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몇 살이야?’

김원하의 취중진담

 

‘너 몇 살이야?’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남녀 불문하고 상대방 나이를 묻는 것이 에티켓에 어긋난다고 한다. 물론 우리도 신사가 숙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결례라고 치부하지만, 흔히 남성 사회에서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나서 나이를 묻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이를 묻는 것은 유교사상이 몸에 배어 서열(?)을 메기는 수단이기도 하다. 나이 차이에 따라 한 살이라도 많으면 형이 되고 적으면 동생이 된다. 혹여 나이 많으신 분한테 반말이라도 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이를 묻는다. 하지만 실상은 어리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자기 자신을 높여주기를 바라는 묘한 심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길거리 같은 데서 처음 만난 사람과 시비가 벌어졌을 때도 나이를 묻는다. “몇 살이세요?”가 아니라 “너! 몇 살이야!” 이쯤 되면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상황이 불리하면 나이로 누르려 한다. “어린놈의 새×가 어디 어른한테 대들어…” 필자 생각으론 제일 치사한 다툼이 나이로 누르려고 하는 것이라고 본다.

나이는 손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구분하기에 편한 기준이다. 이상한 한국문화의 특징 중 하나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는 나이를 묻는 것은 ‘나이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너 몇 살이야?’ 라고 물을 수 있는 건 사실 ‘내가 권력자다.’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가수 방실이가 1990년대에 부른 <서울 탱고>라는 유행가 가사에는 “내 나이 묻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나이 공개를 거부한다. 젊은 층으로부터 듣자하니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소위 밀레니엄 세대에게 나이를 묻는 순간, 자신이 꼰대 취급을 당할 수 있다니 이젠 나이도 함부로 묻지 말지어다. 필자는 기자라는 직업상 취재대상의 나이를 물을 때가 있는데 이를 어찌할꼬.

세상물정 모르던 나이 때는 빨리 나이 먹어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여긴 때도 있었다. 설날 떡국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여 두 그릇을 먹던 때도 있었다. 세월 흐르다 보니 이젠 설날 떡국 먹기도 겁이 난다. 떡국 안 먹으면 나이도 안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며 나이든 이들이 기득권을 주장할 때가 있다. 유식한 말로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하는데 어른과 아이는 순서가 있다는 뜻이다. 이 장유유서가 설날 마시는 ‘도소주(屠蘇酒)’에서는 뒤바뀐다. 도소주는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술인데 특이하게 젊은이부터 마시는 술이다. 이는 빨리 나이 들고 싶은 어린 사람이 먼저 마시고, 나이 듦이 서글픈 연장자는 나중에 마셨다. 젊은이를 격려하고, 술자리 예절을 익히며 마신 세주(歲酒)인 셈이다.

지난 설에는 가족끼리 둘러 앉아 떡국 먹으며 나이타령을 많이 했을 것이다. “올해는 떡국 먹어도 나이 더 먹지 않으니까 많이 잡수세요.”

윤석열 정부가 혼용돼 사용되고 있는 나이 계산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60년간 사용돼 왔던 ‘세는 나이’와 ‘만 나이’, ‘연 나이’가 오는 6월 28일부터는 ‘만 나이’로 통일된다. 이에 따라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기준으로 통일돼 어떤 이는 한 살 혹은 두 살이 줄어든다. 우리는 지금까지 태어나면 무조건 한 살로 쳤다. 그러다 보니 섣달 그믐날 태어나서 하룻밤 자고 난 갓난쟁이가 설을 맞으면 두 살이 된다. 막상 정월에 태어난 아기와는 며칠 사이인데도 나이 차이가 나서 동생취급을 당했다. 앞으로는 ‘너 몇 살이냐?’고 따질 때 “너 몇 년 몇 개월이야?”라고 해야 할까. 정확한 것은 좋지만 당분간은 어색할 것 같다.

“How old are you?” 영미권 사람들이 ‘너 몇 살이냐?’를 이렇게 표현 한다. 직역하면 ‘너 얼마나 늙었느냐’는 뜻일 텐데 우리가 ‘너 얼마나 늙었느냐’고 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지하철 같은 경로석에 혹 젊은이 앉아 있을 때 대뜸 “너 몇 살이야?” 하면 이는 선전포고다. 돌아오는 대답은 “왜 반말이야?”일 것이다.

지난 1962년 단기력 대신 서기력을 도입하면서 ‘만 나이’를 도입했었다. 하지만 ‘만 나이’가 정착되지 못해 이번 법을 고쳐가며 ‘만 나이’로 통일했다. 그동안 세는 나이 사용 관습이 이번 ‘만 나이’ 계산법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너 몇 살이야?’ 글쎄요, “내가 몇 살이죠”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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