는 점에서 실레노스와 비교되기도 한다. 플라톤의 <심포지엄>에서 술에 취한 알키아비아데스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외모에 대해 “이분은 조각가들의 작업장에 앉아있는 실레노스를 빼닮았네”라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레노스는 주신 디오니소스의 술친구로 못생긴 외모를 지닌 숲의 신이다. 소크라테스는 배불뚝이 대머리였던 실레노스처럼 못생긴 추남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결국 디오니소스가 ① 신과 인간의 결합에서 태어났으며, ② 수난, ③ 부활, 그리고 ④ 어떤 하나의 개별성에 갇히지 않는 변모의 신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즉 명료함, 혹은 명징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모호함, 도취(술)의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다. 올림포스 신의 영역이 빛, 한정/제한, 개별성, 남성성, 고귀함, 귀족적 이상을 상징한다면, 디오니소스는 어둠과 모호함, 무한정성, 무차별성(개별성의 지양), 여성성, 평민적 삶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성장하면서 헤라 여신의 끈질긴 구박과 방해를 받았다. 그가 성장했을 때 헤라는 그를 미치게 하여 추방하였으므로 그는 지상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방랑객이 되었다. 특히 이집트와 시리아 지방을 방황했다. 디오니소스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우스와 헤라의 어머니인 레아가 디오니소스의 광란병을 치유해 주고, 후에 디오니소스 축제 때 행해질 종교 의식을 전수해 주었다. 이 제전에서 디오니소스와 신도들은 새끼 사슴의 가죽을 입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광란병에서 치유된 디오니소스는 인도에까지 여행을 계속하면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신앙을 전파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미치광이 소년이 아니었다. 표범 위에 올라타고 손에는 삿갓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덩굴장식이 화려한 ‘튀르소스(Thyrsos)’라는 막대기를 든 당당한 모습의 신이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추종하는 한 떼의 무리, 즉 그를 길러 준 뉘사의 요정들과 판(Pan) 신, 사튀로스(Satyros), 세일레노스(Seilenos), 그리고 디오니소스를 광신적으로 믿는 ‘마이나데스(Mainades)’들이 뒤따랐다.

헤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티탄족들은 헤라의 명령을 좇아, 제우스가 새로 얻은 아들로, 뱀으로 된 관을 쓰고, 머리에는 뿔이 달린, 어린 디오니소스를 붙잡아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들은 디오니소스의 시신을 냄비에다 넣고 끓였다. 이러는 와중에 그의 피가 땅으로 스며들어, 그 자리에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다. 위기를 모면하려던 디오니소스의 변신(變身)도 별무소용이었다. 여기서 변신은, 신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로 변하는 것을 비롯해서, 인간과 동물, 식물, 광물 사이의 변신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전환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는 사물이 생성되는 순간과 과정을 상징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뭔가 탄생하고 생성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은 또한 욕망의 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변신 이야기들은 ‘애욕(愛慾)의 현상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비디우스의 시행(詩行)들은 사랑과 애욕의 현상을 보여주면서, 그 현상의 심연에 있는 의미를 파헤쳐보라고 유혹한다. 오비디우스의 능숙한 글 솜씨는, 바람기를 주체할 수 없는 신들의 사랑을 시작으로, 신과 요정, 요정과 인간 그리고 인간 남녀 간의 사랑을 끝 간 데 없이 펼쳐 보인다. 또한 쾌락의 절정에 이른 황홀한 사랑, 끝내 이루지 못한 짝사랑, 금기를 어기는(아니면 초월하는) 사랑, 그리고 모호한 동성애 놀이와 치명적인 자기애에 이르기까지 사랑과 애욕의 현상들은 정원과 숲과 호수와 들판과 바다와 하계와 천공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애욕의 현상에는 격렬하면서도 미묘한 감성의 세계가 동반된다. 증오, 질투, 오만, 분노, 복수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변신의 촉매들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이들의 촉매 작용으로 꽃, 나무, 새, 짐승, 돌, 메아리 그리고 하늘의 별자리로까지 변신하여 각자 사랑의 사연을 간직하고 대자연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이 오묘하게 다양한지도 모른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음주문화칼럼니스트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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